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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계(六界) (녹취)

고요2 3 258 2017.12.31 11:46

 

합송경 5-2[오온-오취온 2)- 육계](부산 합송경 법회 171213)

[동영상] https://youtu.be/3Cm1pdy6KIs

 

 

 

(2931~ 3833)

그래서 자, 따지자면 요소들이 결합해서 생겨나는 이것이 구체적으로 우리 삶에서 만나지는 어떤 것 물질적인 어떤 것이라고 우리한테 규정될 때는, 사실은 지수화풍 사대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지요. 법우님, 무엇이 하나 더 있는 건가요?

 

여기에 사실은 결합했다, 결합한 것이 우리 삶생활에 적용된다고 할 때는 어떤 것으로 규정이 되어야 하는데, 규정이 되기 위해서는 공()이라는 것이 필요해지지요. 비어있는 이 공이라고 하는 것이 불교안에서는 굉장히 중요하게 나타나집니다.

 

앞으로 우리가 삶을 설명할 때보면 예를 들어 부처님 당시 인도에 있던 외도 스승들, 육사외도라고 하지요. 그 육사외도 중에 아지따 께사깜발리 라는 사람이 있어요. 아지따 께사깜발리는 사람을 정의하는데 우리와 같은 사람을 정의하는데 무엇이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사람은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렇게 정의를 해요. 이것이 무엇인가요?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어쨌든 아지따 께사깜발리는 사람이라는 것은 지수화풍이라고 말을 해요. 뭐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다른 표현이 있겠지만 사람을 정의하는 데는 지수화풍이라고 나와요.

 

여기에 비해서 부처님은 사람을 정의하는데 뭐라고 하시는가 하면 지수화풍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이라고 하는 이 여섯 가지(지수화풍공식)로 사람을 정의해요. 이 개념이 무엇인가 하면, 지수화풍이라는 이야기는 이것이 이제 요즘 말하는 유물론이라는 개념인 거예요. (그런데) 유물론이라고 해서 물질만 있다는 개념은 아니에요.

 

뭐 아무리 아지따 께사깜발리라는 사람들도 지수화풍으로 사람이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사람한테 마음이 없다는 것이겠어요? (아니지요). 유물론이라는 개념은 본질적인 요소, 삶의 본질적인 요소는 물질이다. 이 물질로 이루어진, 그래서 몸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이 삶을 전개하면서 살아가는 가운데 이차적으로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고 합니다. 마음이 있기는 있는데 본질적인 것,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몸의 작용이 고도화되면 마음은 이차적으로 생겨나는 것이고, 그래서 오직 일차적인 것은 몸뿐이야라고 하는 것이 유물론이지요.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는 중요한 개념 하나가 어떤 것인가요? 이 사람이 살다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유물론에서) 살아있는 동안은 이차적으로 생겨났다고 해도 이 마음이라는 것이 어쨌든 자기가 주인인체 하잖아요.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은 마음이 주인인체 몸을 끌고 살아가지만,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몸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유물론에서) 마음은 몸에서 이차적으로 파생되어 생겨났다고 하므로 토대가 되는 몸이 죽어버리면 토대를 상실하므로 마음이 있을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마음이라는 것도 근거를 상실하니까 마음도 소멸하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유물론, 이 개념은 단멸이라는 개념으로 넘어갑니다. 단견(斷見) 또는 단멸론(斷滅論), 이렇게 말하는 거지요. 그리고 이것은 어떻게 연결되나요? 그러니까 죽으면 끝이라고, ‘윤회가 없다, 이렇게 연결되지요. 이것이 유물론의 기본적인 개념이지요.

 

여기에 비해서 부처님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지수화풍뿐만 아니라 식이라고 하는 것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 아지따 께사깜발리가 말할 때 지수화풍만이 일차적인 것이고 마음은 이차적인 것으로 했잖아요. 부처님은 식이라고 하는 이것을 이차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것도 동등하게 일차적이라는 거예요. 그냥 몸이라는 것도 나를 구성하는 일차적인 것이고 식()이라는 이 마음도 나를 구성하는 일차적인 거라는 거예요.

 

물론 이제 일차적인 이 식()(브라만교에서는) 아뜨만으로 불리는 신()의 분신이어서, 본질이냐 참된 것이냐 영원한 것이냐? 이렇게 말할 때, 부처님은 일차적이지만 이 식은 무상한 것이다 연기하는 것이다고 하여 아뜨만을 말하는 상견(常見)하고는 차별을 보여주는 거예요. 하여튼 그것은 다음 문제이고요.

