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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닦지 않고 마음만 닦습니까?

고요2 0 274 2018.05.27 14:23

 빙청 선인 일행이 도착한 곳은 시지푸스 마을이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삶에 몰두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하늘에 닿으려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에 닿는 방법으로 마을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함께 닦았는데, 공부(수행) 시간의 절반은 몸을 단련하는데 썼고 절반은 마음을 닦는데 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까지 아무도 하늘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웃 마을 사람들은, 아무리 바위를 굴러 올리더라도 꼭대기에 가면 다시 굴러 떨어지고야 마는 운명을 가진 그리스 신화 이야기를 본떠, 그 마을을 시지푸스 마을이라고 불렀습니다. (인터넷 검색, 국어사전 : 시지푸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코린트의 왕. 제우스를 속인 죄로 지옥에 떨어져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벌을 받았다. 그가 밀어 올리는 바위는 산꼭대기에 이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기 때문에 그는 영원히 이 일을 되풀이하였다고 한다.)


빙청 선인 일행이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저기 노인과 그의 제자들을 보니 저들은 몸은 단련하지 않고 마음만 닦는 자들인가 보군.’, ‘마음만 닦는다면 반쪽 수행자일 뿐이지.’ 하고. 빙청 선인 일행은 마을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잠시 큰 나무 아래에 앉았습니다. 그때 마을 젊은이 몇 명이 다가와서 다성에게 당신들은 어디에서 온 무엇 하시는 분인지를 물었습니다. 이에 다성이 자신들은 저기 동쪽 지역에서 왔고, 빙청 선인과 제자분들은 수행자들이시고 자신을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분들과 동행하면서 배우는 여행객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들은 빙청 선인에게 나아가 인사를 드리고 시간을 좀 내어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빙청 선인은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마을 젊은이1이 먼저 자기 마을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는데, 다음과 같았습니다. 옛날에 신들과 아수라들 간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신들이 이겨 아수라왕의 목과 팔다리를 묶어 신들의 왕 앞에 데려 갔습니다. 그런데 아수라왕에게 ‘신들은 법답고 아수라들은 법답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신들의 왕에게 잡힌 몸이 되었다.’는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아수라왕을 묶고 있던 밧줄이 풀리면서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들을 갖추고 즐기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이번에는 아수라왕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보라, 결국은 아수라들이 바르고 신들이 바르지 않도다. 나는 이렇게 풀려났고 감각적 욕망들을 즐기지 않는가! 그래, 이제 나는 아수라 궁전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러자 아수라왕은 다시 자신의 몸과 팔다리가 묶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들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아수라왕의 속박은 미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라(악마)의 속박은 이보다 더 미묘하다고 했습니다. (S35:248에서 인용 및 변형)

 

마을의 조상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서 도를 닦는 데는 마음이 중요하지만 몸도 중요할 것 같다면서 그때부터 몸을 단련하는 수행을 병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시지푸스 마을에서는 몸을 단련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빙청 선인께서도 몸을 단련하는 수행을 하시는지를 물었습니다. 빙청 선인이 우리는 무술인이나 운동선수처럼 몸을 단련하는 수행을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마을 젊은이2가 말했습니다. “선인이시여, 그럼 선인께서 하시는 수행은 몸을 닦는 데는 몰두하지 않고 마음을 닦는 데만 몰두하는 수행입니까?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몸도 닦고 마음도 다 닦습니다.”
마을 젊은이2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습니다. “저희들은 무예를 익히면서 몸을 닦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운동선수들처럼 몸이 유연하고 팔다리가 강철 같고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인과 제자분들은 저희들과는 달리 연약하고 팔다리가 단단하지도 않는 것을 봅니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먼저 몸을 닦지 않고 마음도 닦지 않은 경우입니다. ‘... 그에게 몸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즐거움의 경험도 마음(心)을 소진하여 머물고, 마음(心)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괴로움의 경험도 마음(心)을 소진하여 머문다면, 이런 사람은 누구든지 몸을 닦지 않고 마음(心)을 닦지 않은 자이다.’ 하고.” (M36에서 적절하게 인용함, 아래도 마찬가지임)

 

마을 젊은이2가 말했습니다. “선인이시여,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여기 배우지 않은 범부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에게 즐거운 느낌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그는 즐거운 느낌이 지속되기를 갈망합니다. 그렇게 즐거운 느낌을 갈망하면서 즐거운 느낌을 따라다니다가 그는 마음을 소진시켜 버립니다. 이것은 그가 몸을 닦지 않아서 즐거운 느낌을 계속 누리려고 갈망하다가 마음을 지치게 하고 피폐하게 해버리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그에게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그는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면 그 즐거운 느낌이 지속되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이제 즐거운 느낌이 소멸합니다. 즐거운 느낌이 소멸하고 다시 괴로운 느낌이 일어납니다. 마음을 닦지 않아서 그는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면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런 근심, 상심, 슬픔, 울부짖음으로 마음을 지치게 하고 피폐하게 해버립니다.”

 

마을 젊은이4가 말했습니다. “선인의 말씀을 이해하자면, 몸을 닦은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즐거운 느낌이 일어나도 갈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소진시키지 않습니다. 또 마음을 닦은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더라도 근심하거나 상심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소진시키지 않습니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거나 수행할 때 즐거운 느낌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붙잡아서 내 마음을 다 써버리지 않는 것이 몸을 닦는 것이고,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더라도 ‘아이고, 아파라’ 하면서 근심 슬픔 비탄 절망들에 빠져 내 마음을 다 써버리지 않는 것이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다성은 대화를 들으며 정리해보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대영웅의 가르침에서는, 몸을 닦는 것이란 즐거운 느낌에 빠지지 않고 갈망하지 않아서 마음을 소진하지 않고 머무르는 것을 말하는구나. 마음을 닦는 것이란 괴로운 느낌에 빠져 내 마음을 소진하지 않고 머무르는 것이구나. 이것을 몸과 마음을 양면으로 함께 닦는 것이라고 하는구나.’ 하고. 그랬습니다. 대영웅의 가르침에서는 수행자가 몸을 닦는 것으로 체력 단련이나 무예 연마를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의 둘 다에 대해서 마음을 소진하지 않는 것, 이것이 몸과 마음을 함께 닦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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