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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메커니즘

상(相-nimitta)

상(相-nimitta)

 

● 수행경전 특강(221225) - 3. (-nimitta)[위치 & 영역-외입처--& 의 연결]」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5_01&wr_id=83

 

● 수행경전 특강(221228) 4. (-nimitta)[왜곡의 해소를 이끄는 & 心相 心行 & 사념처=삼매의 ]」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5_01&wr_id=84

 

상(相-nimitta)은 삶을 이해하고 향상키 위한 수행에서 중요한 개념인데, 사전적 의미로는 ①외형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상태의 일반적 지칭이어서 외양-현상-모습-생김-암시-징조-신호 등의 의미와 ②표상(表象) 또는 인상(印象)으로 보통 번역되는 의미입니다. 이때, ②는 인식 객관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들인 육외입처(六外入處)의 파생된 개념으로 나타나는데, 색상(色相)~법상(法相)의 육상(六相)의 형태를 보여주는 경으로는 (MN 138-대강의 분석 경)과 (SN 22.3-할릿디까니 경)이 있습니다.


상(相-nimitta)은 기능의 단속에서 중심 개념으로 나타납니다.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상(相)을 붙잡지 않고 뒤따르는 것[수(受)]를 붙잡지 않는다.」라고 하여 상(相-nimitta)을 붙잡지 말 것을 요구하는데, 탐-진-치가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이 자리에 대한 네 가지 개념을 볼 수 있는데, 영역(gocara)-외입처(外入處-bāhira āyatana)-경(境-visaya)-상(相-nimitta)입니다. 육외입처(六外入處)는 인식 주관인 육내입처(六內入處) 즉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밖에 실제(實際) 하는 인식 객관이어서 일반적으로 복수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복수의 외입처 가운데 관심(欲-chanda)에 의해 선택되어 인식되는 하나의 대상이 경(境-visaya)이고, 경(境)이 인식작용에서 이미지화된 것 즉 표상(表象)-인상(印象)이 욕탐(欲貪-chandarāga)에 의해 왜곡된 것을 상(相-nimitta)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경(境-visaya)과 상(相-nimitta)은 내입처와 외입처가 대응한 현재 상태를 지시하는 이런 인식의 과정에서는 단수로 나타납니다. 이런 네 가지 개념 위에서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은 각각의 영역[보이는 것들의 영역 등]이 있고, 그 영역 안에 있는 것 중에서 선택된 각각의 경(境-visaya)을 경험할 뿐 다른 근(根)들의 영역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특히, 상(相-nimitta) 즉 경(境-visaya)의 왜곡은 삶의 메커니즘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인식에는 공동주관인 욕탐(欲貪-chandarāga)이 함께하는데, 행위에 수반하는 탐(貪)-진(嗔)-치(癡)를 싣고 와서 경(境-visaya)을 왜곡하는 당사자입니다. 물론, 경(境-visaya)에 직접 물리적 왜곡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고, 경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그 이미지(표상-인상)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이런 왜곡은 두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번뇌의 영향 위에 있는 중생에게 유위(有爲)의 인식작용에서 무명(無明)에 의한 일차적인 왜곡된 이미지(표상-인상) 위에 탐(貪)과 진(嗔)이 작용하여 이차적인 왜곡된 이미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중의 왜곡 상태인 상(相-nimitta)이 인식[작의(作意)]의 직접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즉 각각의 영역 안에서 실제 하는 외입처에서 선택된 대상 즉 경(境-visaya)에 대해 탐-진-치가 왜곡한 내적인 이미지인 상(相-nimitta)을 만들어 인식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식의 직접 대상이어서 식(識)을 생기게 하는 상(相-nimitta)이 심(心)을 생기게 하는 대상 즉 수(受)인 심상(心相-cittassa nimitta)으로 진행되어 상(想)으로 연결됨으로써 삶의 순환 구조를 보여줍니다.

 

Ⅰ. 사전적 의미 ― nimitta (nt.)


1. sign, omen, portent, prognostication, 

    (*) pubbanimitta: signs preceding an event, portents, warnings, 

                     foreshadowings

2. outward appearance, mark, characteristic, attribute phenomenon (opp. essence), 

3. mark, aim: in nimittaŋ karoti to pick out the aim, to mark out, 

4. sexual organ, 

5. ground reason, condition,


nimitta[상(相)]란 용어가 있는데 두 가지 의미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로는 외형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상태의 일반적 지칭이어서 외양-현상-모습-생김-암시-징조-신호 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표상(表象) 또는 인상(印象)으로 보통 번역되는 의미입니다.