 

일차적인 이야기는 부처님 보시기에는 식이라는 이 마음이 몸과 대등한 (것이라는 거지요). 몸에서 파생되는 이차적인 것, 그래서 몸에 종속된 마음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대등하게 몸도 나의 일부이고 마음도 나의 (몸과) 대등한 일부다 라고 말을 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등한 것이니까 살다가 죽었다고 할 때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몸이 기능을 잃는 거잖아요. 그랬을 때 마음은 몸이 죽었기 때문에 따라 죽어야 된다거나 하는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마음은 마음 자체의 특성에 의해서 (전개된다는 거예요). 만약 마음 자체가 몸 죽으면 따라서 소멸하고 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몸이 죽을 때 마음도) 소멸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몸에 종속되지 않는 마음은, 삶의 과정을 누적해가면서 해탈할 때까지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마음은) 몸이 죽어도 (몸에) 종속되지 않았다 해탈할 때까지는 죽지 않는 것이다 는 이 개념에 의해서, (마음은) 몸이 죽어도 따라죽지 않는 거에요. 그 다음에, 뭐 아뜨만 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다음 이야기이고요.

 

이래 가지고 부처님은 지수화풍 공식’, 이것을 육계라고 하지요. (사람을) 여섯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심으로써 (중생은) 윤회하는 것이다, 윤회하는데 어떻게 하는가 하니 식()이 무상하고 연기하는 것이다 라고 해서 상견도 틀렸다고 하시는 거지요.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주제를 벗어나니까 뒤에 보고요.

 

이렇게 사람을 정의하는 방법이 달라요. 중요한 것은 우리는 아지따 께사깜발리가 설명하는 사람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에요.

Comments

고요2 2017.12.31 11:49
우리는 부처님이 설명해주시는 사람을 공부하는 거잖아요. 자, 이럴 때에 지금 이야기 중에 한 가지 거론되지 않은 것이 있었지요. 공(空)이라는 것(이지요).


(38분 34초 ~ 44분 29초)
이 공(空)이라는 것은 그동안 불교학자들 사이에서는 설명이 좀 애매한가 봐요. 그래서 오랜 역사 동안에 설명되는 바에 의하면 이 공(空)은 그래도 물질의 영역에 소속시키는 것이 맞을 거야, 라고 이렇게 설명이 되는 것으로 제가 좀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은 우리가 조금 전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고민거리도 아니지요.

공(空)이라는 것은 뭐에요? 비어 있는 거예요. 비어 있다라고 하는, 왜 이 비어있음이라는 것이 여섯 가지 요소(六界육계)라는 개념으로 사람을 • 나를 구성하는 것일까요? 바로 (컵을 규정할 때 보았던) 이 개념입니다. 즉 지수화풍은 그냥 네 가지 요소로 되어 있어요. 그 네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서 어떤 형태를 갖추면 그것을 가지고 컵이라고 하잖아요. 분명히 공간이라는 것이 안팎에서 함께 해주어야 이것이 컵이라고 규정이 되잖아요. 

법우님, 조금 있다가 식사하실 것인데 식사를 하시려면 이것이 사실은 조건이 필요해요. 밥이 우리 몸으로 들어갔다가 몸 안에서 죽 지나가 가지고 나중에 해소될 수 있는 내 몸안에 비어있는 자리가 필요해요. 그래서 입을 벌리면 입도 비어있고 목구멍도 비어있고 위도 비어있고 창자도 비어있고, 항문도 비어 있잖아요.

만약에 공간이라는 개념이 나를 설명하는데 적용되지 않는다면 이것 참 곤란해요. 그래서 분명히 부처님은, 사람이란 • 나란 존재는 몸과 마음이다, ‘물질적인 것’과 ‘물질과 대등한 종속되지 않는 마음’이 함께 해서 내가 이루어진다, 이때 몸이라고 하는 • 물질이라고 하는 이것은 기본적으로 지수화풍의 요소이지만 이 요소가 <내 몸>이라고 하는 어떤 규정상태가 되려면 안팎으로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시는 거예요).

밖의 공간이라는 것도 그렇잖아요. 만약에 밖의 공간이 조금 작다고 하면, 공간이 작다는 것은 뭐예요? 나를 예로 들면, 내 몸이 공간을 차지하는 (정도가 작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좀 키가 크고 뚱뚱한 사람은 나를 둘러싼 공간이 좀 작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안팎으로 공간이 둘러싸고 있고 차지하고 있고, 이렇지요.

