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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이 잘 안 보여요 6-8

고요2 3 277 2017.10.30 08:22

 

6. 그동안 잘 있었니? 우리가 한 번씩 호흡 보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오늘은 연습(練習)에 대해서 말해 볼게. 한컴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ː(練習·鍊習) : 학문·기예 등을 되풀이하여 익힘.’이라고 나오네. 익힐 련, 익힐 습. 그래,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이 호흡을 보는 연습이야. 숨이 들고 나는 것을 보기 위한 붙잡아서 놓치지 않기 위한 연습이란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꾸 해 보아야 된다고 해. 한 번하고, 두 번하고, 세 번하고, 다섯 번하고, 열 번하고, 오십 번하고, 백 번하고, 천 번하고 ... 이렇게 자꾸자꾸 반복해서 계속해야 한다고 해. 예를 들어 (닦을 수)’라는 한자를 써내기 위해서는 오늘 10번 써보고, 다음에 10번 써보고, 또 다음에 10번 써보면서 익히듯이, 호흡 보는 것도 오늘 하고 내일 하고 모레 하고 이렇게 꾸준히 반복해야 된다고 해.

 

다시 예를 들면 우리가 자전거를 배울 때 어떻게 했니? 우선 부모님이나 친구가 자전거는 이렇게 이렇게 타는 것이다.’ 알려주면 우리는 그 말대로 양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고 엉덩이로 안장에 안고 발로 페달을 밟으며 직접 움직여서 탔지. 어떤 때는 1m 가다가 흔들거리고 2m 가다가 뒤뚱거리고 3m 가다가 넘어지고 ...

 

호흡 보는 연습에서도 그렇단다. 우선 내가 배운 것을 가나에게 들려줘. ‘우리가 하는 호흡 보는 연습은, 조용한 곳에 가만히 앉아. 몸을 곧추 세우고 마음을 챙겨.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관찰해. 길게 들이쉬면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길게 내쉬면 길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짧게 들이쉬면 짧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내쉬면 짧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하고 들려줘.

 

그러면 가나는 내 말을 듣고 연습한단다. 지금은 우선 책상 앞에 앉아, 몸을 곧게 하고 마음을 쉬거나 챙기면서(마음챙김). 그 다음에는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1분 동안 느껴. 지금까지 어떤 때는 콧구멍 주위에서, 어떤 때는 배의 불룩거림에서, 어떤 때는 숨소리를 들으면서 숨이 들고 나는 것을 느껴보았어. 그리고 몇 번은 숨이 들어올 때는 시원하고 나갈 때는 따뜻한 것 같았어.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2분 동안 해보았어. 처음에는 1분을 했는데 이제는 2분을 해보았어. 예를 들어 철봉에 매달려 있기를 1분 동안 하다가 이제는 2분 동안 매달려 있기를 하는 것과 같아. 그러면 호흡 보는 연습에 힘이 더 들고 어려울 수도 있어. 그래도 가나는 잘 참고 잘 해냈어.

 

여기 괄호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알겠지? -모양, -소리, -냄새, -, -( ), 마음-생각들떠오르는 것들이치들 ... 그래. 잘 했어. 몸은 감촉이야. 가나가 숨의 들고 남을 한 번 보았다면(느겼다면, 분명히 알았다면) 그것을 닦을 수()라는 글자를 한 번 써서 연습한 것이라고 여겨 봐. 그렇게 호흡의 들고 남을 10번 봤다면(느꼈다면, 분명히 알았다면) 오늘 하루 (닦을 수)라는 한자를 10번 써서 연습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돼.

 

우리가 숨을 못 볼 때에는 손등에 눈으로 1분 동안 보아서 집중하는 비유를 통해, 귀로 음악을 들을 때 1분 동안 소리에 집중하는 비유를 통해 콧구멍 근처에 내 마음을 주목하는 연습을 했어. 그러나 이제는 손등의 비유 없이도, 음악 소리의 비유 없이도 우리는 콧구멍에 마음을 주목하게 되었어.

