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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메커니즘

[특강] 인공지능과 마음-삶의 메커니즘 - 3[인식-기억과 심-혜 & 행위와 심](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508)

▣ [특강] 인공지능과 마음-삶의 메커니즘 - 3[인식-기억과 심-혜 & 행위와 심](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508)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FszR-79uLsY

 

 

앞선 수업에 대한 여섯 개의 추가 질문에 대해 답하였습니다. ()에서 락--불고불락을 수용하고 판단하는 주체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상()의 입력이 수에 병렬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심의 작용(takka )에서 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 있는 것들의 행동(작용) 주체는 어디서 옵니까? 소망(nandi)을 거쳐서 애()를 일으키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takka의 밖에서 견해와 의도, 기대, 지향은 무엇에 기반하여 어떠한 과정으로 만들어집니까? vitakka를 거쳐서 의()가 일으키는 사유는 탐진치, 상락아정, -락 어느 것입니까? 이외에 기억과 식의 관계 그리고 cognitionrecognition에 대한 관점도 다시 설명하였습니다.

 

앞선 수업(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4&wr_id=20)에 대한 추가 질문에 대해 답하였습니다.


[질문 1] 삼사화합(三事和合) 촉(觸) 그리고 수(受)에서 락(樂)-고(苦)-불고불락(不苦不樂)을 수용하고 판단하는 주체는 무엇입니까?


[대답] 내입처(內入處)가 외입처(外入處)를 알고[식(識)] 경험[수(受)]하는 1차 인식과 수(受)를 대상으로 심(心)과 애(愛)를 생기게 하는 2차 인식에서 


1) 수(受)를 수용하는 주체[누가 경험하는가?]는 1차 인식의 주관인 내입처(內入處)이고, 


2) 판단 주체의 측면에서는


① 1단계 판단 ― 락(樂)-고(苦)-불고불락(不苦不樂) 가운데 어떤 느낌을 경험하는지의 판단 = 1차 인식 → 주체 = 내입처,


② 2단계 판단 ― 경험된 느낌의 질적 측면의 판단 = 2차 인식 → 주체 = 출산된 식(識)


입니다.


• 무명(無明-avijjā) – ‘상락아(常樂我)의 성질을 가진 수(受)’라는 전도된 앎


• 탐(貪-rāga) ― 즐거운 느낌이 상(常)하다는 왜곡된 앎[무명(無明)]에 연장하여 그 즐거운 느낌이 정(浄)하다[깨끗하다/아름답다/좋다/유쾌하다]고 이중으로 왜곡된 앎


• 진(嗔-dosa) : 괴로운 느낌이 상(常)하다는 왜곡된 앎[무명(無明)]에 연장하여 그 괴로운 느낌이 저항해야 하는/거부해야 하는/싫은/불쾌한 것이라고 이중으로 왜곡된 앎 



[질문 2] 아마도 상(想)의 입력이 수(受)에 병렬로 가야 하지 않을까?


[대답] 인식의 특징은 두 개의 공동주관이 하나의 객관을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주관은 삶의 큰 흐름을 주도하는 주관인 ①내입처와 ②출산된 식 그리고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로 참여하는 ①욕탐(欲貪)과 ②상(想)[번뇌]입니다. 


그래서 1차 인식은 내입처와 욕탐의 공동주관이 외입처를 객관으로 인식하여 식(識)과 수(受)를 생기게 하는 과정이고, 2차 인식은 출산된 식과 상(想)의 공동주관이 수(受)를 인식하여 심(心)과 애(愛)를 생기게 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상(想)이 수(受)에 병렬로 가야한다는 설명은 타당하지만, 식(識)과 함께하여 심(心)을 만드는 과정으로 합해진다고 보아야 합니다. 



[질문 3] 심(心)의 작용(takka 내)에서 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 있는 것들의 행동(작용) 주체는 어디서 옵니까?