• 표상(表象) - ①본보기, ②대표로 삼을 만큼 상징적인 것, ③감각에 의하여 획득한 현상이 마음속에서 재생된 것


  → 객체표상(客體表象)

     - 사물의 이름을 알기 전이나 이름을 일컫기 전에 그 사물에 대하여 가지는 개념


  ※ 표상설(表象說) - 지각(知覺)의 대상은 물건 자체의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학설.


• 인상(印象) - 어떤 대상에 대하여 마음속에 새겨지는 느낌


이때, 두 번째 의미는 인식작용과 관련된 것을 알 수 있는데, 인식 객관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들인 육외입처(六外入處)의 파생된 개념으로 나타납니다.



Ⅱ. 상(相-nimitta)의 위치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에 대한 것 즉 색상(色相-rūpanimitta)-성상(聲相-saddanimitta)-향상(香相-gandhanimitta)-미상(味相-rasanimitta)-촉상(觸相-phoṭṭhabbanimitta)-법상(法相-dhammanimitta)이 있고, (MN 43-교리문답의 큰 경)에 의하면, 탐진치(貪嗔癡)가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삶의 메커니즘에 의하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육외입처(六外入處)가 1차 인식의 과정에서 욕탐(欲貪-chandarāga)의 간섭을 받은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용례로의 nimitta는 복수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섯 가지 nimitta가 함께 나타나는 경전은 많지 않아서 (MN 138-대강의 분석 경)과  (SN 22.3-할릿디까니 경)의 두 개가 있습니다.


• 용례 1. (MN 138-대강의 분석 경)


“kathañcāvuso, bahiddhā viññāṇaṃ vikkhittaṃ visaṭanti vuccati? idhāvuso, bhikkhuno cakkhunā rūpaṃ disvā rūpanimittānusāri viññāṇaṃ hoti rūpanimittassādagadhitaṃ rūpanimittassādavinibandhaṃ rūpanimittassādasaṃyojanasaṃyuttaṃ bahiddhā viññāṇaṃ vikkhittaṃ visaṭanti vuccati. sotena saddaṃ sutvā . pe . ghānena gandhaṃ ghāyitvā. jivhāya rasaṃ sāyitvā. kāyena phoṭṭhabbaṃ phusitvā.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dhammanimittānusārī viññāṇaṃ hoti; dhammanimittassādagadhitaṃ dhammanimittassādavinibandhaṃ dhammanimittassādasaṃyojanasaṃyuttaṃ bahiddhā viññāṇaṃ vikkhittaṃ visaṭanti vuccati. evaṃ kho āvuso, bahiddhā viññāṇaṃ vikkhittaṃ visaṭanti vuccati. 


도반들이여, 어떻게 ‘밖으로 흩어지고 산란한 식(識)’이라고 불립니까?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가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색상(色相)을 따라가서 색상의 매력에 묶이고, 색상의 매력에 속박되고, 색상의 매력이라는 족쇄에 채입니다. 이것이 ‘밖으로 흩어지고 산란한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이(耳)로 성(聲)을 들으면서 … 비(鼻)로 향(香)을 맡으면서 … 설(舌)로 미(味)를 맛보면서 … 신(身)으로 촉(觸)을 느끼면서 … 의(意)로 법(法)을 알면서 법상(法相)을 따라가서 법상의 매력에 묶이고, 법상의 매력에 속박되고, 법상의 매력이라는 족쇄에 채입니다. 이것이 ‘밖으로 흩어지고 산란한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밖으로 흩어지고 산란한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kathañcāvuso, bahiddhā viññāṇaṃ avikkhittaṃ avisaṭanti vuccati? idhāvuso, bhikkhuno cakkhunā rūpaṃ disvā na rūpanimittānusāri viññāṇaṃ hoti (PTS : na) rūpanimittassādagadhitaṃ na rūpanimittassādavinibandhaṃ na rūpanimittassādasaṃyojanasaṃyuttaṃ bahiddhā viññāṇaṃ avikkhittaṃ avisaṭanti vuccati. sotena saddaṃ sutvā ... pe ... ghānena gandhaṃ ghāyitvā... jivhāya rasaṃ sāyitvā... kāyena phoṭṭhabbaṃ phusitvā...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na dhammanimittānusārī viññāṇaṃ hoti na dhammanimittassādagadhitaṃ na dhammanimittassādavinibandhaṃ na dhammanimittassādasaṃyojanasaṃyuttaṃ bahiddhā viññāṇaṃ avikkhittaṃ avisaṭanti vuccati. evaṃ kho, āvuso, bahiddhā viññāṇaṃ avikkhittaṃ avisaṭanti vuccati.


