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414)(제3부 사실, 제2장 사실① - 삼법인) Ⅲ. [4] 행(行)들과 고(苦)의 가라앉음[가라앉음(무상 → 고 → 행들) ⇒ 열반](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zfIB4D2M11s
행(行)들의 가라앉음(saṅkhārūpasama)의 두 가지 용례
; 자애로 머무는 비구와 충만하게 환희는 비구 ― ①‘사무량심 → 사무량심해탈’의 토대를 포함한 삼매의 토대와 ②개발된 느낌(환희 → 희열 → 진정 → 행복)으로 이어지는 깨달음의 길로 포괄됨.
고(苦)의 가라앉음으로 이끄는 것(dukkhūpasamagāminaṃ)
; 부처님들이 드러내 보여주는 법들 = 고의 가라앉음으로 이끄는 법
; 고의 가라앉음으로 이끄는 길 = 팔정도
행(行)들의 가라앉음(saṅkhārūpasama)과 고(苦)의 가라앉음으로 이끄는 것(dukkhūpasamagāminaṃ)이란 두 개의 용어는 고의 가라앉음(upasama)에 의한 락과 행들의 가라앉음에 의한 열반의 실현을 제시합니다.
한편, 무상게는 무상한 행들의 가라앉음(vūpasama)이 락이라고 말하는데, vūpasama는 주로 제2선의 정의에서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위딱까-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작용 측면에서 무상 즉 생겨나고 무너지는 성질의 가라앉음에 이어 상태 측면에서 고의 가라앉음으로 이어지고, 행들의 가라앉음으로 포괄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무상의 가라앉음 → 고의 가라앉음 → 행들의 가라앉음 ⇒ 열반」
◐ 본문
[4] 행(行)들과 고(苦)의 가라앉음
1. 행(行)들의 가라앉음(saṅkhārūpasama)
‘무상한 행들의 가라앉음이 락(tesaṃ vūpasamo sukho)’인데, 고(苦)인 행들의 활성 상태의 해소를 가라앉음이라고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 (KN 2.25-법구경, 비구 품)
368. mettāvihārī yo bhikkhu, pasanno buddhasāsane. adhigacche padaṃ santaṃ, saṅkhārūpasamaṃ sukhaṃ 자애로 머물고,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기뻐하는 비구가 행(行)들이 가라앉아 행복한 평화로운 경지를 얻을 수 있다.
381. pāmojjabahulo bhikkhu, pasanno buddhasāsane. adhigacche padaṃ santaṃ, saṅkhārūpasamaṃ sukhaṃ 충만하게 환희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기뻐하는 비구가 행(行)들이 가라앉아 행복한 평화로운 경지를 얻을 수 있다.
밖의 색은 (AN 6.63-꿰뚫음 경)이 지적하듯 나의 바람과 무관하게 단지 지-수-화-풍의 결합 위에서 사실 즉 무상(無常) 가운데 머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상(常)하기를 바라고, 그것 때문에 사실과의 괴리에 따르는 불만족(고)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밖의 색과 관련한 고의 해소는 상하기를 바라는 심의 작용의 제어로써 얻어지는데, 관심의 제어입니다. 이것이 밖의 색에 대한 가라앉음입니다.
안의 색은 몸이어서 마음과 함께 나를 구성하지만, 색으로서의 제약 즉 지-수-화-풍의 결합 위에서의 무상 가운데 머무는데,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상 즉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기를 바라고, 그것 때문에 사실과의 괴리에 따르는 불만족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안의 색과 관련한 고의 해소는 ①지-수-화-풍의 결합의 제어를 통한 건강의 유지와 ②상하기를 바라는 심의 작용의 제어로써 얻어지는데, 관심의 제어입니다. 이것이 안의 색에 대한 가라앉음입니다.
상-행-식은 행위를 조건으로 생겨나고 무너집니다. 행위는 심의 지향과 망-진-치 그리고 작의를 조건으로 질적 차별을 가져오는데(AN 10.47-마할리 경), 번뇌의 정도에 따라 생겨나고 무너집니다. 그래서 번뇌의 제어를 통한 행위의 질적 향상이 상-행-식의 가라앉음입니다.
수는 ①신(身)에 속한 것과 ②심(心)에 속한 것 그리고 ③촉(觸)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것이 있는데, 촉은 안팎의 색의 영역인 안촉~신촉과 색 아닌 것의 영역인 의촉으로 구성됩니다(*). 이때,
②심에 속한 것과 ③-2)의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것은 상-행-식의 가라앉음에 의해 가라앉고, ③-1)안촉~신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것은 밖의 색의 가라앉음에 의해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①신에 속한 것은 안의 색의 가라앉음 즉 깨달음 이후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몸으로 가지 않음(태어나지 않음)을 통해 완전히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아라한에게도 안의 색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고, 신에 속한 것으로의 고의 일부는 해소되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생명을 조건으로 이 몸을 연한 육처(六處)에 속한 것만은 비어있지 않다.(MN 121-공의 작은 경)」 또한, 이것이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고 말하는 (SN 36.6-화살 경)의 첫 번째 화살의 의미입니다.
(*) (SN 48.38-분석 경3)
“pañcimāni, bhikkhave, indriyāni. katamāni pañca? sukhindriyaṃ, dukkhindriyaṃ, somanass-indriyaṃ, domanassindriyaṃ, upekkhindriyaṃ.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즐거움의 기능(樂根), 괴로움의 기능(苦根), 만족의 기능(喜根), 고뇌의 기능(憂根), 평정의 기능(捨根)이다.
