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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老死)에 대해 생각해보며

고요2 0 252 2018.09.01 20:53

아버지가 7살 난 아들 김곤이(金困而)에게 말했습니다. “여기 충주성에 오신 김윤후 장군님은 아주 특별한 분이셨다. 그분은 앞서 몽골이 2차로 침입했을 때(1232) 처인성에서 처인 부곡민들과 승병들을 규합해 몽골군에 맞섰다. 이 싸움에서 몽골군 총사령관 사르탁(사르타이)이 화살을 맞아 죽어 몽골군이 물러났지. 그 후 계속해서 몽골이 쳐들어왔다. 1253년 5차로 몽골이 쳐들어왔을 때 바로 그 김윤후 장군님이 우리 충주성에 충주산성방호별감으로 오셨다. 관노(官奴)였던 나도 성의 방어에 투입되어 싸웠다. 70여일이 지나 우리는 식량도 떨어지고 백성들도 동요했다.”

 

김곤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몽골군은 공성 기구와 개량 무기로 충주성을 공격했고, 김윤후 장군님과 성안의 군사들과 백성들은 있는 힘을 다해 두 달 넘게 싸우는 것을 보았던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계속 말했습니다.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식량도 떨어지자 김윤후 장군님은 ‘능히 힘을 다해 싸워준다면 귀천에 불구하고 모두 벼슬을 내릴 것이다.’ 하시면서 관노의 호적을 불태우고 마소를 골고루 나누어 주셨다. 우리는 모두 감동하여 목숨을 무릅쓰고 몽골에 맞서 싸워 성을 지켜냈지. 네 작은 아버지도 함께 싸웠는데, 불행히도 부상을 입고 다리 한쪽과 팔 한쪽을 잃었다. ... 그러나 이제 나도, 너희 작은 아버지도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곤이야, 너는 작은 아버지를 따라 전주로 내려가거라.”

 

김곤이는 전주에 내려와 숙부와 초가집에서 살았습니다. 어느 날 냇가에서 놀다가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는데, 매우 배고파했습니다. 그래서 김곤이는 산딸기를 따서 할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자신은 이 냇가 위쪽의 초막에 살고 있으니 한 번씩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김곤이가 할아버지 초막에 놀러 갔더니 노인은 글을 아느냐면서 글을 가르쳐주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은 김곤이가 힘들여서라도 글을 깨우치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가끔 알 듯 말 듯 한 질문을 해서 끈기 있게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노인이 낸 문제는 주로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얘야, 전란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보통은 늙음이 찾아오고 난 다음에 죽음이 찾아오는데, 지금은 몽골의 침입으로 많은 사람들이 젊은 나이에 죽는구나. 사람은 언젠가는 죽지만 전쟁이 나서 죽다니 너무 안 되었다. 얘야, 너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느냐?”

 

그날부터 김곤이는 늙음과 죽음이 무엇인지, 또 무엇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어디를 가든 어린이도 있고 누나 형 나이도 있고 아저씨도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는 나중에 반드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야 맙니다. 머리카락은 희어지고 이는 부서지고 피부는 주름지고 눈과 귀 같은 감각기능은 쇠퇴하고 수명은 줄어듭니다. 이것이 늙음이었습니다. 한편, 이 늙음 다음에는 죽음이 찾아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목숨이 다하고 몸이 무너져 마침내 우리 곁을 떠나갑니다. 돌아가십니다. 여기 사람들의 무리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면 어디에서도 그분들의 모습도 목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김곤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이 있기 때문에 이런 늙음과 죽음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일 년이 지나 1254년에 몽골이 6차로 또 쳐들어왔습니다. 몽골군은 고려 전역을 유린하였고 많은 고려인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이 무렵쯤인가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는 산성방호별감과 분쟁이 일어나자 가족을 이끌고 삼척으로 갔다가 다시 의주로 이사했습니다. 숙부와 김곤이는 몽골군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몽골군에 발각되어 포로가 되었습니다. 몽골군 상관이 부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저 둘은, 하나가 불구고 하나는 애니 잡아가도 쓸모가 없겠다. 풀어주어라.”

 

숙부와 김곤이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산속에서 몇 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숙부가 말했습니다. “내가 불구가 되고 몇 년 전 몽골군에 우리가 붙잡혔고 지금은 여기에 살고 있는 것은 모두 전생의 업이니,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숙명이라고 받아들이면서 평생을 여기에서 살자꾸나.” 김곤이는 생각했습니다. ‘아, 전생의 업이란 것이 있었구나. 내가 지금 이 나라에 태어나서 여기에 살고 있는 것이 다 전생의 업 때문인가 보다.’ 그러자 늙음과 죽음이 있게 되는 것은 전생의 업 때문이라는 생각이 불현 듯 떠올랐습니다.

 

김곤이가 30대 초반이었을 때 숙부가 돌아가셨습니다. 숙부를 고이 장사지내고 산을 내려와 마을에 들어서니 강화도에 있던 왕이 개경으로 환도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1270). 그리고 개경 환도에 반대하며 삼별초가 몽골에 항쟁하면서 진도로 옮겨가 용장성에서 세력을 떨친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마을에서는 전란의 피해를 복구하느라 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김곤이는 마을의 어떤 부유한 집에 들어가서 일꾼으로 일했습니다. 전란이 지나간 뒤라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어느 날 김곤이는 탁발 나온 노스님에게 쌀을 시주했습니다. 노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모월 모일에 ○○사에서 법회가 열리는데 형편이 되면 한번 참석하라고 했습니다. 그날 날씨가 맑고 시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법문을 들으려고 왔습니다. 이 절은 처음에 어떤 상장군이 지었는데, 여기에 자신의 재산을 모아놓고 승병을 길러 사병으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보조국사 지눌이 불교 개혁을 주창할 때 참여하여 지금은 불교 본연의 청정한 절의 모습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절이라고 했습니다. 초대받은 법사가 법을 설했습니다.

 

“여러분, 현자들과 함께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하고, 더 나아가면 결실 없음으로 정착되는 교리가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이런 주장입니다. ‘사람이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경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전생의 행위가 원인이다.’라고. ... 그러나 이것은 바른 교리가 아닙니다. 누가 나쁜 짓을 할 때마다 그것을 자기 책임이라고 하지 않고 전생의 행위가 원인이라고 책임을 돌려버린다면, 이것은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는 교리가 될 수 없게 됩니다. ... 전생의 행위를 중심에 두면 : 열의거나, 노력이거나, 이것은 행해야 할 것이라거나, 이것은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되돌아옴이 없게 됩니다. 이렇게 행해야 할 것과 행하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 사실과 믿을만함으로부터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교리를 가진 수행자는 사띠를 놓아버리고 보호하지 않고 머무는 자가 되어, 스스로 법다운 사문이라는 주장을 할 수 없게 됩니다. ...” ((A3:61), ○○○○ 의 번역을 조금 변형함)

 

김곤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한때 자신은 늙음과 죽음이 있게 된 이유가 전생의 업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너무 막연한 말이었습니다. 전생의 업은 현재 내 행위를 결정하는 하나의 조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많은 조건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김곤이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는지를 다시 찾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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