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서적출판 > 삶의 메커니즘

삶의 메커니즘

[특강] 인공지능과 마음 – 2. 기억 & 마음은 뇌에서 생기지 않습니다(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501)

▣ [특강] 인공지능과 마음 2. 기억 & 마음은 뇌에서 생기지 않습니다(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501)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RStjHNJT1iU

 

1. 앎=지(知-ñāṇa) vs. 식(識-viññāṇa)


• 앎=지(知-ñāṇa) → (인간의 존재 측면에서) 물질 이후에 있는 것

• 식(識-viññāṇa) → (인간의 존재 측면에서) 물질 이전에 있는 것


• 컴퓨터-인공지능이 만드는 것 = 앎=지(知-ñāṇa) → 역할 수행 → 어디까지 진화할까?

• 사람-마음이 만드는 것 = 식(識)=viññāṇa → 수(受-vedanā) → 고(苦)-고멸(苦滅)의 질적 행위의 전개 → 깨달아 윤회에서 벗어남까지 향상 = 무위(無爲)의 앎(aññā)의 실현


;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길 수는 있지만, 그 사건으로부터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지? 또한, 그 행복을 대상으로 이어지는 질적 행위를 진행하고, 깨달아 무위(無爲)의 앎(aññā)을 실현할 수 있는지?

 

2. cognition과 pattern recognition vs. 1차 인식과 2차 인식


• cognition 인지(認知) 

• computer vision / pattern recognition 패턴인식(認識) ―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 → 분석적으로 정보를 찾아내는 과정.


• 1차 인식 → (with 관심) 식(識)과 수(受)

• 2차 인식 → (with 상(想-번뇌)) 심(心)과 애(愛) → 고(苦)


3. 식(識)과 기억


식(識)은 ①삶의 과정의 누적 즉 연기(緣起)된 식(識)의 인식에 의해 ②출산된 식(識)이 2차 인식과 행위의 과정을 거쳐 세상[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 머물면, ③머문 식(識)은 이전에 머문 식(識)들의 무더기에 더해져서 식(識)의 무더기[식온(識蘊)]가 늘어납니다. 이때, ③머문 식(識)의 몸통은 매 순간의 삶의 과정에 대한 기억이고, 속성은 과정에 속한 의도와 기대입니다. 식온(識蘊)은 이런 식(識)들이 쌓여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식(識)이 곧 기억입니다. 또한, 문제는 식(識)이 담고 있는 기억을 어떻게 기억해낼 것이냐인데, 사띠의 역할이고, 전생(前生)의 기억은 사띠에 의해 실현됩니다.


사띠는 믿음-정진-삼매와 함께하는 마음의 성장인데, 성장은 지혜로써 완성됩니다. ‘올챙이, 개구리 되기!’의 비유로써 설명하고 있습니다.


• 사식주(四識住-catasso viññāṇaṭṭhitiyo) : (DN 33.7-합송경, 네 가지로 구성된 법들)/(MN 102-다섯이면서 셋 경)/(SN 22.53-애착 경)/(SN 22.54-씨앗 경)/(SN 22.55-감흥 경) ― 「“rūpupayaṃ,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rūpārammaṇaṃ rūpappatiṭṭhaṃ nandūpasecanaṃ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eyya. vedanupayaṃ vā,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 pe ... saññupayaṃ vā,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 pe ... saṅkhārupayaṃ vā,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saṅkhārārammaṇaṃ saṅkhārappatiṭṭhaṃ nandūpasecanaṃ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eyya. 


비구들이여, 머물고 있는 식(識)은 색(色)에 대한 애착에 의해 머물 것이다. 색(色)이 대상이고, 색(色)에 머물고, 소망(所望)이 뿌려진 것은 늘어나고 자라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 비구들이여, 머물고 있는 식(識)은 수(受)에 대한 애착에 의해 머물 것이다 … 비구들이여, 머물고 있는 식(識)은 상(想)에 대한 애착에 의해 머물 것이다 … 비구들이여, 머물고 있는 식(識)은 행(行)에 대한 애착에 의해 머물 것이다. 행(行)이 대상이고, 행(行)에 머물고, 소망(所望)이 뿌려진 것은 늘어나고 자라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yo bhikkhu evaṃ vadeyya — ‘ahamaññatra rūpā, aññatra vedanāya, aññatra saññāya, aññatra saṅkhārehi viññāṇassa āgatiṃ vā gatiṃ vā cutiṃ vā upapattiṃ vā vuddhiṃ vā virūḷhiṃ vā vepullaṃ vā paññāpessām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비구여, ‘나는 색(色)으로부터 다른 곳, 수(受)로부터 다른 곳, 상(想)으로부터 다른 곳, 행(行)들로부터 다른 곳에서 식(識)의 오거나 가거나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늘어나거나 자라거나 충만 하는 것을 선언할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 마음의 성장 = 기능 ― ‘올챙이, 개구리 되기!’


• “katamañca, bhikkhave, satindriyaṃ? idha, bhikkhave, ariyasāvako satimā hoti paramena satinepakkena samannāgato cirakatampi cirabhāsitampi saritā anussaritā — idaṃ vuccati, bhikkhave, satindriyaṃ.