이렇게 공간이라는 개념이 나를 설명하고, 또한 물질적인 어떤 것을 규정하는 데 공간이라는 말이 함께 쓰여요. 이것이 명확하지요? 공간이라는 개념 없이 물질을 말하고자 하면 뭔가 덩어리가 하나 있을 뿐이지요. (그래서 공(空)은) 이것(덩어리진 어떤 물질)이 어떤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우리의 삶에서 적용될까? 하는 이 개념이지요.

그래서 육계라고 말할 때에 이 공(空)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자연스럽게 지수화풍이라는 요소가 결합하는 • 결합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또 하나의 물질적인 요소(로 나오게 되지요). 그러나 비어있는 ‘이것을 무엇이다’고 말할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물질을 정의하기를 사대와 사대조색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물질적인 것이 우리 삶에서 적용되기 위해서 무언인가로 규정되는 데는 ‘공(空)-비어있다’는 의미의 공간이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 이 개념(이지요).
고요2 2017.12.31 11:50
그래서 이제 경전에서 보면 코끼리 발자국에 비유한 큰 경(M28)에서 비유를 들어주어요. 집이라는 것을 말할 때 짚으로 덮이고 나무 기둥으로 세워지고 진흙을 으깨서 붙이고 그리고 공간에 둘러싸이면 이것을 집이라고 한다(고 나와요). 이 개념이 타당하지요. 그리고 이러하듯이 뼈와 살과 근육과 피부와, 이런 것들이 공간으로 둘러싸여서 있을 때 이것을 색(色)이라고 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지난번에 보았지요. 색이라고 하는 이것은 몸으로도 쓰이지요.

색(色)이라고 하면 물질로도 쓰이지만, 경전은 바로 이 뼈와 살과 근육과 피부와 공간으로 둘러싸인 이것을 색이라고도 하지요. 이때는 물질이라고 하면 (이상하니까 몸이라고 하면 됩니다). 색(色)이라고 하는 이것은 몸이라는 의미로도 쓰여요. M28에서 아주 직접적인 비유를 말해주고 있어요. 자, 이렇게 되면 물질을 말할 때 사대와 사대조색, 그 의미를 우리가 명확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44분 30초 ~ 45분 54초)
오늘은 이야기를 조금 연결해서 사대조색이라고 하는 것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냥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다, 저것이다’고 규정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공간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함께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이 정의하시는 사람(을), ‘지수화풍공식’이라는 여섯 가지 요소라는 측면에서 (보았습니다). 지수화풍공식에서 ①공(空)-공간에 의해서 규정되는 몸, ②그리고 이 몸에 종속되지 않은 것으로의 식(識) 해서, 육계로서 사람을 부처님은 정의하고 있다(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불교 안에서 누군가가 ‘윤회 없습니다, 아이고 요즘 같은 과학 시대에 뇌과학도 모릅니까?’ 등으로 다양하게 말하면서 불교 안에서도 윤회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윤회가 부정되면 불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런 주장은) 부처님이 설명하시는 사람에 대한 정의에 어긋나는 거예요. 하여간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명확하게 알기로 하지요. ... 특히 이 이야기에서 공이라는 개념을 얹어서, 지수화풍공식으로 정의되는 사람의 이야기는 꼭 기억해 주셔야 하고요.
고요2 2017.12.31 11:51
(46분 15초 ~ 47분 32초)
어쨌든 이제 부처님은 색수상행식 다섯 가지가 삶의 과정에서 결과되어서 남아 있고, 그것이 이전의 결과로 생겨나서 쌓여있는 것에 더해지는, 그래서 삶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누적하는, 그래가지고 색수상행식이라는 다섯 가지는 온(蘊), 샇여있는 것이라는 말로 표현을 하지요.

어쨌든 오온이라는 것은 삶의 과정이 누적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 어떤 색(色), 즉 어떤 몸으로 내가 누적상황이 달라질까? 어떤 삶에 의해서 어떤 경험들이 누적되어 있을까? 어떤 상(想)-경향성들이 누적되어 있을까? 어떤 행(行)-형성작용들이 누적되어 있을까? 그리고 어떤 식(識)-마음들이 누적되어 있을까? 이 부분을 설명하는 것이 오온이고, 그것(오온)에 대해서 집착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오취온-나’로서 정의된다 라는 부분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요.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