 

그래, 이제 상황이 바뀐 것이란다. 그래서 지난 주에는 호흡의 길이에 주목하기 시작했어. 숨을 쉬면서 길게 들이쉴 때는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길게 내쉴 때는 길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짧게 들이쉴 때는 짧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내쉴 때는 짧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하면서 숨이 긴지 짧은지를 보려고 연습하기 시작했어. 숨이 들고 날 때 긴지 짧은지를 분명히 안다고 연습하는 것은 성인께서 가르치신 것이니까 이것은 기억해. 다른 내 말은 잊어버려도 돼,

 

그래, 이제 우리는 배의 불룩거림도 아니고, 숨소리도 아니고, 바로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 긴지 짧은지를 가지고 연습할 거야. 물론 우리가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있으면 자신이 잘 되는 것(누구는 배의 불룩거림, 누구는 숨소리, ...)이 먼저 다가올 거야. 그러면 먼저 잘 되는 것을 통해 숨을 이어보다가 점점 콧구멍 주위의 숨으로 옮겨가면 될 것 같아.

 

, 이제 우리도 조금은 온 것 같다. 처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는데, 지금은 1분을 지나 2분을 연습하고 있잖아. 그리고 배의 불룩거림이나 숨소리를 지나 이제 콧구멍 주위에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알려고 하고 있잖아.

 

이런 비유를 가나도 만들 수 있어. , 내가 만드는 비유를 한번 봐. 여기에서 지하철로 동대구역까지 간다고 해볼게. 그럼 월배역에서 만나는 상황과 상인역에서 만나는 상황은 어떨까?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을 거야. 상인역을 통과해서 월촌역에 가면 또 상황이 다를 거야. 이렇게 우리가 차츰 차츰 나아가면서 만나는 상황은 조금씩 조금씩 달라진단다. 우리는 그것을 향상(向上)’이라고 부르자.

 

, 이제 이렇게 할 수 있겠니? 10번이 많으면 5, 하루에 5번은 호흡이 긴지 짧은지를 한번 보는 연습을 할 수 있겠니? 예를 들어 잠에서 깨어나서 아침 먹기 전에 한번 보는 거야. 숨이 들고 나는 것을, 이때 숨이 긴지 짧은지를. 그리고 수업 시작종이 치기 전에 한 번. 자습이나 복습할 때 쉬고 싶으면 눈을 감고 쉬면서 한번, 저녁 먹기 전에 한 번, 밤에 숙제나 공부할 때 쉬고 싶을 때 눈을 감고 한 번,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 긴지 짧은지를 봐. 그렇게 하루에 5번 정도는 연습할 수 있겠니?

 

cf) 다음에 만날 때는 새로운 것을 배우지 말고 이것을 계속 연습하자. 그래서 다음에는 종교란 무엇인가? 에 대해 들려줄게.

 

 

6-1 종교란 무엇일까?

 

그동안 잘 있었니? 오늘은 종교에 대해서 내가 배운 것을 들려줄게. 나중에 가나가 어떤 단체나 기관의 장()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때 직원이나 구성원들이 종교 때문에 서로 서먹해지고 불화가 생긴다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까? 대답은 종교란 무엇인지를 미리 배워서 알고 있으면 된단다.

 

세상에는 종교를 바라보는 관점이 여러 가지가 있을 거야. 그런데 지금부터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종교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이란다. 그것은 내가 동영상 강의를 듣고 배운 것인데, 여기서는 내 생각을 섞어서 말해볼게. 물론 가나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기본으로 하면 되고, 내 이야기는 참고로 하면 돼.

 

, 주위를 둘러보자. 교회도 있고 성당도 있고 절도 있어. 그곳에 다니는 사람도 있고 친구 중에도 다니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물론 그런 곳에 안 다니는 사람도 많아. 이럴 때 교회에 다니거나 성당에 다니거나 절에 다니는 이 종교 현상에 대해, 나는 어떻게 알고 보아야 할까?

