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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2) 사실

불교입문(2-사실) 미리보기(201112) - 삶과 수행의 두 단계 구성 & 실다운 지혜의 위치 조정(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불교입문(2-사실) 미리보기(201112) - 삶과 수행의 두 단계 구성 & 실다운 지혜의 위치 조정(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ub0nLuRT1Uo

 

삶과 수행을 두 단계로 구분하여 연결하였습니다. 이때, 두 단계의 구분은 심층적인 사성제가 제시하는 실다운 지혜(abhiññā)를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실다운 지혜로 버려야 하는 법들은 무명(無明)과 유애(有愛)인데, 무명은 더 깊은 영역이고 유애는 탐(-rāga)과 소망(nandi)이 함께한 상태 즉 takka[()의 형성 또는 자기화 과정]에서 결과된 것입니다. 그래서 실다운 지혜는 수행의 점진적인 향상 과정에서 takka의 경계선에 닿은 경지이고, 여실지견(如實知見)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를 기준으로 삶은 takka의 안쪽 과정인지 바깥쪽 과정인지의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되고, 수행은이런 삶의 과정에 대응하여 바깥쪽의 문제를 해소하는 수행[사념처(四念處)]과 안쪽의 문제를 해소하는 수행[사마타-위빳사나]으로 구분됩니다. 수행이 진보하여 바깥쪽의 문제를 해소하고 그 경계에 닿은 지혜를 실다운 지혜(abhiññā-아빈냐-)라고 부르며, 실다운 지혜와 함께 알고[()] 보는[()] 경지가 여실지견(如實知見)입니다. 또한, 수행이 더욱 진보하여 안쪽의 문제까지 완전히 해소하고 완성된 지혜는 완전한 지혜(pariññā-빠린냐-)입니다. 이렇게 takka의 안팎이라는 두 개의 영역에 대응하여 수행은 실다운 지혜(abhiññā)와 완전한 지혜(pariññā)의 성취 과정이라는 두 단계로 구성됩니다.

 

오늘 수업의 의미는 삶을 구분하는 기준점의 조정입니다. 그간에는 심()의 생겨남[심행(心行)=()-()]의 과정에 주목하여 심()이 생겨나는 과정과 생겨난 심()의 과정으로 구분하여 실다운 지혜의 자리로 지정하였는데, 실다운 지혜 이후의 과정이 유애(有愛)의 버림이라는 점에서 어긋남을 보게 되어 조정하였습니다.

 

한편, 몇 개의 경들은 삶의 향상을 두 단계로 제시하는데, 예류자(預流者)와 아라한(阿羅漢)입니다. 그리고 실다운 지혜를 갖춘 경지는 예류자(預流者)이고, 완전한 지혜를 완성한 경지는 아라한입니다. 몇 개의 경들은 이런 두 단계의 깨달음을 제시하는데, 사성제(四聖諦)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단계로의 예류자와 심해탈(心解脫)-혜해탈(慧解脫)을 성취한 단계로의 아라한입니다.

 

(AN 3.12-기억해야 하는 것 경)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5_02&wr_id=3

 

(AN 3.13-꿈꾸는 사람 경)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5_02&wr_id=1

 

(AN 3.24-아주 유용함 경)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5_03&wr_id=3

 

(AN 3.25-금강석 같음 경)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5_03&wr_id=2

 

이때, 예류자는 법안(法眼)을 얻고, 삼악처(三惡處)를 모면했고, 최대 일곱 생 이내에 아라한을 성취하는 경지입니다. 그래서 예류자는 대부분의 괴로움이 멸진-해소되어 남아 있는 괴로움은 아주 적고, 또한, 깨달음[아라한]이 보장된 자리입니다. (SN 56.3-좋은 가문의 아들 경)(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7_13_01&wr_id=4) 등은 출가의 목적을 사성제의 있는 그대로의 관통 즉 예류자에 두는데, 예류자에만 닿으면 아라한은 보장되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실지견(如實知見)은 사실 그대로 보는 견해[()]와 견해가 순환하여 얻어지는 앎[()]입니다. 수행은 필수품을 갖춘 삼매로부터 출발하여 ()의 일어남 ()의 드러남 ()의 사마타-법의 위빳사나 여실지견(如實知見)의 과정으로 진행되는데, 바깥으로부터 takka에 닿는 방향입니다. 하지만, (AN 4.49-전도(顚倒) )에 의하면, 견해는 () () 견해의 전개를 보여주는데, takka 안으로부터 바깥에 닿는 방향입니다.

 

이때, 실다운 지혜는 바깥으로부터 진행되어 여실지견한 경지이면서 안의 문제 즉 심()과 상()의 오염을 해소하는 토대가 됩니다. 그래서 심층적인 사성제는 실다운 지혜로써 버려야 하는 법들로 유애(有愛)와 무명(無明), 실현해야 하는 법들로 해탈(解脫)과 명() 그리고 닦아야 하는 법들로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은 실다운 지혜 즉 여실지견(如實知見) 위에서 「견해 → 심(心) → 상(想)」의 방향으로 완성되고, 완성된 삶 즉 완전한 지혜로의 삶은 「상(想) → 심(心) → 견해」의 방향으로 여실지견하여 해탈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해 위에서 바깥으로부터 실다운 지혜에 오는 수행은 사념처(四念處)이고, 실다운 지혜의 토대 위에서 심(心)의 문제를 해소하는 수행은 사마타, 상(想)의 문제를 해소하는 수행은 위빳사나로 설명됩니다. ― 「견해 : 사념처 → 심(心) : 사마타 → 상(想) : 위빳사나」


경은 여러 관점에서 삶과 수행의 이런 두 단계의 구분을 설명하는데, 교재에서 정리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두 단계의 구분 위에서 다음 수업에는 수행지도(修行地圖)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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