도반들이여, 어떻게 ‘밖으로 흩어지지 않고 산란하지 않은 식(識)’이라고 불립니까?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가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색상(色相)을 따라가지 않아서 색상의 매력에 묶이지 않고, 색상의 매력에 속박되지 않고, 색상의 매력이라는 족쇄에 채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밖으로 흩어지지 않고 산란하지 않은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이(耳)로 성(聲)을 들으면서 … 비(鼻)로 향(香)을 맡으면서 … 설(舌)로 미(味)를 맛보면서 … 신(身)으로 촉(觸)을 느끼면서 … 의(意)로 법(法)을 알면서 법상(法相)을 따라가지 않아서 법상의 매력에 묶이지 않고, 법상의 매력에 속박되지 않고, 법상의 매력이라는 족쇄에 채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밖으로 흩어지지 않고 산란하지 않은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밖으로 흩어지지 않고 산란하지 않은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 용례 2. (SN 22.3-할릿디까니 경)


“kathañca, gahapati, niketasārī hoti? rūpanimittaniketavisāravinibandhā kho, gahapati, ‘niketasārī’ti vuccati. saddanimitta ... pe ... gandhanimitta... rasanimitta... phoṭṭhabbanimitta... dhammanimittaniketavisāravinibandhā kho, gahapati, ‘niketasārī’ti vuccati. evaṃ kho, gahapati, niketasārī hoti.


그러면 장자여, 어떻게 머무는 곳에서 유행(遊行)하는 자가 됩니까? 장자여, 색상(色相)이라는 머무는 곳에서 흩어지고 묶이면 ‘머무는 곳에서 유행하는 자’라고 불립니다. … 성상(聲相) … 향상(香相) … 미상(味相) … 촉상(蜀相) … 장자여, 법상(法相)이라는 머무는 곳에서 흩어지고 묶이면 ‘머무는 곳에서 유행하는 자’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장자여, 머무는 곳에서 유행하는 자가 됩니다.


“kathañca, gahapati, aniketasārī hoti? rūpanimittaniketavisāravinibandhā kho, gahapati, tathāgatassa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tasmā tathāgato ‘aniketasārī’ti vuccati. saddanimitta... gandhanimitta... rasanimitta... phoṭṭhabbanimitta... dhammanimittaniketavisāravinibandhā kho, gahapati, tathāgatassa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tasmā tathāgato ‘aniketasārī’ti vuccati. evaṃ kho, gahapati, aniketasārī hoti.


그러면 장자여, 어떻게 머무는 곳 없이 유행하는 자가 됩니까? 장자여, 색상(色相)이라는 머무는 곳에서의 흩어짐과 묶임은 세존에게서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래(如來)는 ‘머무는 곳 없이 유행(遊行)하는 자’라고 불립니다. … 성상(聲相) … 향상(香相) … 미상(味相) … 촉상(蜀相) … 장자여, 법상(法相)이라는 머무는 곳에서의 흩어짐과 묶임은 세존에게서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래(如來)는 ‘머무는 곳 없이 유행(遊行)하는 자’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장자여, 머무는 곳 없이 유행하는 자가 됩니다.


이때, 용례 2.의 색상(色相)이라는 머무는 곳에서 흩어지고 묶이는 것 즉 머무는 곳에서 유행하는 것은 용례 1.의 식(識)이 밖으로 흩어지고 산란한 것을 말하고, 머무는 곳에서 흩어지고 묶이지 않는 것은 식(識)이 밖으로 흩어지지 않고 묶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식 주관인 육내입처(六內入處)가 인식 객관인 육외입처(六外入處)의 상(相-nimitta)을 따라가서 상(相)의 매력에 묶이고, 상(相)의 매력에 속박되고, 상(相)의 매력의 족쇄에 채인 것을 상(相-nimitta)이라는 머무는 곳에서 유행한다고 하고, 그 결과로 식(識)이 밖으로 흩어지고 산란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相-nimitta)과 관련한 이 상황은 육내입처(六內入處)와 육외입처(六外入處) 간의 1차 인식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상(相-nimitta)에 대한 이런 이해 위에서 인식의 주관-객관의 상황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imasmiñca saviññāṇake kāye bahiddhā ca sabbanimittesu ahaṃkāramamaṃkāra(mānānusayā) 식(識)과 함께한 이 몸과 밖의 모든 상(相)에 대한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기화의 잠재성향)」의 용례가 있습니다.