“katamañca, bhikkhave, sukhindriyaṃ? yaṃ kho, bhikkhave, kāyikaṃ sukhaṃ, kāyikaṃ sātaṃ, kāyasamphassajaṃ sukhaṃ sātaṃ vedayitaṃ ‒ idaṃ vuccati, bhikkhave, sukhindriyaṃ.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즐거움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신(身)에 속한 즐거움, 신에 속한 편안함, 신의 촉에서 생긴 즐거움과 편안함의 경험 ‒ 이것이, 비구들이여, 즐거움의 기능이라 불린다.
“katamañca, bhikkhave, dukkhindriyaṃ? yaṃ kho, bhikkhave, kāyikaṃ dukkhaṃ, kāyikaṃ asātaṃ, kāyasamphassajaṃ dukkhaṃ asātaṃ vedayitaṃ ‒ idaṃ vuccati, bhikkhave, dukkhindriy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신에 속한 괴로움, 신에 속한 불편함, 신의 촉에서 생긴 괴로움과 불편함의 경험 ‒ 이것이,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기능이라 불린다.
“katamañca, bhikkhave, somanassindriyaṃ? yaṃ kho, bhikkhave, cetasikaṃ sukhaṃ, cetasikaṃ sātaṃ, manosamphassajaṃ sukhaṃ sātaṃ vedayitaṃ ‒ idaṃ vuccati, bhikkhave, somanassindriy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만족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심(心)에 속한 즐거움, 심에 속한 편안함, 의촉에서 생긴 즐거움과 편안함의 경험 ‒ 이것이, 비구들이여, 만족의 기능이라 불린다.
“katamañca, bhikkhave, domanassindriyaṃ? yaṃ kho, bhikkhave, cetasikaṃ dukkhaṃ, cetasikaṃ asātaṃ, manosamphassajaṃ dukkhaṃ asātaṃ vedayitaṃ ‒ idaṃ vuccati, bhikkhave, domanassindriy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고뇌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심에 속한 괴로움, 심에 속한 불편함, 의촉에서 생긴 괴로움과 불편함의 경험 ‒ 이것이, 비구들이여, 고뇌의 기능이라 불린다.
“katamañca, bhikkhave, upekkhindriyaṃ? yaṃ kho, bhikkhave, kāyikaṃ vā cetasikaṃ vā nevasātaṃ nāsātaṃ vedayitaṃ ‒ idaṃ vuccati, bhikkhave, upekkhindriy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평정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신(身)에 속하거나 심(心)에 속한 편안함도 아니고 불편함도 아닌 경험 ‒ 이것이, 비구들이여, 평정의 기능이라 불린다.
“tatra, bhikkhave, yañca sukhindriyaṃ yañca somanassindriyaṃ, sukhā sā vedanā daṭṭhabbā. tatra, bhikkhave, yañca dukkhindriyaṃ yañca domanassindriyaṃ, dukkhā sā vedanā daṭṭhabbā. tatra, bhikkhave, yadidaṃ upekkhindriyaṃ, adukkhamasukhā sā vedanā daṭṭhabbā. iti kho, bhikkhave, imāni pañcindriyāni pañca hutvā tīṇi honti, tīṇi hutvā pañca honti pariyāyenā”ti.
거기서, 비구들이여, 즐거움의 기능과 만족의 기능은 즐거움의 경험이라고 보아야 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기능과 고뇌의 기능은 괴로움의 경험이라고 보아야 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평정의 기능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의 경험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기능은 다섯이면서 셋이 되고, 셋이면서 다섯이 된다.
2. 고(苦)의 가라앉음으로 이끄는 것(dukkhūpasamagāminaṃ)
• 부처님들이 드러내 보여주는 법들 = 고의 가라앉음으로 이끄는 법
• 고의 가라앉음으로 이끄는 길 = 팔정도
행들의 가라앉음은 락이어서 그대로 고멸이고 열반입니다. 그런데 고의 가라앉음을 직접 말해주는 경우도 발견되는데, 고(苦)의 가라앉음으로 이끄는 것(dukkhūpasamagāminaṃ)의 형태입니다. 그래서 락인 열반은 행들의 가라앉음에 의한 고의 가라앉음으로 실현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ariyaṃ caṭṭhaṅgikaṃ maggaṃ, dukkhūpasamagāminaṃ 고의 가라앉음으로 이끄는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SN 15.10-사람 경)/(SN 22.78-사자 경)/(AN 4.33-사자 경)/(KN 2.14-법구경, 부처 품)191.
• tañca maggaṃ na jānanti, dukkhūpasamagāminaṃ 그들은 고의 가라앉음으로 이끄는 그길을 모른다 & tañca maggaṃ pajānanti, dukkhūpasamagāminaṃ 그들은 고의 가라앉음으로 이끄는 그길을 꿰뚫어 안다.(SN 56.22-꼬띠가마경2)/(KN 5.38-두 가지 관찰 경)
• “yadā ca buddhā lokasmiṃ, uppajjanti pabhaṅkarā. te imaṃ dhammaṃ pakāsenti, dukkhūpasama-gāminaṃ 빛을 비추는 분인 부처님들이 세상에 출현할 때, 그 부처님들은 고의 가라앉음으로 이끄는 법을 드러내 보여준다.(AN 4.49-전도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