[대답] takka 안의 과정은 식(識)이 상(想)-수(受)의 과정[심행(心行)]으로 심(心)을 생기게 하는 과정과 심(心)이 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 머무는 작용-행위를 통해 소망(nandi)를 만들어 애(愛)를 생기게 하는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그러므로 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머무는 작용-행위의 주체는 심(心)이고, 「심행(心行)은 상(想)-수(受) ― 식(識)이 상(想)과 함께 수(受)를 인식하여 심(心)이 형성하는 작용」에서 옵니다.



[질문 4] 소망(nandi)을 거쳐서 애(愛)를 일으키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대답] 애(愛)에서 벗어나는 것이 심해탈(心解脫)이고 사마타에 의한 염오(厭惡)-이탐(離貪)의 과정이므로 애(愛)를 일으키는 기준은 탐(貪)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愛)는 소망과 탐이 함께한 것(nandirāgasahagatā)이라고 정의되기 때문에 탐은 애(愛)를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애(愛)를 일으키는 기준은 탐(貪)보다 아래에 자리하는 무명(無明) 또는 번뇌[루(漏)]라고 해야 합니다.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愛)에 묶여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이라고 하듯이 애(愛)는 무명(無明)에 이어지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런 점에서 무명 또는 무명의 조건인 번뇌가 애(愛)를 일으키는 기준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합니다.



[질문 5] takka의 밖에서 견해와 의도, 기대, 지향은 무엇에 기반하여 어떠한 과정으로 만들어집니까?


[대답] takka는 몸 그리고 세상과 함께하는 내입처-외입처의 1차 인식에서 생겨나는 식(識)-수(受)가 행위에서 잠재한 상(想)과 함께 몸의 참여 없이 2차 인식하여 심(心)-애(愛)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takka에서 생겨나는 애(愛)로부터는 다시 몸과 함께하는 영역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①견해와 ②takka로부터의 떠남 즉 vitakka가 병렬로 takka에서의 벗어남을 설명합니다. 이때, vitakka는 소망이 관리-경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떠오르는 것(생각 떠오름-떠오른 생각)이고, vicāra로서 1차 인식의 외입처에게 다시 접근하여 행위로 이어집니다. 행위는 [의도-기대-지향]의 과정으로 출발해서 사유[의업(意業)]를 거쳐 몸과 말의 행위[신업(身業)-구업(口業)]으로 전개됩니다. 그래서 행위는 의도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으로 진행되는 행위는 무엇에 의해 만들어지는가의 관점보다는 심행(心行)의 과정을 통해 식(識)이 탐(貪)으로 몸집을 부풀린 심(心)이 주체가 되어 행위하는 과정 즉 삶의 전개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 (SN 1.64-족쇄 경)/(SN 1.65-속박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1_01&wr_id=1


[질문 6] vitakka를 거쳐서 의(意)가 일으키는 사유는 탐진치, 상락아정, 고-락 어느 것입니까?


[대답] 삶은 심(心)-의(意)-식(識)의 마음이 몸과 함께 하는 인식과 행위의 전개 과정입니다. 근본경전연구회가 삶의 메커니즘으로 그려내는 과정인데, 인식과 행위의 중심이 되는 심(心)-의(意)-식(識)과 그 작용으로의 전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사유는 심(心)이 몸과 함께 한 상태 즉 의(意)의 행위입니다. 1차 인식에서 생기는 수(受)[락(樂)-고(苦)-불고불락(不苦不樂)]에 대한 2차 인식의 과정에서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상(想)이 공동주관으로 참여하여 수(受)에 대한 전도된 앎을 생겨나게 하는데, 무명(無明)과 탐(貪)-진(嗔)입니다. 그리고 상(想)이 상락아정(常樂我淨)으로 전도(轉倒)된 상태를 번뇌[루(漏)]라고 하는데, 서로 조건되는 번뇌와 무명(無明)을 합하여 치(癡)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유는 「수(受)[고(苦)-락(樂)] → 상(想)[상락아정(常樂我淨)] → 탐진치(貪瞋癡)」의 과정에서 생긴 심(心)이 takka를 떠나 vitakka 이후 몸과 함께한 상태로의 의(意)의 행위입니다. 따라서, 의(意)의 사유에 대해 탐진치, 상락아정, 고-락의 어느 것이냐는 관점보다는 이렇게 전개되는 삶의 과정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기타 1] 기억과 식(識)의 관계


