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일체유심조 / 눈-달 이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고요2 0 247 2018.02.07 09:06

 

예전에 어떤 사람들이 사용했던 표현을 두고 고민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애매하면서도 그럴듯하여 저를 혼란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一切唯心所造)’눈이 달을 볼 때만 달이 있다.’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동영상 법문을 통해서 배웠기 때문에 더 이상 이 말들에 혼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누가 일체유심조라고 하면 이제는 이렇게 물어보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그대가 말씀하신 일체는 무엇인가요?” 하고. 그래서 그가 일체를 십이입처(十二入處)라고 하면 경에 의거하여 더 논의해도 되고, 그냥 일상에서 두루뭉술하게 사용하는 용법으로 대답하면 나도 일상적인 용법으로 대화하면 됩니다. 이렇게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놓으면 더 이상 혼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일체를 십이입처로 대답하면, ‘안이비설신의의 태어남(또는 일어남)에 대해서 논의하고, ‘색성향미촉법의 태어남(또는 일어남)에 대해서 논의하면 됩니다. 또 일체를 일상적인 용법으로 사용하면, 한 가지 예로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의미로 대답하면 나도 정말 그래. 내가 화내고 질투할 때는 얼마나 세상이 괴로웠나!’ 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가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다음 표현을 보겠습니다. ‘내가 눈으로 저 달을 볼 때만 달이 있다. 내가 눈으로 저 달을 안 보면 달은 없다.’는 표현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이런 말은 전혀 상식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눈으로 보든 안 보든 버스 정류장은 저기에 있고 도서관은 또 그 너머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답변을 하나 배웠습니다. 어떤 답변입니까? 내가 눈으로 볼 때만 저 달이 있다고 하는 것은 색()과 색상(色相)을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하나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내가 눈으로 보든 안 보든 저기에 있는 것은 색()입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보이는 것은 색상(色相)이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탐도 상()을 만들고 진도 상을 만들고 치도 상을 만든다.’고 배웠습니다. 이렇게 탐진치로 오염된 색()은 색상(色相)인 셈입니다. 그래서 배우지 못한 어리석은 범부이거나 저같이 탐진치로 물든 범부는 색을 있는 그대로 못 보고, 탐진치로 요염된 색상(色相)을 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저 달을 볼 때 보아 안 것은 색상(色相)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든 안 보든 저 달은 그냥 저 색대로 있다고 하겠습니다, 무상, , 무아의 특성을 가진 색으로.

 

 

이렇게 이해하여 저는 이제 표현 두 가지에서 오는 고민을 해결했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