; (MN 109-보름밤의 큰 경)/(MN 112-여섯 가지 청정 경)/(SN 18.21-잠재성향 경)/(SN 18.22-제거 경)/(SN 22.71-라다 경)/(SN 22.72-수라다 경)/(SN 22.82-보름밤 경)/(SN 22.91-라훌라 경)/(SN 22.92-라훌라 경2)/(SN 22.124-깝빠 경)/(SN 22.125-깝빠 경2)/(AN 3.32-아난다 경)/(AN 3.33-사리뿟따 경)/(AN 7.49-상(想) 경2)


이 용례는 이렇게 내입처(內入處)가 식(識)과 근(根)이 함께한 인식 주관이고 상(相-nimitta)가 인식 객관으로 대응하여 인식 과정이 진행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위처럼 많은 용례가 있는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주목해야 합니다.


• 그림 「삶의 메커니즘 ― 상(相-nimitta)의 이해」 참조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4&wr_id=25


Ⅲ. 기능의 단속


1. 기능의 단속① ― 상(相)을 붙잡지 말 것


(AN 3.16-흠 없음 경)은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한 근본으로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할 것, 음식에 대한 적당량을 알 것, 깨어있음을 실천할 것의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이때,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하는 것은 기능의 단속입니다.


bhikkhu cakkhunā rūpaṃ disvā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yatvādhikaraṇamenaṃ cakkhundriyaṃ asaṃvutaṃ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cakkhundriyaṃ, cakkhundriye saṃvaraṃ āpajjati. 


비구는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상(相)을 붙잡지 않고 뒤따르는 수(受)를 붙잡지 않는다. 안근(眼根)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간탐과 불만과 악한 불선법들이 흘러들어 올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단속을 위해 실천한다. 안근을 보호하고, 안근에서 단속한다.


; 육내입처(六內入處)-육외입처(六外入處)에 반복


그런데 이 설명에는 상(相-nimitta)이란 용어가 나타나는데, 인식 과정에서 붙잡지 않아야 하는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이 두 가지를 붙잡지 않는 것이 근(根-기능)을 단속하는 것이고, 문을 보호(guttadvāro)하는 것인데, 근을 보호하고(rakkhati) 단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相-nimitta)은 무엇입니까? (MN 43-교리문답의 큰 경)은 탐(貪)-진(嗔)-치(癡)가 상(相)을 만든다고 하는데, 위의 설명처럼, 상(相)의 위치가 색상(色相)-성상(聲相)-향상(香相)-미상(味相)-촉상(觸相)-법상(法相)의 육상(六相)으로 나타나는 것을 고려하면 육외입처(六外入處) 즉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인식 상태인 경(境-visaya-대상)이 탐-진-치에 의해 왜곡된 상태를 지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외입처(外入處-bāhira āyatana)[복수의 존재] → 경(境-visaya)[관심이 묶어준 대상] → 상(相-nimitta)[관심에 의해 왜곡된 상태]


육외입처(六外入處) 즉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은 인식 주관인 육내입처(六內入處) 즉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밖에 실제(實際) 하는 인식 객관이어서 일반적으로 복수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기능의 단속에서처럼 인식 현장에서 대상이 된 경우의 경(境-visaya)과 상(相-nimitta)은 단수로 나타나서 내입처와 외입처가 대응한 현재 상태를 지시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gocaravisaya(영역과 대상)의 용례 참조 ― (MN 43-교리문답의 큰 경)/(SN 48.42-운나바 바라문 경)/(SN 35.247-여섯 동물 비유 경)


• 영역(gocara) 안에 있는 것 ― 외입처(外入處-bāhira āyatana)[복수의 존재] → 경(境-visaya)[관심이 묶어준 대상] → 상(相-nimitta)[관심에 의해 왜곡된 상태]


• 그림 「영역(gocara)-외입처(外入處-bāhira āyatana)-경(境-visaya)-상(相-nimitta)」 참조 ⇒ 답글.

