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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꿈에서는 안이비설신이 현실처럼 감각하지 않음

고요2 0 590 2019.04.16 12:16
4. 김향원이 사이버서원에서 논어, 이인편 5장을 배웠습니다. “子曰 富與貴是人之所欲也나 不以其道得之어든 不處也하며 貧與賤是人之所惡也나 不以其道得之라도 不去也니라 君子去仁이면 惡(`오)乎成名이리오. 君子無終食之間違仁이니 造次에 必於是하며 顚沛에 必於是니라.” (... 군자가 인(仁)을 떠나면 어찌 이름을 이룰 수 있겠는가? 군자는 밥을 먹는 동안이라도 인을 떠남이 없으니, 경황 중에도 이 인에 반드시 하며, 위급한 상황에도 이 인에 반드시 하는 것이다. 성백효 역)

어느 날 학동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꿈속에서는 분명하지 않아요. 보이는 모습도 들리는 소리도 좀 희미한 것 같아요. 왜 그런 것일까요?” 김향원은 그 이유를 몰라서 여기저기 찾아보고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김향원은 학동들이 돌아간 뒤 책을 찾아보고 인터넷에서 검색했습니다. 그랬더니 다음카페에 어떤 분이 쓰신 글이 있어  그 내용을 읽었습니다. (개인적 필요에 의해 조금 변형함)

“꿈에서 알려지는(보이는) 것은, 안근 등을 직접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꿈에서 알려지는 현상은, 본질적으로 의도만의 문제이다. 즉 보려는 의도 등이 있다면, 보이는 것 등이다. ... (꿈속에서는) 눈 등, 안근 등을 직접 조건으로 하지 않으므로, (낮에) 눈 등으로 직접 보는 형상 등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 왜 그런가?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건이 다르면 다른 현상이 발생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낮에) 눈 등을 직접 조건으로 하는 형상 등보다 (꿈속에서는) 어둡고 탁하게 파악되는 경향이 있다. ...

정리하자면요. 육체의 눈을 직접 조건으로 하는 형상 등은, 육체의 눈 등을 직접 조건으로 해야만 성립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눈 등을 직접 조건으로 하지 않으면서 육체의 눈을 직접 조건으로 하는 형상 등을 얻으려 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얻으려 하는 겁니다. 육체의 눈 등을 직접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면, 육체의 눈을 직접 조건으로 하는 형상 등은 알려지지 않습니다. ... 꿈에선 '전5식을 직접 조건으로 성립하는 대상'이 없잖아요? '전5식을 직접 조건으로 성립하는 대상'은 꿈에서 깨어난 현실에서만 있잖아요. ...

'전5식을 직접 조건으로 성립하는 대상'으로는 결단코 선정에 들 수 없습니다. ...  선정에 들려면 6식의 대상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니 호흡 관찰에서 신식 등의 전5식을 직접 조건으로 성립하는 현실의 촉감 등으로는 선정에 들 수 없습니다. 즉 선정에 들려면, 그러한 전5식의 대상은 6식만으로 성립하는 내적 촉감 등으로 전환(혹은 암시 등으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행 중에 나타나는) 그런 빛은 내적 형상입니다. ...”

위의 내용을 생각해보고 뜻을 이해하면서 며칠이 지났습니다. 김향원은 학동에게 말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꿈에 대해 잘 몰랐단다. 그런데 이제는 들어서 조금 알게 되었다. 낮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마음으로 헤아려보기도 해. 그런데 꿈속에서는 낮에 했던 것과는 달라진다고 한다. 낮에는 눈, 귀, 코, 혀, 몸을 다 사용해서 알았다면, 꿈속에서는 낮과 같은 그런 눈, 귀, 코, 혀, 몸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꿈속에서는 마음만 사용된다고 해. 꿈속에서는 마음으로 의도한 것과 관련된 내용들(그것이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미래의 꿈일 수도 있고 현재 집착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과 몰라서 (무명에 덮여서) 망상하는 내용들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 것 같아. 그러니 낮에 직접 눈, 귀, 코, 혀, 몸을 사용해서 아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 같구나. 이것이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직접 저 산을 바라보는 것하고 눈을 감고 마음으로 산을 떠올리는 것하고는 차이가 있어. 현실에서 인식하는 것과 꿈속에서 인식하는 것에도 이런 차이가 있을 것 같구나.” 

