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서적출판 > 불교입문(1) 소유

불교입문(1) 소유

불교입문(1-소유 210803) 으뜸의 믿음 & 의지처인 성자들[상가의 정체성](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불교입문(1-소유 210803) 으뜸의 믿음 & 의지처인 성자들[상가의 정체성](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SXe2q4_fKEo

 

(AN 4.34-으뜸의 믿음 경)을 설명하였습니다. ()-팔정도-바램의 법-상가가 으뜸의 법이어서 여기에 대한 분명함 위에 살아가는 사람의 업()은 으뜸의 행복을 생겨나게 하여[()] 누리게 하는데[()], 이것이 네 가지 으뜸가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팔정도와 바램의 법은 함께하여 법이므로 불--승 삼보라는 으뜸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질 때 그에게 으뜸의 보가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한편, 수업에서는 상가의 번역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saṅgha’는 사람이 아닌 공동체이므로 성자들이라는 번역은 옳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여래의 제자들의 상가는 세상의 위없는 복전인 사쌍팔배의 성자들을 정체성으로 한다는 관점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공덕의 개념 가운데 믿음의 측면에서 소개한 (AN 4.34-으뜸의 믿음 경)을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7_04&wr_id=2

 

으뜸에 대한 분명함이 있는 자들에게 으뜸가는 보()가 있는데, ()-팔정도(八正道)-바램의 법-상가(僧伽)가 으뜸의 법입니다. 그래서 이 네 가지 법에 대한 분명함 또는 확실한 믿음 위에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런 삶 즉 행위-()은 으뜸의 행복을 생겨나게 하여[()] 누리게 한다[()]는 의미인데, 이것이 네 가지 으뜸가는 믿음입니다.

 

이때, 으뜸의 법은 설명됩니다.

 

1. () 중생들과 비교할 때 여래-아라한-정등각이 그들 가운데 으뜸

 

2. 팔정도(八正道) 유위법(有爲法)들과 비교할 때 팔정도(八正道)가 그들 가운데 으뜸

 

3. 바램의 법() 유위법(有爲法) 또는 무위법(無爲法)들과 비교할 때 바램이 그들 가운데 으뜸

 

4. 상가(僧伽) 상가(僧伽-saṅgha)와 따르는 자(gaṇa)들의 무리들과 비교할 때 여래(如來)의 제자들의 상가(僧伽)가 그들 가운데 으뜸

 

그런데 팔정도(八正道)와 바램의 법은 함께하여 법()입니다. 그래서 네 가지로 설명되었지만 불()-()-() 삼보(三寶)가 으뜸이어서 삼보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으뜸가는 믿음이고, 그에게 으뜸의 보()가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 내용은 (AN 5.32-쭌디 경)에서는 계()를 포함한 다섯 가지로 확장되는데, 누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에 태어나고, 나쁜 곳에 태어나지 않느냐는 쭌디 공주의 질문이 주제입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1_04&wr_id=2

 

한편, 수업에서는 삼귀의(三歸依) 가운데 세 번째인 상가(僧伽)의 번역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saṅghaṃ saraṇaṃ gacchāmi (상강 사라낭 갓차-) 의지처인 성자들에게로 나는 갑니다.에서 ‘saṅgha(상가)’는 사람이 아닌 공동체이므로 성자들이라는 번역은 옳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여래의 제자들의 상가는 세상의 위없는 복전(福田)인 사쌍팔배(四雙八輩)의 성자들을 정체성으로 한다는 관점에서 이런 번역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성자들이 중심에 서지 않는 상가가 세상의 위없는 복전(福田)이어서 의지처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의 측면입니다.

 

물론, 성자들이 함께하지 않는다고 해도 으뜸의 스승과 으뜸의 법 아래 있기 때문에 세상의 다양한 상가 가운데 불교를 구성하는 상가가 으뜸인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불()과 법()에 대한 온전함을 놓친 현재의 불교가 제자들 가운데 성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과 법()에 대한 온전함으로 돌아가 성자들을 배출하기 전에는 현재의 상가로서 의지처가 되기는 힘들다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상가의 정체성에 중심을 두고 의지처인 성자들에게로 나는 갑니다.’라고 번역하는 것인데, 불교가 가르침의 진정에 확고하여 성자들을 배출하는 시기가 빨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하겠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