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입문(1-소유 210302) ㅡ 사성제 & 가르침의 토대(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1PcqvTKKTZE
1. 불교는, 다시 말하면, 사성제(四聖諦)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행위인 불교(佛敎)는 행위에 따르는 고(苦)와 락(樂)[고멸(苦滅)]의 관점에서 「나는 오직 고(苦)와 고멸(苦滅)을 말한다.(SN 44.2-아누라다 경)」라는 명제(命題)를 거쳐 사성제(四聖諦)로 확장됩니다. 그래서 불교는, 다시 말하면, 사성제(四聖諦)입니다. ― 「이렇게 불교는 행위에서 시작해 고(苦)와 고멸(苦滅)의 명제로, 그리고 다시 고(苦)-고집(苦集)-고멸(苦滅)-고멸도(苦滅道)의 사성제(四聖諦)로 확장됩니다. 달리 말하면, 무아(無我)에 기반하는 불교는 존재의 구명 등에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불교는 오직 고(苦)의 정체를 밝히고 소멸시키는 것에 존재의 이유를 둡니다. 이것이 불교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목적이고, 쓰임새입니다.」
오늘 수업에서 주목한 부분은 부처님에 의한 고(苦)와 고멸(苦滅)의 선언을 「괴롭니? 행복하자! 아프니? 아프지 마!」라는 표현으로 부처님의 중생들에 대한 사랑의 말씀을 담아낸 것입니다. 특히, 이런 점에서 불교의 최상위 개념은 ‘괴로울 것인가, 행복할 것인가?’이지 ‘존재의 구명 ―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6_09&wr_id=103
한편, 사성제(四聖諦)를 그린 두 장의 그림을 통해 포괄적인 사성제와 심층적인 사성제를 소개하였는데, 실다운 지혜(abhiññā)를 갖추어 삶의 내면 즉 takka의 영역의 문제를 해소하는 과정이 심층적인 사성제로 제시된다는 점은 니까야가 제시하는 특별한 관점입니다.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6_01&wr_id=215
2. 가르침의 토대
1) 부처님을 대표하는 두 가지 개념
부처님은 「업(業)을 말하는 자(kammavāī이고, 결실 있음을 말하는 자(kiriyavāī」라고 불립니다. 태생에 의해 결정된 삶이 아니라 행위 즉 업(業)으로써 만들어 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2) 가르침의 토대
(AN 3.138-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 경)에 의하면,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은 공통되게 ①업(業)을 말하고, ②결실 있음을 말하고, ③노력을 말합니다. 업(業)에는 결실이 있으니 좋은 결실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농사를 짓는 행위에는 풍작이든 흉작이든 결실이 있고, 풍작을 거두기 위해서는 적절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인데, 부처님을 대표하는 두 가지 개념 위에서 노력을 통해 행복한 삶을 실현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불교(佛敎)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칼리라는 사람은 이 세 가지를 부정하는 교설을 세워서 많은 사람을 괴로움으로 이끕니다. 이런 교설을 결실 없음(akiriya)이라고 하는데, ①전생의 행위가 원인, ②신(神)의 창조가 원인, ③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음[무인무연(無因無緣)]이라는 삶에 대한 잘못된 해석 세 가지 즉 삼종외도(三種外道)는 막칼리의 결실 없음(akiriya)의 아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