 

먼저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단다. 어떤 분이 이 세상에 태어나셨어. 그분은 명상이나 기도나 수행이나 아니면 어떤 다른 방법을 통해서 무엇을알고 보셨어. 그래서 그분이 알고 보신 무엇을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셨어. 아마 이렇게 말씀하셨을 지도 몰라. “여보시오, 나는 알고 보았소. 무엇을 알고 보았습니까? 자기 자신은 어떤 존재이고, 그래서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고,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은 어떤 것인지를 알고 보았소.” 하고.

 

그러면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은, 나의 삶은, 이 세상은 당신의 말과 같지 않습니다.’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은, 나의 삶은, 이 세상은 당신의 말씀과 꼭 맞는 것 같습니다.’고 할 거야.

 

그러면 이제 그분 곁에는 사람들이 모여들 거야.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일으킨 사람들이 모여들 거야. ‘내가 저 분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라하면 나는 저 분이 가르쳐주신 곳에 도달할 거야.’하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고 실천하고 지키는 사람들이 생겨나서 모일 거야.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면 그것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을 거야.

 

무엇을알고 보시는 그런 분들 중에는 공자님, 예수님

Comments

고요2 2017.10.30 08:23
부처님이 계실 것 같아. 다른 분들도 계시겠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는 이 세 분의 영향력이 커. 그런데 공자님의 경우는 학문에서 주로 공부하니까 우리나라에서 보통 종교라고 하면 기독교와 불교를 말하면 될 거야.

상식으로 말해보면 기독교는 예수님이 태어나셨고 하나님과 창조와 천국을 말하는 것 같아. 불교는 부처님이 태어나셨고 업과 윤회와 해탈과 열반을 말하는 것 같아. 기독교는 성서에 그 내용이 적혀 있고 불교는 경전에 그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해. 이것은 그 종교의 심오한 영역일 거야. 각 종교는 이 심오한 영역에서 자기 자신을 설명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 가. 그리고 이 심오한 영역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이 서로 달라.

그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할까? 세상에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각 종교는 그들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 ‘나쁜 짓을 하지 말고 해치지 말고 사랑하고 도와주라’고 가르쳐. 함께 살아가는 이웃과 남에 대한 이 부분은 각 종교들이 서로 비슷해. 이 부분에서는 다를 이유가 없어.

이렇게 종교는 ①심오한 영역과 ②이웃(남)에 대한 자세가 있어. ①심오한 영역은 기독교와 불교가 서로 달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기독교와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하늘 세상에도 태어나고 지옥에도 태어난다는 불교는 서로 달라. ②그러나 이웃(남)에 대한 자세에서는 서로 비슷해.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남을 해치지 말고, 이웃에 봉사하거나 남에게 베풀며 살아가라는 가르침은 서로 비슷해.


다시 종교에 대해서 말해 볼게. 강의에서 들은 내용을 우리에게 맞게 조금 변형할게.
“종교란, 어떤 분들이 당신들대로 ‘①존재와 ②삶과 ③세상’을 해석하여, 그것을 선언하고, 그 선언을 들은 사람들 중에 동의하고 공감하고 신뢰해서 그를 구세주나 스승으로 삼아 뒤따르고 삶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고, 거기에 백년 • 이백년 • 오백년 • 천년 ... 을 유지되어 내려오면, 이것이 종교구나” 하고 말해도 된대.


그러니까 종교의 창시자 그분들은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 이런 나의 삶, 이 삶의 토대가 되는 세상’에 대해 알고 보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어.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맞다고 믿고 따르고 실천하면 기독교인이 되고, 부처님 말씀이 맞다고 믿고 따르고 실천하면 불교신자가 돼. 물론 ‘과학이 발달한 이 세상에서 누가 그런 것을 믿겠는가?’ 하면서 안 믿는 사람들도 많아.

