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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有)에 대해 생각해보며 1

고요2 0 217 2018.09.08 08:23

 김곤이는 조용히 생각했습니다. 늙음은 내가 늙어가고 남이 늙어가니까 알 수 있었습니다. 죽음은 주위의 사람이나 짐승이 죽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태어남도 사람이나 짐승이 태어나는 것을 보고 그럭저럭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어남 앞에는 과연 무엇이 있어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태어남이 있는지는 정말로 알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우리가 ‘저 세상은 없다 – 죽으면 끝이다’ 고 하면 간단했습니다. ‘죽으면 끝이지 뭐 다음 세상이 있겠는가?’ 하면 고심하여 물을 일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김철수는 그냥 우연히 사람인 아기로 태어났고 또 저기 누렁이는 그냥 우연히 송아지로 태어나서 한 평생 수명대로 살면서 늙어 죽는다고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태어남의 원인을 찾고자 하면 “저 세상은 있다 – 중생은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 는 것을 전제하고 물어야 했습니다.  

 

원나라가 간섭하면서 고려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왕이 원나라 황실의 공주와 혼인했습니다. 원나라는 일본 정벌을 위해 설치했던 정동행성을 그대로 두고 이문소에서 고려의 내정을 간섭한다고 했습니다. 고려 왕실에서 사용하던 칭호가 격하되었고 나라의 관제도 격하되었습니다. 나라 영토도 조금 상실했습니다. (동녕부와 탐라총관부는 곧 돌려받았으나 쌍성총관부는 원이 오래도록 관리함) 원나라는 고려에 각종 공물을 요구했고, 나라에서는 응방이 설치되어 매를 잡아 몽골에 보낸다고 했습니다. 또 원이 병사들의 혼인 상대로 고려 여성을 요구하자 나라에서는 결혼도감이 설치되어, 처음에는 혼자 사는 여자나 역적의 처나 파계한 중의 딸 등을 찾아내서 보냈다고 했습니다. 원나라에 빌붙어서 권세를 누리려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어느 날 김곤이는 마을에서 학식 있는 노인 분을 찾아가 사람의 태어남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만물은 조화옹(造化翁)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과 짐승은 모두 조화옹이 빚어낸 것이고 나무와 바위와 물 같은 것들도 조화옹의 솜씨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식물이나 무생물은 모두 각각 받은 수명이 있어서 그 수명대로 살다가 죽는다고 했습니다. 만물을 만들어낸 조화옹은 ‘세상의 이치, 우주의 섭리, 세상을 관장하는 신(神)’ 등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화옹이 어떤 존재인가 하면 인간과 동식물과 자연을 질서지우는 존재일 수도 있고 조물주나 천지신명이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그 노인 분은 태어남의 원인을 ‘만물을 만들어내는 조화옹(造化翁)’이라고 했습니다. 

 

김곤이가 그럼 조화옹은 어떻게 이 세계에 존재(계시게)하시게 되었습니까? 물었습니다. 노인 분이 대답하시기를 조화옹은 원래 처음부터 제 자리에 있었다고(계셨다고) 했습니다. 인간과 같이 만들어진 것들은 모두 태어난 것들이라서 늙고 죽지만, 조화옹은 원래부터 있던(존재한) 분이고 만물을 만드시는 분이고 영원불멸하는 존재라서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김곤이가 한 가지 더 묻기를 그럼 인간과 짐승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니, 노인 분이 대답하시기를 사람에게는 오륜이 있고 지켜야 할 도리가 있지만 짐승은 그런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김곤이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물러났습니다. 그리고는 노인 분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정말로 처음(원래)부터 있었고 만물을 만들어내고 영원불멸하여 늙음도 죽음도 없는 그런 분(존재)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김곤이는 알 수 없었습니다. 조화옹이 만물을 낳는다고 하면 아무래도 부모가 자식을 낳는 현실과는 모순이 될 것도 같았습니다.

 

원나라는 여러 명목을 붙여서 고려에 금이나 은이나 포백이나 곡물이나 해동청(매) 등을 요구했습니다. 농민들은 나라에 세금도 내야 했고 몽골의 공물도 마련해야 했으므로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살던 곳을 버리고 유망(流亡)하는 농민들도 생겼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귀족들은 점점 친원적인 성향의 권문세족이 되더니, 강과 하천을 경계로 삼을 만큼 대규모의 농장을 소유하고, 그러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고 유민들을 노비처럼 부리며 부를 축적해나갔습니다. 한편,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왕(충렬왕)과 혼인을 하여 고려에 온 제국대장공주(왕-39세, 공주-17세 때 혼인했다 함)는 한 성격하셨는데, 왕이 요양차 함께 천효사에 가던 길이었는데, 제국대장공주가 시종하는 사람들이 적다고 화를 내며 지팡이로 왕을 때리고 되돌아가버린 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성격을 누그러뜨리시고 왕의 조력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

 

세월이 흘러 김곤이에게 늙음이 찾아왔고 죽음의 전조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웃 마을에 유별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몇 있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한 사람은 소같이 일어나고 소같이 먹고 소같이 걷고 소같이 행동한다고 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개같이 핢아 먹고 개같이 짖고 개같이 잠자고 개같이 달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살아있는 것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고, 누구와도 바람피우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술 마시지 않으며,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출가자에게도 보시하고 친척도 도와주고 가난한 이웃도 도와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저 사람은 죽은 다음에 소로 태어날 거야, 저 사람은 죽은 다음에 개로 태어날 거야. 그런데 저 사람은 죽은 다음에 하늘 세상에 태어날 거야.’ 하는 말들이 오갔습니다.

 

이 말을 듣고 김곤이는 갑자기 어떤 의미가 떠올랐습니다. ‘소 같이 행동하면 죽은 다음에 소로 태어나고 개 같이 행동하면 죽은 다음에 개로 태어나고 하늘 사람처럼 행동하면 죽은 다음에 하늘에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태어남의 원인이 바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가, 한 평생 어떤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김곤이는 자신의 행위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죽은 다음의 태어남이 결정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김곤이는 늙은 몸을 이끌고 법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예전의 법사님은 돌아가셨고, 새 법사님이 있었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잠깐 환담을 나눈 뒤 전생의 행위가 태어남의 원인인지를 물었습니다. 법사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것은 너무 넓은 대답이라고 했습니다. 전생의 행위(업業)가 태어남의 원인이라는 말은, 비유하면 이것이 사과인지 배인지 감인지 살구인지 밤인지를 말해야 하는데, 그냥 ‘과일’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전의 한 구절을 들려주었습니다. “유(有, 바와, 존재)가 있을 때 태어남이 있으며 유(有)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 (S12:4)

 

김곤이는 유(有, 바와)라는 용어를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법사님은 다시 경전을 인용하여 말했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존재(有)인가? 비구들이여, 세 가지 존재가 있나니 욕계의 존재, 색계의 존재, 무색계의 존재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존재(有, 바와)라 한다.” (S12:2) 그날부터 김곤이는 유(有)가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욕계, 색계, 무색계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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