  

※ 외입처는 복수 즉 색들-성들-향들-미들-촉들-법들로 나타나서 세상에 실제 하는 것을 지시한다고 알려줍니다. 세상에는 외입처를 인식된 것으로의 내적인 것이라는 주장이 많지만, 복수로 나타나고 세상에 실제 하는 것이라는 점 때문에 그런 주장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 외입처를 복수로 정의하는 경들 ― (DN 28.3-믿음을 고양하는 경, 처(處)의 개념에 대한 가르침), (MN 112-여섯 가지 청정 경), (MN 115-많은 요소를 가진 것 경), (AN 10.60-기리마난다 경) & (DN 22/MN10-대념처경)


※ 세상에 실제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경 ― ‘세상에 있는 다채로운 것들은 단지 사실로서 머물 뿐’ ― (SN 1.34-있는 것이 아님 경), (AN 6.63-꿰뚫음 경) 


⇒ 「외입처 ― 밖에 실제(實際) 하는 것들」 참조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4&wr_id=58

 

그런데 이 인식에는 공동주관인 욕탐(欲貪)이 함께하는데, 행위에 수반하는 탐(貪)-진(嗔)-치(癡)를 싣고 와서 외입처를 왜곡합니다. 물론, 외입처에 직접 물리적 왜곡을 초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번뇌의 영향 위에 있는 중생에게 유위(有爲)의 인식작용에서 생겨나는 외입처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표상-인상)에 탐과 진이 작용하여 이차적인 왜곡된 이미지를 만든 뒤 인식의 직접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즉 밖에 실제 하는 외입처에서 선택된 대상에 대해 탐-진-치가 왜곡한 내적인 이미지인 상(相-nimitta)을 만들어 인식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相)을 붙잡지 말라는 것은 탐-진-치를 싣고 오는 욕탐의 제어를 통해 탐-진-치가 상(相)을 만들지 못하게 하라는 의미이고, 왜곡 없는 이미지를 통해 외입처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AN 9.35-소의 비유 경)은 초선(初禪)~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물 때 그 상(相)을 가까이하고, 닦고, 많이 행하고, 잘 확립한다고 하는데, 비상비비상처까지도 소멸하지 않은 탐-진-치가 있어서 상(相)을 만든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상(相)은 삶의 질의 높낮이에 따라 상응하는 상(相)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삶의 질은 상(想-saññā)의 몫입니다. 어떤 상(想)을 가진 자(*)인가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되는 것인데, 상(想)은 그대로 탐-진-치로 연장되어 상(相)에 이릅니다. 그래서 상(相)은 삶의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경우에 상(想)과 같은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 subhasaññā - subhanimitta, asubhasaññā - asubhanimitta, paṭighasaññā - paṭighanimitta


(*) (DN 9.3-뽓타빠다 경, 상(想)은 원인과 함께 생기고 소멸함) 참조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2&wr_id=169

 

그런데 상(想)은 상(常)-락(樂)-아(我)-정(淨)의 전도된 것과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부정(不淨)의 전도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상(常)-락(樂)-아(我)의 상(想)은 사실에 대한 전도여서 존재화를 이끌고, 정(淨)의 상(想)은 존재화된 삶의 질을 구분하여 욕상(慾想)-색상(色想)-무색상(無色想)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2차 인식에 공동주관으로 참여하는(sañjānāti) 상(常)-락(樂)-아(我)의 상(想)은 무명(無明)을 생기게 하고, 정(淨)의 상(想)은 욕탐(慾貪)-색탐(色貪)-무색탐(無色貪)의 탐(貪)을 생기게 합니다. 또한, 정상(淨想)은 락(樂)에 대한 반응인 것에 반해, 고(苦)에 대한 반응은 저항의 상(想-paṭighasaññā)이고, 진(嗔)을 생기게 합니다.


그런데 상(相)은 상(常)-락(樂)-아(我)의 상(想) 또는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의 상(想)과 같은 이름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도 주목해야 합니다. 상(常)-락(樂)-아(我)의 상(相-nimitta) 또는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의 상(相-nimitta)은 용례가 발견되지 않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는 무위(無爲)이고, 상(常)-락(樂)-아(我)는 유위(有爲)입니다. 그래서 해탈된 삶은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의 상(想)으로 시작해서 무탐(無貪)-무진(無嗔)-무치(無癡)로 연결되는 무위(無爲)이고, 중생의 삶은 상(常)-락(樂)-아(我)의 상(想)으로 시작해서 탐(貪)-진(嗔)-치(癡)로 연결되는 유위(有爲)입니다. 이런 유위가 욕탐(欲貪-chandarāga)으로 순환하여 인식에 이르면 상(相-nimitta)을 만들고, 이런 무위가 관심(欲-chanda)으로 순환하여 인식에 이르면 무상(無相-animitta)를 만든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존재화를 이끄는 상(常)-락(樂)-아(我)의 상(想)에 대응하는 것은 상(相-nimitta) 자체이고, 존재화에서 벗어난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의 상(想)에 대응하는 것은 무상(無相-animitta)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무상(無相-animitta)의 용례


