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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메커니즘

삶의 메커니즘과 수행지도 3)[고(苦)의 성질 & 탐-진-치를 버리기 위해 닦아야 하는 것들](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5…

▣ 삶의 메커니즘과 수행지도 3)[고(苦)의 성질 & 탐-진-치를 버리기 위해 닦아야 하는 것들](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519)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mv0ISYKPVRw

 

()의 성질은 고고성(苦苦性), 행고성(行苦性), 괴고성(壞苦性)의 세 가지인데, 무상(無常)한 것[()]의 불만족한 성질은 행고성, 변하는 성질은 괴고성 그리고 삶의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는 현상적인 괴로움은 고고성입니다. 그런데 삶의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는 현상적인 느낌은 락과 고와 불고불락의 세 가지입니다. 그리고 불고불락은 락의 수행의 높은 경지에서 경험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행은 삶의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는 현상적인 괴로움인 고의 해소를 위한 방향과 삶의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는 현상적인 즐거움인 락과 불고불락의 해소를 위한 방향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해 위에서 사무량심과 구차제주의 수행이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경지를 해석하였습니다.

 

1. 고(苦)의 성질(dukkhatā) 세 가지


(SN 38.14-고(苦)에 대한 질문 경)은 고고성(苦苦性-dukkhadukkhatā), 행고성(行苦性-saṅkhāradukkhatā), 괴고성(壞苦性-vipariṇāmadukkhatā)의 세 가지 고(苦)를 설명합니다. 무상(無常)에 따르는 불만족으로의 고(苦)는 행고성(行苦性), 무상(無常)에 의해 생겨난 것이 자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변하여 다른 것이 됨에 따르는 괴고성(壞苦性) 그리고 삶의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는 현상적인 괴로움으로의 고고성(苦苦性)입니다. 


• 무상(無常)한 것[행(行)]의 불만족한 성질 = 행고성(行苦性)

• 무상(無常)한 것[행(行)]의 변하는 성질 = 괴고성(壞苦性)


그런데 삶의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는 현상적인 느낌은 락(樂)과 고(苦)와 불고불락(不苦不樂)의 세 가지입니다. 그리고 불고불락(不苦不樂)은 평화의 영역에 있는 뛰어난 즐거움이어서(MN 59-많은 경험 경) 락(樂)의 수행의 높은 경지에서 경험됩니다. 


• 삶의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는 현상적인 괴로움 = 고(苦)

• 삶의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는 현상적인 즐거움 = 락(樂) ― (수행) → 불고불락(不苦不樂)


하지만 락(樂)-고(苦)-불고불락(不苦不樂)의 경험은 연기(緣起)의 수(受)인데, 번뇌에 따르는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락(樂)-고(苦)-불고불락(不苦不樂)의 경험은 모두 고(苦)에 속하는데[행고성(行苦性)-괴고성(壞苦性)], (SN 12.32-깔라라 경)이 「 ‘yaṃ kiñci vedayitaṃ taṃ dukkhasmin’ti 경험된 것은 무엇이든지 고(苦)의 영역에 있다.」라고 말하는데 이유입니다. 물론, 수행을 통해 번뇌를 부수면 번뇌를 따르는 무명의 조건이 해소되므로 고(苦)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해탈락(解脫樂-vimuttisukha) 또는 열반락(涅槃樂-nibbānasukha)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행은 ①삶의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는 현상적인 괴로움인 고(苦)의 해소를 위한 방향과 ②삶의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는 현상적인 즐거움인 락(樂)과 이어지는 불고불락(不苦不樂)의 해소를 위한 방향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2. 수행(修行)의 방향