자, 이제 원래 문제로 돌아와서 물어볼게. 내 동료나 직원이 종교 문제로 서로 언쟁하거나 불화할 때 나는 어떻게 그들을 화합하게 할까? 그것은 바로 종교의 두 영역, ①심오한 영역과 ②이웃(남)에 대한 자세 중에서 ②이웃(남)에 대한 자세로 접근하여 풀면 돼.

종교의 ①심오한 영역은 믿음의 문제야. 이 부분은 믿음이 다르면 종교인들끼리는 서로 대화가 안 되는 부분이야. 그러니 이 심오한 부분은 같은 종교인들끼리 말하게 놓아두고, 동료나 직원은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들한테는 ②이웃(남)에 대한 자세의 입장에서 접근하면 돼.

그러니까 회사나 직장 내에서 종교 문제로 서로 다툴 때에는 이렇게 하면 돼. 기독교의 심오한 영역인 ‘하나님, 창조, 천국’ 등과 불교의 ‘업과 윤회와 해탈 열반’은 같은 종교인들끼리, 또는 듣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말하게 하고, 회사나 단체의 직원들은 ‘서로 존중하고 서로에게 좋게 대하고 서로에게 나쁜 행위 하지 말고 나쁜 말 하지 말고 도와 줄 것은 도와주고 남이 잘 되면 함께 기뻐하는’, ②이웃(남)에 대한 자세, 이런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 쓰게 하여 서로간의 불화를 끝내고 화합하도록 조정해나가면 된단다.
고요2 2017.10.30 08:24
7 그동안 잘 있었니? 세월이 참 빠른 것 같다. 초등학생 때 처음 만났는데 가나도 벌써 고등학생이라니. 학교에서 훌륭한 선생님들께 잘 배워서 가나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배움이 늘어나고 지식도 점점 쌓여가네. 대답하는 것에 조리가 있고 깊이와 넓이도 있구나. 장하다.

공자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해.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찾아보니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하고, 三十而立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而耳順하고, 七十而從心所欲하되 不踰矩호라’ 고 나온단다. 여기서 ‘삼십이립(三十而立)’은 ‘서른 살에 자립하였고’ 또는 ‘서른 살이 되어서는 누가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었고’ 라는 뜻이라고 하는구나.

나를 돌아보니 나는 50이 넘어서야 비로소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게 된 것 같다. 그 이전까지는 누가 ‘이것이 진리입니다.’하면 거기로 가 보았고, 다른 누가 ‘아닙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하면 또 거기로 가 보았단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이 바른 것이고 무엇이 그릇된 것인지를 배워서 알게 되어 그릇된 말에는 끌려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말해 본단다. ‘나는 오십이 넘어서 이립(而立)하게 되었다’고.     

그러나 가나는 40대에 이립(而立-스스로 자신의 길에 서다)할 수도 있고 30대에 이립할 수도 있을 거야. 지금처럼 학교에서 훌륭한 선생님들로부터 배우고 책에서도 배우고 학원에서도 배우고 여기저기 또 다른 훌륭한 분들로부터 배워나간다면, 학식도 넓어지고 도량도 넓어지고 지혜도 부쩍부쩍 늘어날 거야.

자, 다시 호흡 보기 연습을 이야기할게. 지금까지 우리는 2분 정도 호흡에 머물러있기를 연습했단다. 호흡을 놓치지 말고 보기를 연습했단다. 호흡을 이어보면서 머물며 숨이 길게 들어오는지 숨이 길게 나가는지, 숨이 짧게 들어는지 숨이 짧게 나가는지를 보려고도 했어.

그런데 이제 만약 이 연습을 3 ~ 5분으로 시간을 늘리면 어떻게 될까? 1분, 2분은 시간이 짧으니까 그럭저럭 버티면서 할 수 있었어. 그런데 시간이 늘어나서 3 ~ 5분 동안 계속 호흡을 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비유하면 철봉에 대달려 있기를 1분 2분 하다가 3 ~ 5분 동안 하라고 하면 나는 잘 해낼 수 있을까?

