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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3】 촉(觸)과 수(受)-상(想)-사(思)의 관계

2 396 2022.01.10 08:32

【주제 3】 촉(觸)과 수(受)-상(想)-사(思)의 관계


<잡아함 306 인경(人經)>은 「眼色緣生眼識 三事和合觸 觸俱生受想思 안색연생안식 삼사화합촉 촉구생수상사 ― 안(眼)과 색(色)을 연(緣)하여 안식(眼識)이 생긴다. 이 세 가지의 화합이 촉(觸-만남)이고, 촉(觸)에서 수(受)-상(想)-사(思)가 함께 생긴다.」라고 설합니다.


촉구생수상사(觸俱生受想思 ― sparśa-sahajātā-vedanā-saṁjñā-cetanā) 또는 촉구기수상사(觸俱起受想思 ― sparśa-sahaja-vedanā-saṁjñā-cetanā)의 관점에서 촉(觸)과 수(受)-상(想)-사(思)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함에서 설명하는 촉구생수상사(觸俱生受想思)의 관점은 니까야에는 없습니다. 촉(觸) 이후 수(受)-상(想)-사(思)의 과정이 전개되는 것이지 촉(觸)에서 세 가지가 함께 생긴다는 의미로 이 과정을 설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촉구생수상사(觸俱生受想思)의 관점으로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삶의 메커니즘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욕탐(欲貪)의 간섭[집착-자기화]에 의한 자라남의 측면 즉 무명촉(無明觸)과 제어와 버림에 의한 해방의 측면 즉 명촉(明觸)의 차별을 주제로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촉구생수상사(觸俱生受想思)의 관점은 니까야의 관점과 다릅니다. 이런 검토에 의해서도, 니까야는 촉구생수상사(觸俱生受想思)의 관점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SN 22.56-집착의 양상 경)과 (SN 22.57-일곱 가지 경우 경)은 오온(五蘊)의 자라남-소멸의 조건 관계를 「자량 → 색(色), 촉(觸) → 수(受)-상(想)-행(行), 명색(名色) → 식(識)」으로 설명합니다. 이렇게 촉과 수-상-행의 관계를 말하기는 하지만, 생겨남의 조건 관계가 아니라 자라남과 소멸의 조건 관계이기 때문에 삶의 메커니즘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 āhārasamudayā rūpasamudayo; āhāranirodhā rūpanirodho. 자량(資糧)의 자라남으로부터 색의 자라남이 있고, 자량의 소멸로부터 색의 소멸이 있다. 


• phassasamudayā vedanāsamudayo; phassanirodhā vedanānirodho. 촉의 자라남으로부터 수의 자라남이 있고 촉의 소멸로부터 수의 소멸이 있다. 


• phassasamudayā saññāsamudayo; phassanirodhā saññānirodho. 촉의 자라남으로부터 상의 자라남이 있고 촉의 소멸로부터 상의 소멸이 있다. 


• phassasamudayā saṅkhārasamudayo; phassanirodhā saṅkhāranirodho. 촉(觸)의 자라남으로부터 행들의 자라남이 있고 촉의 소멸로부터 행들의 소멸이 있다. 


• nāmarūpasamudayā viññāṇasamudayo; nāmarūpanirodhā viññāṇanirodho. 명색(名色)의 자라남으로부터 식의 자라남이 있고 명색(名色)의 소멸로부터 식의 소멸이 있다. 


2. (MN 109-보름달 큰 경)은 오온의 선언을 위한 원인-조건 관계를 「사대(四大) → 색(色), 촉(觸) → 수(受)-상(想)-행(行), 명색(名色) → 식(識)」으로 설명하는데, 이 경에서도 마찬가지로 삶의 메커니즘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으로의 색(色)과 식(識)의 조건 관계를 설명한 뒤에 촉(觸)에 의해서 삶이 활성화되면 수(受)가 촉에 의해서 생기고, 이어지는 삶의 과정에서 상(想)과 사(思)가 생겨나고 참여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ko nu kho, bhante, hetu ko paccayo rūpakkhandhassa paññāpanāya? ko hetu ko paccayo vedanākkhandhassa paññāpanāya? ko hetu ko paccayo saññākkhandhassa paññāpanāya? ko hetu ko paccayo saṅkhārakkhandhassa paññāpanāya? ko hetu ko paccayo viññāṇakkhandhassa paññāpanāyā”ti?


“대덕이시여, 색온(色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수온(受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상온(想薀)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행온(行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식온(識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cattāro kho, bhikkhu, mahābhūtā hetu, cattāro mahābhūtā paccayo rūpakkhandhassa paññāpanāya. phasso hetu, phasso paccayo vedanākkhandhassa paññāpanāya. phasso hetu, phasso paccayo saññākkhandhassa paññāpanāya. phasso hetu, phasso paccayo saṅkhārakkhandhassa paññāpanāya. nāmarūpaṃ kho, bhikkhu, hetu, nāmarūpaṃ paccayo viññāṇakkhandhassa paññāpanāyā”ti.


“비구여, 색온(色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사대(四大)[네 가지 근본 물질]가 원인이고, 사대(四大)가 조건이다. 수온(受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촉(觸)이 원인이고, 촉(觸)이 조건이다. 상온(想薀)의 선언을 위해서는 촉(觸)이 원인이고, 촉(觸)이 조건이다. 행온(行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촉(觸)이 원인이고, 촉(觸)이 조건이다. 식온(識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명색(名色)이 원인이고, 명색(名色)이 조건이다.”


3. (MN 147-라훌라의 가르침의 작은 경)/(SN 35.121-라훌라의 가르침 경)은 촉(觸)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것(uppajjati)을 말하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지만, 생겨나는 것으로 수(受)에 속한 것-상(想)에 속한 것-행(行)들에 속한 것-식(識)에 속한 것을 말하기 때문에 촉구생수상사(觸俱生受想思)의 관점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경들도 역시 삶의 메커니즘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촉(觸)에 의한 활성화로 수(受)가 생기면 상(想)과 사(思)의 과정에 의해 식(識)이 머물고 늘어나는 과정의 설명인 것입니다. 


“taṃ kiṃ maññasi, rāhula, yamidaṃ cakkhu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nāgataṃ saññāgataṃ saṅkhāragataṃ viññāṇagataṃ tampi niccaṃ vā aniccaṃ vā”ti?


“라훌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촉(眼觸)의 조건으로부터 생기는 수(受)에 속한 것, 상(想)에 속한 것, 행(行)들에 속한 것, 식(識)에 속한 것도 상(常)한가, 무상(無常)한가?”

Comments

혜덕 2022.01.10 15:57
-PED와 (빠알리어사전-전재성)에서 두 단어를 찾아봤습니다. 아직 정확한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수행을 해서 직접 보면 될텐데...연기도 마찬가지네요.

samudaya : 1. rise, origin(발생,기원) 2. bursting forth,effulgence(갑작스런 출현, 분출) 3. produce, revenue ;(산출,세입)
 
nirodha : oppression, suppression; destruction, cessation, annihilation (of senses, consciousness, feeling & being in general:
sankhārā),(억제, 제어, 파괴, 소멸, 지멸)  samudaya의 반대말
2022.01.11 07:20
'수행을 통해 직접 보면 될텐데...'로 접근할 주제가 아닙니다, 법우님. 경을 통해서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 주제이고, 이해 위에서 수행의 방향을 이끌어야 하는 개념입니다. 이미 충분히 설명되어 있는 개념인데, 전화주시면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