일요일 오전이 되자 김향원은 시민명상교실의 불교수행반에 갔습니다. ◌◌스님께서 호흡을 지도하셨습니다. “사띠는 올바른 명상 주제에 반복적으로 마음을 챙기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마음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들숨날숨이 진행되는 인중 부위에 친숙해야 하는데, 이때 성(城) 문지기의 비유를 마음에 새기십시오. 숨쉬기를 할 때 그것을 적용하세요. 문지기는 문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을 잘 지켜봅니다. 그러나 문지기는 그 사람이 문안 어디까지 들어가고 문밖 어디까지 나가는지 그 사람을 따라가지는 않습니다. 문지기는 한 눈 팔면 안 됩니다. 숨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나갔다 합니다. 숨을 쉬기도 하고 잠깐 멈추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관찰하는 이 마음은 너무 빨리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마음은 매찰나 생멸합니다. 그 마음에게 여기(콧구멍 밑에서 윗입술 사이, 인중)를 알도록 명령합니다. 마음은 명령하면 복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게 여기를 알아라 라고 명령합니다. 여기를 계속해서 알도록 여기에 계속 마음을 데리고 옵니다. 사띠는 현재의 마음 상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호흡관찰이니까 현재의 내 마음이 호흡을 관찰하도록 합니다. 길게 들이쉴 때는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길게 내쉴 때는 길게 내쉰다고 분명히 알고, ...” (유튜브 법문에서 인용)

강의가 끝나고 양 대리 일행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몇 주 동안 불교수행반에서 호흡 수행을 지도받고 나서 달라진 점을 서로 말했습니다. 직원1이 “저는 화내는 횟수가 조금 줄어들었습니다.” 직원2가 “저는 화내는 시간이 좀 줄어들었습니다.”고 했습니다. 송 부장이 말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누가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말을 하면 그만 속에서 싫어하는 감정이 갑자기 확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김향원도 말했습니다. “저는 유가(儒家)에서도 인(仁)의 마음을 경황 중에도 놓치지 않으려고 공부한다는 말을 듣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옛 사람들도 이렇게 공부하셨는데, 지금 좋은 시대에 있는 나는 게을러서야 되겠는가 하고 마음을 다잡곤 했습니다.”

그러자 양 대리가 해피스님의 동영상 법문 중에서 한 부분을 소개해 주면서 자신의 언어로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어요. 남의 말을 듣다가 갑자기 마음에서 무엇인가가 확 일어나요. 상대방의 말을 듣자마자 (내면에서 어떤 과정이 진행되어) 갑자기 괴로운 느낌과 관련되어 걷잡을 수 없는 것이 확 일어나는 경우가 있어요. 보통 배우지 못한 범부는 화를 낸 뒤에야 ‘아차, 화를 냈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내면에서 마음(心)이 일어날 때, 마음에 안 드는 괴로운 느낌에 대해서 그 괴로움과 실망한 것이 함께 확 일어날 때는, 내가 준비할 사이도 없이 그런 안 좋은 불만족이 이어지도록 해서 의업의 진에까지 이르도록 해버립니다. 이렇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상황을 만나 ‘내면의 괴로운 느낌과 실망이 함께 표면으로 확 올라오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거슬림(브야밧자, byābajjha)이라고 해보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브야밧자(거슬림)라는 용어를 배웠으니 사띠의 힘을 더욱 길러 이 거슬림의 단계에서 알아차려, 화를 내는 일에 이르지 않도록 제어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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