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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과 관련하여 도입부 조금

고요2 0 251 2018.04.30 20:01

 도시가 있었습니다. 먼 옛날부터 그 도시 주변에는 고행자들을 위한 원림(園林)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고행자들은 몸으로 겪을 수 있는 고통이란 고통은 다 참고 견디는 수행을 했습니다. 음식의 양을 줄여 하루에 콩 10개만 먹기, 밤에 눕지 않고 앉아서 잠자기, 말하지 않기, 가시덤불 위에 눕기, ... 등등. 그래서 당시 고행자들은 살이 다 빠져 몸이 비쩍 말랐고 뼈가 다 드러나 보였고 피가 말랐습니다. 그러나 고행 수행자들이 이렇게 자신의 몸을 극심하게 학대하여 수행했지만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 도시도 계속 이어져왔고, 고행자들을 위한 원림도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원림에는 몇몇 단체가 고행을 하면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고행 수행자들은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고행 단체는 옛 고행자들처럼 몸을 학대하는 수행을 하지 않고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단체의 수다 고행자1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 서쪽 어디에 대영웅이라고 불리는 수행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는 숲이나 밀림 속에 있는 조용하고 소리가 없고 한적하고 사람들로부터 멀고 혼자 앉기에 좋은 외딴 처소를 수용한다고 합니다.” (해피스님의 동영상법문, 그리고 (D25)에서 인용 및 변형, 아래의 글에서도 적절하게 인용하거나 변형하거나 실마리를 얻음)
 
그러자 수다 고행자2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이름만 대영웅이고 실제로는 빈 깡통과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회중(會衆)에 참여하지 않고 대화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자이겠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회피하기 위해 변두리만을 돌아다닐 것입니다.”
 
수다 고행자3이 말했습니다. “마침 그 대영웅을 공경하고 받드는 어떤 선인과 제자들이 오늘 이곳을 지나간다고 합니다. 오늘 그가 이곳에 오면 우리는 한 방의 질문으로 그 선인을 꼼짝 못하게 하고 빈 자루처럼 그를 비틀어버립시다. 그래서 서쪽에 있다는 그 대영웅의 가르침이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시다.” 
 
그때 마침 빙청 선인과 제자들과 다성 일행이 멀리서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러자 수다 수행자들은 서로에게 수다를 멈추고 조용히 있자고 했습니다. 저 빙청 선인 일행은 조용함을 좋아하니까 자신들도 조용하게 있자면서 모두 입을 다물었습니다. 마침내 빙청 선인 일행이 도착하자 수다 수행자들은 자리를 권하고 서로 인사를 건네며 잠시 환담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수다 수행자4가 드디어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선인이 대답해내지 못할 것 같은 질문을 해서 대영웅의 가르침을 깍아내려는 심산이었습니다. “선인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대영웅은 제자들을 어떤 가르침으로 인도합니까? 즉 대영웅의 인도를 받은 제자들은 어떤 가르침을 통해 위안을 얻어 굳은 의지로 청정한 도를 닦기 시작합니까?”
 
빙청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수다 고행자4여, 그대와 같이 다른 견해를 가졌고 다른 가르침을 받들고 다른 가르침을 좋아하고 다른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참으로 대영웅의 지도를 받는 제자들이 위안을 얻고 청정한 도를 시작하는 그 가르침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먼저 그대들에게 전승되어 온 고행은 어떤 것인지를 말씀해주십시오. 그리고 그 고행은 어떻게 해서 완성되는지를 말씀해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거기에 맞추어 대영웅님께서 제자를 인도하여 위안을 얻게 하고 청정한 도를 닦기 시작하도록 이끄는, 그분의 가르침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수다 고행자5가 말했습니다. “우리의 스승으로부터 전승되어 온 고행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관습을 거부하며 삽니다. 그릇으로 주는 것을 받지 않고 손에 주는 것을 핥아 먹습니다. 음식을 주려고 오라고 하면 가지 않고,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고 모기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채소를 먹고 떨어진 잎이나 나무 열매나 뿌리를 먹습니다. 또 소똥을 먹습니다. 옷은 거친 옷만 입고 사람들이 주는 따뜻한 옷은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낮에 앉는 자리에서도 앉지 않고 서 있고, 밤에 잠을 잘 때도 눕지 않습니다. 이것을 지킬 때 고행은 완성되고 마음은 깨끗해집니다. 우리는 이런 고행을 통해 몸이 빠져드는 즐거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즉 고행에 의한 혐오를 완성합니다.”
 
이 말을 듣고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그대들에게 전해진 고행은 참으로 행하기 어렵군요.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참으로 굉장한 실천력을 가진 사람이겠군요.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 고행은 사람을 ‘지치게 하는 실천’이고, ‘마음의 더러움을 제거하지 못하는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대들이 말하는 ‘고행에 의한 혐오’를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향상은 아닐 것입니다.”
 
빙청 선인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수다 고행자들의 마음이 언짢아졌습니다. 미움과 분노와 두려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수다 고행자6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고행은 일반 사람들한테는 너무 힘들겠지요. 그래서 지치게 하는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것은 참아주겠습니다. 그러나 고행에 의한 혐오가 마음의 더러움을 제거하지 못한다는 선인의 말에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 우리의 고행이 마음의 오염원들을 제거하지 못한다고 말합니까?”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수다 고행자6이여. 우리는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논쟁에는 두 가지 결과가 있다. 칭찬과 비난이 그것이다.’ 라고. 자, 우리 잠시만 마음을 가라앉힙시다. 우리가 흥분하거나 화를 내면 다른 사람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수다 고행자6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안정시켜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여기 어떤 고행자가 전승되어 온 고행을 해내면 마음이 흡족하고 이제 자신의 의도하는 바가 성취되었다고 여깁니다. 고행을 통해 마음이 흡족하고 그의 의도가 성취되었다고 여기는 이것도 마음의 오염입니다. 그리고 다시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이것도 마음의 오염입니다. 또 다시 그 고행에 취하고 미혹하고 방일함을 얻게 되면 이것도 마음의 오염입니다. 또 다시 고행을 하여 남들로부터 음식과 거처할 곳과 옷을 얻거나 다른 물품을 얻게 되어 마음이 흡족하고 그의 의도가 성취되었다고 여긴다면 이것도 마음의 오염입니다.’ ...”
 
수다 고행자들이 불만에 차서 말했습니다. “선인이여, 여기서 대화를 중단해야겠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마음이 매우 불쾌합니다. 더 이상 대화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에 빙청 선인 일행은 수다 고행자들과 작별을 고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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