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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 충치 **

고요2 0 290 2018.07.14 12:11

어느 여름날 오후. 동네 아이들이 개울을 따라 올라가며 놀았습니다. 미꾸라지가 있나 살펴보기도 하고 가재가 있나 돌을 들추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도마뱀들이 나오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 물뱀이 지나가면 달아나기도 했습니다. 얼마쯤 개울을 올라갔을까, 아이들이 고무신을 말리려고 바위에 앉아 쉬고 있으니 저 앞에서 동네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얘들아, 놀러왔구나. 그런데 더 이상은 위험하니 올라가지 말고 저 아래에서 놀아라. 며칠 전부터 이곳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서 아이들에게 접근한다고 하는구나. 그 사람을 만난 아이들은 모두 충치가 한 개씩 생겼다고 한단다.” 아이들은 겁을 먹고 서둘러 저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날 이후 아이들은 낯선 사람이 나타난다는 곳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저 아래서만 놀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 오후도 날씨는 무더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개울을 따라 올라 가다가 물이 많이 고여 흐르는 큰 웅덩이에서 멱을 감았습니다. 그때 숲속에서 큰 짐승이 내는 소리가 무섭게 들렸습니다. 아이들이 놀라서 재빨리 옷을 입고 뛰었습니다. 아, 그런데 아이들이 개울 아래로 뛰지 않고 위쪽으로 산 쪽으로 뛰고 말았습니다. 한참을 달리다가 아이들이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데 앞에 시커먼 그림자가 딱 나타났습니다.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돌아서려는데 삼십 대 초반의 남자가 말했습니다. “얘들아, 괜찮다. 나는 엿장수란다. 여름에 날씨가 너무 더워서 잠시 여기에 머물고 있지.” 아이들은 그 남자의 말을 믿지 않고 아래로 뛰어가려는데 그 남자가 “여기 맛좋은 엿 있다.” 하면서 엿 봉지를 던졌습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엿 봉지에 걸려 넘어져 다리를 삐었습니다. 친구를 남겨두고 갈 수가 없어서 아이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습니다. 아이들이 겁에 질려 남자를 바라보았습니다. 남자는 “어이쿠, 안 다쳤나?” 하면서 아이의 발목을 손으로 만졌습니다. 그랬더니 아이의 다리가 ‘쨘!’ 하고 다 나았습니다.

 

남자가 말했습니다. “우리 집은 시원하니 그리로 가자.” 하면서 앞장서니 아이들이 저절로 딸려갔습니다. 남자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엿을 많이 내왔습니다. 처음에는 의심스러워 주저하다가 마지못해 한 입 먹어보니 맛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자꾸자꾸 먹었습니다. 남자가 엿을 더 가지러 갔습니다. 그때 아이들 중 큰 아이가 말했습니다. “야, 우리도 이러다가 충치 된다. 그만 먹자.”

 

남자가 엿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더 이상 먹지 않는 것을 보자 남자는 안색이 변하더니 갑자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충치귀신이다. 그동안 나는 여기 온 아이들을 모두 충치로 만들었다. 너희들도 충치로 만들어주마.” 하면서 아이들에게 손을 뻗쳤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들을 놓아주세요.” 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빌었습니다. 너무 간절하게 빌어서 충치귀신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한번 주기로 했습니다. 문제를 냈는데, ‘내가 너희들을 충치로 만들까 아닐까?’였습니다. 이에 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엿장수 마음이에요.”

 

아까 자신을 엿장수라고 했으니 답은 맞았습니다. 그러나 충치귀신은 ‘요런 맹랑한 녀석이 있나’하면서 애써 태연한 척 껄껄 웃더니 한번 더 기회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나쁜 귀신일까 좋은 귀신일까?’ 맞추어보라고 했습니다. 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열 가지 악한 행위가 있다고 해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바람 피우고, 거짓말하고 이간질 시키고 욕설하고 쓸데없는 잡담만 하고, 남의 것을 내 것으로 하려고 하고 걸핏하면 화내는 마음을 일으키고 잘못된 견해가 가득한, 이런 행위가 바로 열 가지 악한 행위라고 해요. 아저씨는 그렇나요?” 충치귀신은 아이의 뜻하지 않은 말에 비틀거리다가 겨우 말했습니다. “너희들, 설마 내가 그런 나쁜 짓만 하는 귀신인 줄 아느냐, 나는 착한 일도 한다.”

 

큰 아이가 계속 말했습니다. “열 가지 착한 행위도 있다고 해요.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고 바람피우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이간질 하지 않고 욕설 하지 않고 쓸데없는 잡담을 하지 않고, 남의 것을 내 것 하려고 하지 않고 화나려는 마음을 잘 제어하고 바른 견해를 가진, 이런 행위는 열 가지 착한 행위라고 해요. 이렇게 살면 아저씨는 착한 이가 되셔요.” 충치귀신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도리어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때 충치귀신 친구가 나타났습니다. “아니, 자네, 이 어린 아이들한테서 쩔쩔 매고 있는가? 내가 상대하지.”하면서 큰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야, 네가 좀 배우기는 배운 모양인데, 도대체 <아는 것>이란 무엇인지 아느냐?” 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라고 배웠어요.”(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이 말에 친구귀신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크, 큰일 날 뻔 했군.’ 친구귀신이 말했습니다. “제법이군, 그러나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너희들은 지금 충치귀신에게 붙잡혀 충치가 될 판인데.”

 

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저희들 힘으로는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어요. 그것은 비유하자면 저기 시원한 우물이 있는 것을 <알아요>, 그렇지만 직접 가서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퍼서 마실 <힘(실천)>은 없어요. 왜냐하면 아직 어려서, 배워 안 것을 닦아 익히고 자꾸 닦아 익혀서 증득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지금은 여기서 빠져 나갈 수 없을 뿐이에요.” 친구귀신은 생각했습니다. ‘음, 그렇긴 하지. 스승 밑에서 무예를 연마하는 제자는 스승의 비법을 다 들어서 알기는 알겠지만, 제자가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수없이 반복 훈련을 쌓아야 하겠지.’

 

친구귀신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네 대답은 다 소용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서로 자기가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다 다르게 말하거든. 참된 앎은 없는 것과 같지. 어떤 사람은 세상의 이치가 ‘이것이다’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저것이다’ 하면서 서로 다르게 주장하거든.”


큰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또 진리에 대해 한 가지만 아는 사람과 전체를 다 아는 사람은 차이가 있어요.” 

친구귀신은 생각했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어떻게 저 아이가 알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충치귀신에게 만약 아이가 제대로 된 답을 말하면 아이들을 모두 놓아주자고 했습니다. 충치귀신은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큰 아이가 말했습니다. “비유를 들어볼게요. 여기 나무가 한 그루 있어요. ①아는 사람은 나무를 알고 나무를 직접 본 사람이고, 모르는 사람은 나무도 모르고 직접 보지도 못했어요. ②한 가지를 아는 사람은 그 나무를 봄에 보아서 봄에 보았을 때의 특징만 알아요. 그러나 나무를 알고 나무 전체를 직접 본 사람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보아서 지혜의 달인이 되었어요. 이것이 그들 사이에 있는 분명한 차이에요.” ((S35:245)에서 실마리를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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