아마 무척 힘이 들 거야. 팔이 무지하게 아프고 몸은 흔들거려서 떨어지려고 하고 시간은 더뎌 지나가고. 그런 경우가 우리한테 이제 찾아왔어. 우리는 이제 호흡 보는 연습을 3 ~ 5분 동안 하려고 해. 과연 이 난관을 해쳐나갈 좋은 방법이 있을까?

그래, 우리가 호흡 보기 연습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고 하네. 내가 들은 것을 우선 세 가지만 말해 볼게. 첫째는 ‘믿음’이야. 믿음은 성인의 말씀을 믿는 것이란다. 만약 내가 공자님 제자라면 나는 공자님 말씀을 믿고 따라서 살아갈 거고, 예수님 제자라면 예수님 말씀을 믿고 따라서 살아갈 거고, 부처님 제자라면 부처님 말씀을 믿고 따라서 살아갈 거야. 마찬가지로 ‘이 호흡 보는 연습은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해줍니다.’는 것을 듣고 이해하고 믿으면 그것이 바로 호흡 보기 연습을 도와준다고 하는구나.

둘째는 ‘정진’이야. 정진(精進)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말해. 공자님 제지가 공자님 말씀을 열심히 실천하고, 예수님 제자가 예수님 말씀을 열심히 실천하고, 부처님 제자가 부처님 말씀을 열심히 실천하면 그에게는 점점 힘이 생겨서 물러나지 않을 거야. 우리도 호흡 보는 연습을 꾸준히 실천해나간다면 의욕이 생기고 힘이 생겨서 3 ~ 5분을 할 수 있을 거야.

셋째는 ‘사띠(sati)’야. 사띠는 한자로는 염(念, 생각 념)이라고 번역하고, 우리말로는 주로 ‘마음챙김’이나 ‘알아차림’으로 번역한대. 내가 들으니 사띠는 자기 마음의 현재 상태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해. 또는 사띠는 자기 마음을 챙겨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라고도 해. 이런 사띠가 강해지면 내가 호흡에서 떠나려고 하면 그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럼 나는 다시 호흡에 주목할 수 있다고 해.

좀 어렵지? 그래, 어렵단다. 그나마 앞의 두 가지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어. ‘믿음’과 ‘정진’은 여러 곳에 적용해서 이해할 수도 있으니까. 예를 들어 내가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한다는 것도 믿음이야. 그런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면서 성공하려고 노력하게 돼. 이것은 정진이야.

그런데 ‘사띠’가 좀 이해하기 어려워. 사띠는 오늘 우리가 처음 배우는 용어야. 이제 이 사띠를 내가 아는 범위에서 설명해 볼게. 예를 들어 집에 아주 맛있는 빵이 있어. 그러면 학교에서도 그 빵이 생각나기도 해. 그때 ‘아, 내 마음에서 그런 생각을 했구나.’하고 아는 것이 사띠야. 내 마음이 행복할 때 ‘아, 지금 내 마음이 행복하구나.’하고 아는 것도 사띠야. 지금 내가 화가 아주 많이 났어. 그때 ‘아, 내가 지금 화내고 있구나.’하고 발견하는 것도 사띠야.