그런데 (AN 6.107-탐(貪) 경)은 탐(貪)을 버리기 위해 부정(不淨)을, 진(嗔)을 버리기 위해 자(慈)를, 치(癡)를 버리기 위해 지혜를 닦아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이때, 탐(貪)은 락(樂)-불고불락(不苦不樂)의 과정이고, 진(嗔)은 고(苦)의 과정이며, 치(癡)는 번뇌를 부수어 해탈락-열반락을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진(嗔)을 버리기 위해 자(慈)를 닦는다는 것은 ①삶의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는 현상적인 괴로움인 고(苦)의 해소를 위한 방향인데, 사무량심(四無量心) 수행입니다. takka 밖의 영역에서 진에(瞋恚)를 해소하는 것으로의 자(慈)에서 시작하여 비(悲)-희(喜)-사(捨)의 과정으로 짜증(vihesā)-거슬림(byābajjha)/불쾌(arati)-저항(paṭigha)을 점진적으로 해소하여 고(苦)를 소멸하는 수행입니다. 특히, 자(慈)-비(悲)-희(喜)는 거슬림/불쾌 이후의 영역이어서 심(心)의 작용의 영역에 해당하고, 사(捨)는 저항 즉 저항의 상(想)의 영역이어서 상(想)의 전도(轉倒)의 해소 즉 번뇌를 부수는 과정이라고 이해해야 하는데, 심(心)의 형성을 영역입니다[심행(心行) = 상(想)-수(受)].


▣ 주제의 확장 ― (52)「사선(四禪)과 사무량심(四無量心)의 대응」 참조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90

 

탐(貪)을 버리기 위해 부정(不淨)을 닦는다는 것은 ②삶의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는 현상적인 즐거움인 락(樂)과 이어지는 불고불락(不苦不樂)의 해소를 위한 방향인데, 초선(初禪)~상수멸(想受滅)의 구차제주(九次第住) 수행입니다. 제삼선(第三禪)까지는 락(樂)을, 제사선(第四禪)부터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까지는 불고불락(不苦不樂) 즉 사(捨-평정)을 소멸하는 과정입니다. takka 밖의 영역에서 간탐(慳貪)을 해소하는 것으로의 초선(初禪)에서 시작하여 제이선(第二禪)-제삼선(第三禪)의 과정으로 소망(nandi)과 친밀(sārāga)/유쾌(rati)를 해소하고, 제사선(第四禪) 이후 불고불락(不苦不樂) 즉 사(捨-평정)을 해소하는데, 제사선(第四禪)에서는 다양함의 평정, 공무변처(空無邊處)부터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까지는 단일함의 평정입니다. 


특히, 자(慈)-비(悲)-희(喜)와 대응하는 초선(初禪)-제이선(第二禪)-제삼선(第三禪)은 친밀 이후의 영역이어서 심(心)의 작용성의 영역에 해당하고, 사(捨)와 대응하는 제사선(第四禪) 이후는 탐(貪)을 직접 해소하는 영역이어서 상(想)의 전도(轉倒)의 해소 즉 번뇌를 부수는 과정이라고 이해해야 하는데, 심(心)의 형성을 영역입니다[심행(心行) = 상(想)-수(受)]. 


이때, 무소유처까지는 상(想)의 증득으로 얻어져야 하는 것이어서 정(淨)으로 전도된 상(想)[정상(淨想)]의 해소 즉 욕루(慾漏)-유루(有漏)의 번뇌를 부수는 과정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불환자(不還者)의 영역이 제사선에 속하는 정거천(淨居天)이라는 점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상비비상처는 남아있는 행(行)의 증득으로 얻어져야 하고, 상수멸은 소멸의 증득으로 얻어져야 한다는 말씀도 이해해야 합니다(SN 14.11-일곱 요소 경). 


치(癡)를 버리기 위해 혜(慧)를 닦는다는 것은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해 머물면서 혜(慧)로써 보아 번뇌 다하는 과정인데, 무명루(無明漏)의 번뇌를 부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탐(貪)을 버리는 과정은 진(嗔)을 버리는 과정을 포괄하여 구차제주(九次第住)의 비상비비상처에 걸쳐 깨달음을 위한 골격을 구성하고, 심해탈(心解脫)을 이끕니다. 그런 뒤에 상수멸에서 혜(慧)로써 보아 번뇌 다함 즉 혜해탈(慧解脫)로써 깨달음은 완성됩니다.


▣ (AN 6.107-탐(貪) 경) ‒ ①「탐(貪)의 버림을 위하여 부정(不淨)을,  진(嗔)의 버림을 위하여 자(慈)를, 치(癡)의 버림을 위하여 혜(慧)를  닦아야 한다.」 ⇒ 답글 참조

Comments

대원행 2022.06.03 22:32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6_09&wr_id=2 참조 (행복, 그 이면의 이야기 -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 108번뇌)
아빈뇨 2023.12.26 07:45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