(AN 3.77-존재 경1)과 (AN 3.78-존재 경2)는 업(業)에 의한 존재[유(有)-bhava]의 선언을 말하는데, 업(業)은 밭이고 식(識)은 씨앗이고 애(愛)는 양분이라는 비유를 통해 식(識)의 머묾과 의도-기대의 머묾을 말합니다. 그래서 식(識)은 삶의 과정에 대한 기억을 몸통으로 하고, 행위의 일부인 의도와 기대를 속성으로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식(識)에 대한 이런 이해는 다시 1차 인식의 촉(觸)에서 수(受)가 생기는 과정을 설명해 줍니다.


• (AN 3.77-존재 경1)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5_08&wr_id=1

• (AN 3.78-존재 경2)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5_08&wr_id=2


[기타 2] cognition과 recognition


cognition은 ‘인지-알다’이고, recognition은 ‘다시, 확인하여 알다’여서, 예를 들면, 밖에 있는 것이 말이라고 아는 것은 cognition이고, 그 말은 내가 전에 보았던 말이 아니라고 다시 확인하여 아는 것은 recognition이라는 설명을 주셨습니다. 


이 설명과 연결하여, cognition은 식(識)의 인식(vijānāti)이고, recognition은 혜(慧)에 의해 분명히 아는 것(pajānāti)이라고 설명하였는데, vijānāti는 분별해 아는 것이고, pajānāti는 현상에 대해 분명히 아는 것(*)과 실상에 대해 꿰뚫어 아는 것의 두 단계 의미를 가집니다.


(*) 호흡 수행의 첫 두 단계 ― “dīghaṃ vā assasanto ‘dīghaṃ assasāmī’ti pajānāti, dīghaṃ vā passasanto ‘dīgh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ṃ vā assasanto ‘rassaṃ 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ṃ vā passasanto ‘rass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①길게 들이쉴 때는 ‘나는 길게 들이쉰다.’라고 분명히 알고, 길게 내쉴 때는 ‘나는 길게 내쉰다.’라고 분명히 안다. ②짧게 들이쉴 때는 ‘나는 짧게 들이쉰다.’라고 분명히 알고, 짧게 내쉴 때는 ‘나는 짧게 내쉰다.’라고 분명히 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2_08&wr_id=1

 

이런 이해에 의하면, 인공지능이 접근하는 cognition과 recognition의 두 단계의 인지는 인간의 삶에 적용되는 1차 인식과 2차 인식의 두 단계 인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1차 인식의 과정에서 혜(慧)의 유무로 구분되는 두 단계의 접근이지 2차 인식에는 접근하지 못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 1차 인식 ― 내가[내입처] 세상[외입처]을 알고(*)[식(識)] 경험[수(受)]하는 과정

• 2차 인식 ― 마음[식(識)-심(心)]이 수(受)를 알고(**)[심(心)] 바라는[망(望)]  


(*) 현상의 분별

(**) 실상[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부정(不淨)]의 헤아림


이런 점이 지(知-앎)에 연결된 것으로의 인공지능과 식(識-마음)으로의 삶을 사는 인간의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한편, takka 내면의 진행 관계는 「[특강] takka를 중심에 둔 수행지도(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505)」에서 더 잘 설명하였습니다.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4&wr_id=27

Comments

아빈뇨 2022.05.16 14:24
감사합니다.
대원행 2022.05.23 20:26
http://www.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4&wr_id=35 참조 [특강] 인공지능과 마음 - 삶의 메커니즘 - 4)[마음 = 운전자 & 처(處)의 상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