그래, 이렇게 내 마음이 지금 어떤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사띠라고 하네. 달리 말해보면 마음의 현재 상태를 발견하는 것이 사띠야.


cf) 참고로 정진(精進)에 대해서 내가 들은 것을 말해볼게. 누가 ‘어떻게 노력합니까?’하고 물으면 아마 그 대답이 정진일 거야. 대답 중에는 이런 것이 있을 거야.
‘내가 지금 보니까 ①지금 내 안에 나쁜 것이 생겨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생겨난 나쁘고 해로운 것들을 버리려고 힘씁니다. 또 생각해보니 ②내 안에는 지금은 안 생겨났지만 나중에 생겨날 나쁘고 해로운 것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들이 나중에 안 생겨나도록 미리 떨쳐버리고 제거해놓도록 힘쓰겠습니다.’
‘또 보니까 ③내 마음에는 좋은 어떤 것이 생겨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생겨난 착하고 유익한 것은 더 키워나갑니다. 그리고 또 살펴보니까 ④아직 생겨나지 않은 착하고 유익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이 나한테서도 생겨나도록 힘쓰겠습니다.’는 대답이 있을 수 있단다.
고요2 2017.10.30 08:25
8 그동안 잘 있었니? 감기가 걸렸구나. 아프지는 않았니? 며칠 동안 아프다가 지금은 아프지 않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학교 공부하는 데는 지장이 없니? 그래. 다행이다. 몸조리 잘 하고 빨리 낫기를 바란단다. 호흡 보기 연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니? 그럼 내가 준비해 온 이야기를 들려줄게.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찾아보니 책의 끝 부분에 이런 글이 있네. 원문과 해석을 옮겨오면 다음과 같아. 陶淵明詩云 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 도연명시운 성년(은) 부중래(하고) 일일(은) 난재신(이라) 급시당면려(하라) 세월은 부대인(이니라) : 도연명의 시에 말하였다. 젊은 때는 거듭 오지 않고, 하루는 새벽이 두 번 있기 어려우니, 때에 미쳐 마땅히 학문에 힘쓰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느니라.

이중에서 ‘성년부중래’는 한글에서 다섯 글자가 그대로 한자로 盛年不重來라고 변환되네. 그만큼 유명한 말인가 보다. 그리고 歲月不待人(세월부대인)이라고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나에게도 이 말이 실감난다. 한국사를 읽다가 왕들이 업적을 이루고 돌아가시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한 감정이 한 두 번씩 일어나는 것을 보니.

마침 책에서 읽은 세월의 빠름에 대한 비유가 하나 생각난다. 그 비유에 따르면, 여기에 아주 활쏘기에 능숙한 궁수가 동서남북에 4명이 있대.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네 명의 궁수가 쏜 화살을 달려가서 땅에 떨어지기 전에 잡아오면 그 사람은 어떤가? 대답은 ‘그는 정말로 빠른 사람입니다’ 가 돼. 그런데 그 사람보다 더 빠른 것은 해와 달의 속력이고, 이것보다 더 빠른 것은 해와 달의 앞에서 달리는 신들이라고 해. 그런데 그 신들보다도 더 빨리 소멸하는 것이 수명의 형성력이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선인들은 우리에게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하시는가 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간을 소중히 보내려면 필요 없는 일에 종사하지 않고 되도록 잡념에 빠지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여기 호흡 보기 연습하는 우리에게도 적용해보자. 그래서 연습 하는 동안에 우리가 호흡에 잘 집중하고 잡념에 덜 빠지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1분 2분은 그래도 해냈고 견뎌냈어. 그럼 3 ~ 5분으로 시간을 늘려서 연습하면 어떻게 될까? 힘이 더 들고 더 어려울 텐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중용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중용 제8장,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안회의 사람됨은 중용을 택하여 한 가지 선을 얻으면 받들어 가슴에 깊이 새기고 그것을 잃지 않았다(回之爲人也 擇乎中庸 得一善 則拳拳服膺 而弗失之矣).” 고 나와.

옛 선인들은 좋은 것이나 유익한 것은 간직하려고 했나 봐. 한 가지 선(善)을 얻으면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가슴에 잘 새겨놓고 지키려고 했나 봐. 이제 우리가 책상 앞에 앉았어. 3분 동안 호흡 보는 연습을 하려고 해. 1분, 2분은 참아내고 견뎌냈어. 이제 2분이 넘어 가. 1분, 2분때처럼 내가 잘 한 것을 유지하고 지켜내야 해.

