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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딱까(떠오름)에 대해 생각해보며

고요2 0 231 2018.08.04 20:27

 일요일 오전 전기수는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오늘 병원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갑돌이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버스와 지하철이 딱 맞게 와서 1시간이나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전기수는 병원 내 어느 한적한 벤치에 앉아 쉬었습니다. 그때 대학생 몇 명이 옆 벤치에 앉더니 전기수에게 자신들은 어떤 주제에 대해 토론하려고 하는데 조용히 쉬시는데 방해가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전기수는 별 말씀을 다 하신다며 마음 편히 토론하시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주제는 공교롭게도 ‘망상하지 말자’였습니다. 먼저 대학생1이 말했습니다. “나는 길을 걷다가 보면 어느새 망상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해. 또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보면 어느새 나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빠져 들어.” 대학생2가 말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보게 되면 그것과 관련된 생각들이 연이어서 나와. 사람을 보게 되면 저 사람은 어디에 살까? 무엇을 할까?, 물건을 보게 되면 저것은 얼마짜리일까? 나도 저것을 사야지 하면서 생각이 계속 나와.” 대학생3이 말했습니다. “나는 나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 그런 상황이 아닌데 갑자기 나쁜 생각을 하게 되는 거라. 갑자기 누가 미워지고 갑자기 누가 좋아지고 갑자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고, 그래서 나는 ‘아, 나는 아직 멀었다. 나는 나쁜 사람이구나.’하면서 자신에게 실망하고 번민하고 괴로워해.”

 

말을 마치자 잠시 대학생들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도대체 생각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어떻게 하면 망상을 떨쳐버릴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대학생1이 말했습니다. “야, 우리들은 <생각하는 것>과 무엇이 <떠오르는 것>을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자 대학생2가 떠오르는 것도 생각이고 생각하는 것도 생각이 아닐까 하고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대학생3이 말했습니다. “아, 이제야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다. 갑자기 떠오르는 것, 그것은 ‘생각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 같아.”

 

대학생1이 좀 더 자세히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대학생3이 잠시 어떻게 말해야할까 하고 궁리하다가 예를 하나 들었습니다. 자신에게 갑자기 욕망과 관련된 어떤 나쁜 것이 떠오를 때 대학생3은 ‘아니,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다니’ 하면서 스스로를 책망하고 괴로워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떠오름>과 <생각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대학생1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동안 자신이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욕망과 관련된 어떤 것이 갑자기 <떠올랐을 때> 거기에 내가 머물지 않으면 되겠다고.

 

대학생2가 ‘거기에 내가 머물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대학생3은 욕망과 관련된 어떤 나쁜 것이 떠올랐을 때, 그것을 안 생각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대학생3은 욕망과 관련된 어떤 나쁜 것이 <떠오를>때 마다 그 떠오름을 자신이 좋아서 의도를 가지고 생각한 것이라고 여겼는데, 사실은 꼭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무엇이 <떠오름>은 내가 의도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해보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의해 수동적으로 떠올라졌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유(까마)와 관련된 떠오름에는 머물지 않도록 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대학생3은 이런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대학생1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망상에 빠지고 지하철 타고 가다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대학생3이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정신차리지 못해서이고, 또 떠오름과 사유의 확산을 구분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 대학생2가 더 자세히 설명해보라고 했습니다. 대학생3이 대답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축구 경기를 본 사람은 골키퍼와 나머지 10명 선수와의 차이를 모를 거야. 그 사람은 축구에 대해서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야. 마찬가지로 그동안 우리도 생각에 대해서 배우지 않아서 생각의 출발점을 몰랐던 거야. 즉 생각이 어디서 일어나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몰랐던 거야.”

 

대학생1이 그럼 생각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대학생3은 바로 <떠오름>을 출발점으로 해서 생각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우연히 동영상 법문에서 얼핏 들었는데 <떠오름>에 머물러서 ‘의도-기대-지향’을 거치면 이제 본격적인 사유(생각)가 진행된다고 했습니다. <떠오름> → ‘의도-기대-지향’ → <사유((생각)의 확산)>. 그러나 무엇인가 <떠올라도> 거기에 머물지 않으면 ‘의도-기대-지향’을 하지 않게 되어 ‘사유(생각)’는 진행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대학생2는 친구의 설명이 그럴 듯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그냥 ‘생각한다’고 말했던 것이 이제는 <떠오름>과 <생각이 진행됨(=사유의 확산)>으로 구분되고,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떠오름과 사유의 확산을 구분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이지 길을 가다가 보면, ‘아차, 내가 망상에 빠져 있었군.’ 하고 아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우리가 어떻게 생각이 진행되는 이전 단계의 떠오름을 알아차리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생2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떠오름을 알아차릴 수 있나?” 대학생3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 내 마음의 상태를 발견해내면 된다고 해. 이것을 전문 용어로 ‘사띠(알아차림, 마음챙김)’라고 하더라. 사띠는 예를 들면 내가 탐욕을 부리면 탐욕을 부린다고, 화내고 있으면 화내고 있다고, 미워하고 있으면 미워하고 있다고 현재 내 마음 상태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하네.”

 

대학생2는 내 마음의 현재 상태를 발견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면 그것을 사띠라고 부르는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내면에서 어떤 것이 떠오르면 그 떠오르는 것을 발견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생2는 사띠가 있으면 내 현재의 마음 상태를 발견할 수 있고, 그렇게 발견해서 알게 된 현재 내 마음 상태가 나쁜 마음 상태라면 버려야 하고 좋은 마음 상태라면 유지 향상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만 할 수 있으면 떠오름과 사유의 확산을 실제로 구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생2가 그럼 어떻게 하면 사띠의 기능을 강화하여 <떠오름>을 알아차릴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학생3은 동영상 법문에서 들었다며 ‘아눗사라띠 아누위딱께띠 anussarati anuvitakketi ㅡ 「계속해서 기억하고 계속해서 떠오르게 한다.」’ (계 경(S46:3))가 사띠를 생기게 하는 구체적 방법이라고 들었다 했습니다. 사실 그런 것 같았습니다. 사탕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는 아이는 사탕과 관련된 어떤 것이 내면에 “떠오르면” 바로 ‘이것은 사탕과 관련된 떠오름이다.’고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버려야 할 법들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는 사람은 내면에서 그런 불선법들이 떠오르면 바로 알 것 같습니다. ‘이것은 소유와 관련된, 이것은 분노와 관련된, 이것은 폭력과 관련된 떠오름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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