비구들이여, 무엇이 사띠의 기능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사띠를 가졌다. 최상의 사띠와 신중함을 갖추어 오래전에 행한 것에게도, 오래전에 말한 것에게도 다가가서 기억한다. — 이것이, 비구들이여, 사띠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 (AN 4.189-실현해야 하는 것 경) ― 몸으로 실현해야 하는 법 = 팔해탈(八解脫), 사띠로 실현해야 하는 법 = 숙주명(宿住明-이전의 존재 상태), 안(眼)으로 실현해야 하는 법 = 천안명(天眼明-중생들의 죽고 태어남), 지혜로 실현해야 하는 법 = 누진명(漏盡明-번뇌들의 부서짐)


• (SN 22.79-삼켜버림 경) ― 과거의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을 기억하는 것


4. 마음은 뇌(腦)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 (AN 3.61-상가라와 경)


뇌과학자들은 의도[사(思)]의 작용 이전에 측정되는 뇌의 신호를 근거로 마음이 뇌에서 생긴다고 말하지만, (AN 3.61-상가라와 경)은 뇌 즉 몸 이전의 삶의 과정 즉 takka로부터 생각이 떠오를 때(vitakka) 발산되는 소리를 언급합니다. 그렇다면 뇌과학자들이 측정해 낸 것은 마음이 생겨나는 신호가 아니라 takka 안에서 생긴 심(心)의 작용이 takka의 영역을 벗어남 즉 탈출하여 뇌와 만나는 과정의 신호라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마음은 뇌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katamañca, brāhmaṇa, ādesanāpāṭihāriyaṃ? idha, brāhmaṇa, ekacco nimittena ādisati — ‘evampi te mano, itthampi te mano, itipi te cittan’ti. so bahuṃ cepi ādisati tatheva taṃ hoti, no aññathā.


바라문이여, 그러면 무엇이 신탁(神託)의 비범(非凡)입니까?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인상(印象)에 의해서 말합니다. — ‘그대의 의(意)는 이렇다. 그대의 의(意)는 이러하다. 그대의 심(心)은 이러하다.’라고. 만약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idha pana, brāhmaṇa, ekacco na heva kho nimittena ādisati, api ca kho manussānaṃ vā amanussānaṃ vā devatānaṃ vā saddaṃ sutvā ādisati — ‘evampi te mano, itthampi te mano, itipi te cittan’ti. so bahuṃ cepi ādisati tatheva taṃ hoti, no aññathā.


또한,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인상(印象)에 의해서 말하지 않고, 사람이나 비인간(非人間)이나 신의 소리를 듣고서 말합니다. — ‘그대의 의(意)는 이렇다. 그대의 의(意)는 이러하다. 그대의 심(心)은 이러하다.’라고. 만약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idha pana, brāhmaṇa, ekacco na heva kho nimittena ādisati napi manussānaṃ vā amanussānaṃ vā devatānaṃ vā saddaṃ sutvā ādisati, api ca kho vitakkayato vicārayato vitakkavipphārasaddaṃ sutvā ādisati — ‘evampi te mano, itthampi te mano, itipi te cittan’ti. so bahuṃ cepi ādisati tatheva taṃ hoti, no aññathā.


또한,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인상(印象)에 의해서 말하지 않고, 사람이나 비인간(非人間)이나 신의 소리를 듣고서 말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위딱까로부터 위짜라로부터 위딱까가 발산하는 소리를 듣고서 말합니다. — ‘그대의 의(意)는 이렇다. 그대의 의(意)는 이러하다. 그대의 심(心)은 이러하다.’라고. 만약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idha pana, brāhmaṇa, ekacco na heva kho nimittena ādisati, napi manussānaṃ vā amanussānaṃ vā devatānaṃ vā saddaṃ sutvā ādisati, napi vitakkayato vicārayato vitakkavipphārasaddaṃ sutvā ādisati, api ca kho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ṃ samāpannassa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ti — ‘yathā imassa bhoto manosaṅkhārā paṇihitā imassa cittassa anantarā amuṃ nāma vitakkaṃ vitakkessatī’ti. so bahuṃ cepi ādisati tatheva taṃ hoti, no aññathā. idaṃ vuccati, brāhmaṇa, ādesanāpāṭihāriyaṃ.


또한,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인상(印象)에 의해서 말하지 않고, 사람이나 비인간(非人間)이나 신의 소리를 듣고서 말하지도 않고, 위딱까로부터 위짜라로부터 위딱까가 발산하는 소리를 듣고서 말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무심무사(無尋無伺)의 삼매에 든 자의 심(心)으로부터 심(心)의 차이를 분명히 압니다. — ‘이런 그대의 의행(意行)의 지향들처럼 이 심(心)의 이어짐들은 이러이러한 위딱까를 일으킬 것이다.’라고. 만약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신탁(神託)의 비범(非凡)이라고 불립니다.


⇒ vitakkayato vicārayato vitakkavipphārasaddaṃ 위딱까로부터 위짜라로부터 위딱까가 발산하는 소리 ― 뇌 즉 몸과 만나기 이전의 과정을 거쳐 발생하는 신호 있음 → 의도(=자유의지) 이전에 발생하는 신호의 측정에 따라 마음이 뇌에서 생긴다는 주장의 허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