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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장애는 지혜를 무력히게 하고 2

고요2 0 259 2018.08.13 07:43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밤이 찾아왔습니다. 들판에 텐트를 치고 야숙하기로 했습니다. 잠을 청하려는데 갑자기 시커먼 그림자가 어른거렸습니다. 보니 아까 그 짐승이 텐트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나오자 짐승은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텐트 안으로 들어가 잠을 자려고 하자 짐승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밤새 한숨도 못 잤습니다.
많은 지렁이를 죽였다는 회한에 휩싸였고, 그것 때문에 마음이 들뜨고 후회가 일어났습니다. 마라의 들판에 들어서지 말걸 하면서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들떴습니다.  오 기자와 7인의 마음은 ‘들뜸-후회로 덮여졌고 가려져서 지혜를 일어나게 할 수 없었고 지혜를 계발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해가 떴습니다. 햇빛을 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얼마쯤 가다 보니 저 앞에 사람들이 큰 나무 아래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처음으로 진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 기자가 자신과 7인을 소개했고 저쪽에서는 한 청년이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이분은 빙청 선인이시고 이분들은 제자분들이시고, 이분은 칠지님이시고, 이분들은 함께 여행하시는 분들이며, 저는 다성입니다.”

 

오 기자가 지금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빙청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마음을 에워싸고 지혜를 무력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 덮개요 장애”인 ‘소유의 찬다(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 진애, 해태-혼침, 들뜸-후회, 의심’ 중에서 우리는 네 번째 ‘들뜸-후회’를 막 통과하려는 지점에 있습니다.“ 오 기자는 그럼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들뜸-후회’를 통과할 수 있는지 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빙청 선인은 아까 낙엽이 변해서 죽고 돌과 나무가 변해서 죽은 지렁이는 가짜라고 했습니다. 마라의 들판에 사는 도적 하나가 짐승으로 변해 요술을 부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제야 오 기자와 7인은 안도의 한 숨을 쉬며 들뜸-후회에서 벗어났습니다.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오 기자가 말했습니다. “선인님께서는 어떻게 하여 여기를 지나가시게 되었나요?” 빙청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저 서쪽에 계신다는 위대한 영웅을 뵙기 위해 가는 중입니다. 그러자니 이 들판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오 기자가 자신들은 여기까지 오면서 어려운 고비를 여러 번 넘겼는데, 선인님께서는 이 들판을 지나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를 물었습니다. 빙청 선인은 우리도 어려움을 겪었는데 여기 제자들과 다른 분들이 잘 해 주셔서 무사했다고 했습니다.

 

오 기자가 말했습니다. “선인이시여, ‘마음의 오염원들이고 지혜를 무력(無力)하게 만든다’는 다섯 가지 장애 중에서 ‘의심’은 어떻게 제거할 수 있습니까?”
빙청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종교마다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들은 먼저 불 법 승 삼보에 대한 청정한 믿음으로 의심을 제거합니다.” 

 

오 기자가 말했습니다. “지금 저희들은 이 들판을 건너서 무슨 유익함이 있는가? 하고 의심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건너지 못한 이 들판을 저희들이 건널 수 있을까 하고 또 의심합니다. 이제는 정말이지 이 일을 그만두고 돌아가고 싶습니다. 선인이시여, 정말 저희들이 이 들판을 건널 수 있을까요?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빙청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사람이란 기쁠 때는 기뻐하고 슬플 때는 슬퍼하고, 때로는 서로 돕고 때로는 화도 내고, 어떤 때는 선하게 어떤 때는 모질게 살고, 그러면서도 이 사회가 점점 발전하도록 힘을 모으는 것이 아닌가요?’ 하고.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말처럼 우리 삶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기쁨이 지나쳐서 방일이 되고 슬픔이 지나쳐서 절망이 되고, 화를 내어 뒤에 큰 싸움이 되기도 하고 모질게 살다가 인색하고 고약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기쁨과 슬픔, 선과 악, 협동과 경쟁을 잘 조화롭게 맞춘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배우지 못한 범부는 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에서 최소한 이로움과 해로움을 주는 것을 구분해서 이로운 것은 지키고 해로운 것은 버려야 한다고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이로움을 주는 것 중에는 세상에 대한 바른 견해도 있다고 했습니다. 누가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욕계) 천상’ 안에서 살고자 하면 오계를 지키고 보시를 하거나, 아니면 십선업을 행하는 것으로 충분할 지도 모르지만, 욕계 세상 보다 더 향상된 삶을 살고자 하면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바른 견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영웅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믿으면 의심이 사라지며, 대영웅의 말씀을 배워 실천하면 우리도 마라의 들판을 지나갈 수 있고,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오 기자와 7인은 자신들이 마라의 들판을 건너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빙청 선인 일행과 함께 들판을 건너기로 했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 흰 코끼리를 탄 노인이 나타나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 세상은 없다네, 업에는 과와 보도 없다네. 이 생에서 즐겁게 살면 그만인 것을. 무엇 때문에 이 험난한 길 걸어가려는가?” 빙청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대영웅께서는 말씀하셨다네. 저 세상도 있고, 업에는 과와 보가 따른다고. 이 세상에서 법답게 사는 사람, 죽은 뒤에는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믿음 있고 정진이 있는 사람은 꿋꿋이 이 길을 걸어간다네.” 

 

노인이 다시 노래했습니다. “자식이 있는 이는 자식으로 인해 기뻐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물건을 말미암아 기쁨이 있으니, 사랑하고 좋아할 대상이 없는 이에게는 기쁨도 없습니다.” 빙청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욕계 세상에 머무는 이에게 당신의 말은 귀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마라의 들판을 건너는 수행자에게는 다른 기준이 제시됩니다. 수행자를 위해 대영웅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식이 있는 이는 자식으로 인해 슬퍼하고, 소가 있는 이는 소로 인해 슬퍼합니다. 집착의 대상으로 인해 사람에게 슬픔이 있으니,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는 슬픔이 없습니다.’ 하고” (숫~, p.70, 71)

 

오 기자와 7인은 노인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말씀이 저희 귀에 잘 들어옵니다 했더니 노인이 코끼리 6마리를 만들어서 오 기자와 7인을 맨 처음 자리로 태워 보냈습니다. 노인은 이제 빙청 선인에게 이 들판을 건너가지 말고 돌아가라고 부추겼습니다. 그러나 빙청 선인은 많은 사람들이 이 들판에서 길을 잃고 헤맸지만 자신들은 꼭 건너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갑자기 지팡이를 공중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폭우가 쏟아져서 길이 끊어졌습니다. 빙청 선인은 서쪽에 계신다는 대영웅을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코끼리를 탄 노인이 사라졌고, 폭우가 그치면서 다시 길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빙청 선인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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