어떤 방법을 쓸까? 그 말을 자꾸 일으키고 기억해야 한다고 해. ‘호흡을 보자.’는 이 말을 자꾸자꾸 일으키고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해. 지금 우리는 마음이 호흡에서 막 떠나려고 해. 그래서 마음이 호흡 보는 일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자꾸자꾸 그 말을 일으켜서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해.

이것은 실제로 입 밖으로 ‘호흡을 보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야. 단지 그 말을 자꾸자꾸 일으켜서 내 마음에게 알려주고 있는 셈이야. ‘마음아, 네가 할 일은 딴 데 가는 것이 아니고 여기 콧구멍 주위에 있어가지고 숨이 들고 나는 것을 보는 거란다.’ 하는 것과 같다고 해.

이때 우리는 “길게 들이쉴 때는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길게 내쉴 때는 길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짧게 들이쉴 때는 짧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내쉴 때는 짧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는 말을 자꾸 일으키고 기억하는 것도 좋다고 해. 그러니까 하여튼 호흡을 보자는 말을 자꾸 일으키는 것은, 마음에게 ‘마음아, 호흡에서 떠나지 말고 호흡을 이어보면서 호흡이 남기는 것을 봐’라고 자꾸 일깨워주는 것과 같다고 해.

이때 우리는 이 말들에 걸리지는 않는다고 해. 그 말을 자꾸 자꾸 일으키는 것이 호흡 보는 일에 방해될 것 같지만 사실은 방해가 안 된다고 해. 실제로 해 보면 알 수가 있대.

그래. 이제 우리는 3분을 향해 가고 있다. 방해 받지 않는 곳에서 3분 동안은 숨만 보는 거야. 철봉에 1분은 잘 매달렸어. 2분도 이를 악물고 매달렸어. 이제 2분이 지났어. 그래서 힘이 거의 다 빠졌어. 이때 ‘이 호흡 보는 연습은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해줍니다.’는 말을 믿고, 다시 힘을 내어 노력하는 거야. 그러는데 어느 순간 내 마음이 ‘아, 힘들어. 이제 그만 해야겠다’면서 2분 5초 만에 철봉에서 내려오려고 할 때, 바로 그때 우리는 이런 마음을 발견하여(알아차려서) ‘안 돼. 마음아, 그러지 마. 계속 매달려 있어.’라고 해. 그러면 마음은 다시 1분때, 2분때처럼 잘 해 온 것을 계속 유지하면서 매달려 있으려고 할 거야.

이렇게 내 마음을 길들인단다. 이렇게 내 마음을 길들이면서 제어한단다. 여기서 마음을 길들인다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마음을 다스린다’거나 ‘마음을 닦는다‘고 해도 될 거야. 그래서 마음을 잘 길들여서 나쁜 길에 빠지지 않고 악에 물들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신을 이기고 가는 사람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단지 호흡을 보고 있는 것은 수동적인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런데 내가 들으니 그렇지 않다는 거야. 단지 숨이 들고 나는 것을 보고 있다고 해서 이것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해. 사실 숨을 이어보면서 머무르는 힘, 이것은 아주 굉장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이런 마음의 힘을 수행력이라고 한대. 이 힘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나쁘고 해로운 것들을 떨쳐버리고 물리쳐 낸다고 하는구나.
 
음, 몸이 아픈데 연습할 수 있겠니? 그래 그럼 연습하자. 휴대폰에서 3분 후로 타이머를 맞추어 놓자. 자, 이제 눈을 감고 호흡 보기 연습을 하자.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3분 동안은 오직 호흡만 주목하자.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면) 숨이 자신에게 드러나기 시작하니 자기가 잘 하는 것으로 우선 호흡을 잡고, 호흡이 잡혀지면 다음에는 들고 나는 숨의 길고 짧음을 이어보면서 연습하자. 준비되었니? 그럼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