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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메커니즘

삶의 메커니즘 3)사는 이야기[識-想 & 두 단계의 인식과 행위(takka의 안팎)](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831)

삶의 메커니즘 3)사는 이야기[-& 두 단계의 인식과 행위(takka의 안팎)](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831)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bj1bqYR4D2E

 

--식은 동질성과 차별성의 양면에서 이해해야 하는데, 인식의 주관인 식은 공동주관인 상과 연결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식이 분별하는 대상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인식이 두 단계로 진행되는 것을 알려줍니다. 한편, 삶은 인식과 행위의 과정인데, 순환 구조로서 삶의 연속성을 설명합니다. 인식과 행위는 takka[()의 형성 과정]의 안팎에서 각각 한 번씩 진행되는데, takka 밖의 과정은 마음이 몸과 함께하는 영역이고, 안의 과정은 몸의 참여 없는 마음만의 영역입니다. 특히, 불교는 takka 안의 영역에 주목하는데, 부처님은 당신이 성취한 법이 takka의 영역을 넘어섬(atakkāvacara) 즉 애멸(愛滅)의 실현이라고 말합니다.

 

()-()-()은 동질성과 차별성의 양면에서 이해해야 하는데, 인식의 주관인 식()은 공동주관인 상()과의 연결된 이해가 필요합니다.

 

(-viññāṇa) vijānāti-분별해 알다=인식하다 인식 주관 삶의 전개 측면

(-saññā) sañjānāti-함께 알다 인식 공동주관 삶의 질적 측면 ()-()-()-()의 전도된 상()[사실에 괴리된 삶]의 문제를 해소하고 무상(無常)-()-무아(無我)-부정(不淨)의 전도되지 않은 상()[사실에 부합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 질적 성장 즉 삶의 향상이고 그 끝이 깨달음임.

 

이때, ()이 분별하는 대상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육외입처(六外入處)와 수()입니다. 이것은 교리적 충돌이 아니라 인식이 두 단계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인데, 욕탐(欲貪)의 참여 가운데 외입처를 인식하는 1차 인식과 상()의 참여 가운데 수()를 인식하는 2차 인식입니다. 이렇게 인식은 두 개의 공동주관이 하나의 객관을 인식하는 특징을 보여줍니다.

 

1차 인식 : [내입처(內入處)+욕탐(欲貪)] 외입처(外入處) (-알고)과 수(-경험) 내입처(內入處) = 식온(識蘊)+()

 

2차 인식 : [(-알고)+()] (-경험) ()과 애() () = ()+() & 심행(心行)=()-()

 

한편, 삶은 인식과 행위의 과정인데, 순환 구조가 특징이어서 삶의 연속성을 설명합니다. 첫 번째 순환 구조는 행위의 상태를 싣고 와서 인식에 전달하는 욕탐(欲貪)인데, 단순한 전달자의 역할입니다. 이렇게 순환된 행위를 공동주관으로 출발하는 인식은 행위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인식과 행위는 달걀과 닭의 관계처럼 선후를 따질 수 없습니다.

 

이렇게 행위로부터 출발하는 인식은 takka 즉 애()의 형성 과정에서 가공되어 행위에 전달되는데, 가공의 결과 생기는 애()의 잡는 성질은 집착된 행위[()]를 이끕니다. takka는 몸의 참여 없이 마음 혼자 작용하는 영역인데, ()이 상()과 함께 수()를 인식하는 2차 인식과 2차 인식에서 생기는 심()이 수()를 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 머무는 행위를 통해 애()를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인식과 행위는 takka의 안팎에서 각각 한 번씩 진행되는데, takka 밖의 과정은 마음이 몸과 함께 행위 하고 인식하는 영역이고, 안의 과정은 몸의 참여 없이 마음 혼자 인식하고 행위 하는 영역입니다.

 

인식 1[with = ()] - 2[without = ()]

행위 1[without = ()] - 2[with = ()]

 

특히, takka 안의 영역은 고집(苦集)인 애(愛)를 형성하는 과정이어서 takka 안의 인식과 행위의 제어를 통해 애(愛)가 생겨나지 않게 하는 것이 삶의 완성인데[고멸(苦滅)], 사마타[염오-이탐]-위빳사나[소멸] 수행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당신이 성취한 법이 takka의 영역을 넘어섬(atakkāvacara)이라고 말하는데, 애(愛)의 형성 과정의 제어를 통한 애멸(愛滅)의 실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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