• vimokkho ― suññato vimokkho animitto vimokkho appaṇihito vimokkho

• samādhi ― suññato samādhi animitto samādhi appaṇihito samādhi

• samāpatti ― suññatā samāpatti animittā samāpatti appaṇihitā samāpatti

• phasso ― suññato phasso, animitto phasso, appaṇihito phasso

; suñña – 공(空) → takka 안에 탐진치 없음, animitta → 인식의 왜곡 해소, appaṇihita → 행위의 원인(심(心)의 지향)이 유위(有爲)에서 벗어남


• animittā cetovimuttī ― tayo kho, āvuso, paccayā animittāya cetovimuttiyā ṭhitiyā — sabbanimittānañca amanasikāro, animittāya ca dhātuyā manasikāro, pubbe ca abhisaṅkhāro

• animitto cetosamādhi ― katamo nu kho animitto cetosamādhīti? tassa mayhaṃ, āvuso, etadahosi — ‘idha bhikkhu sabbanimittānaṃ amanasikārā animittaṃ cetosamādhi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vuccati animitto cetosamādhī’ti.

• sattamaṃ animittavihāriṃ puggalaṃ ― (AN 7.56-띳사 범천 경)


그런데 상(相-nimitta)이 이렇게 상(常)-락(樂)-아(我)의 상(想)에 의한 존재화에 따르는 삶의 과정 위에 적용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상(相-nimitta)은 얼마만큼 왜곡되었는지의 측면과 그 왜곡이 얼마나 해소되었는지의 측면 그리고 왜곡의 해소로 이끄는 과정에 적용되는 측면에서 2차적으로 분류됩니다.


1) 얼마만큼 왜곡되었는지의 측면 ― 정상(淨相), 저항의 상(相)


2) 왜곡이 얼마나 해소되었는지의 측면 ― 부정상(不淨相), 무상(無相)


3) 왜곡의 해소로 이끄는 과정(*)에 적용되는 측면 ― samathanimitta(사마타의 相), abyagganimitta(부동의 相), samādhinimitta(삼매의 相), paggahanimitta(노력의 相), upekkhānimitta(평정의 相)


(*) 욕탐(欲貪)의 제어 & 번뇌의 부서짐[누진(漏盡)] ― 상(想)-심(心)-견해의 전도의 해소 ― 「사념처(四念處) → 사마타-위빳사나」


• 그림 「호흡 수행[신(身)과 촉(觸)의 대응]에서의 상(相-nimitta)의 이해」 참조 ⇒ 답글


[참고] 상(想)은 행위를 통해 잠재해 누적된 삶의 경향이고, 상(相-nimitta)은 관심(chanda)이 묶어주는 역할에 의해 생긴다는 차이 때문에 상(想)과 상(相)의 구성은 차이를 보여줍니다. 왜곡이 해소된 상(相-nimitta)을 만들기 위한 행위의 제어라는 수행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 상(想-saññā)으로만 나타나고 상(相-nimitta)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경우 ⇒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하게 하는 상(想)들」의 용례 ― 부정(不淨)의 상(想), 죽음의 상, 자량(資糧)에 대해 혐오하는 상,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상, 무상(無常)의 상, 무상에 대한 고(苦)의 상, 고에 대한 무아(無我)의 상, 버림의 상, 바램의 상, 소멸의 상, 해골이 된 것의 상, 벌레가 버글거리는 것의 상, 검푸른 것의 상, 끊어진 것의 상, 부푼 것의 상


• 상(相-nimitta)으로만 나타나고 상(想-saññā)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경우 ― samathanimitta/abyagganimitta/samādhinimitta/paggahanimitta/upekkhānimitta/uppādanimittakovidā/byañjananimittakovidā/obhāsanimitta/paccavekkhaṇanimitta/paṇḍitanimittāni/bālanimittāni/pubbanimitta/bahuvividhanimittalakkhaṇaññū/mukhanimittaṃ


2. 기능의 단속② ― 심상(心相)을 붙잡지 말 것


한편, 삶의 과정에 인식작용은 두 번 진행됩니다. 외입처를 객관으로 식(識)이 생기는 1차 인식과 삼사화합(三事和合) 촉(觸)을 조건으로 생기는 수(受)를 객관으로 심(心)이 생기는 2차 인식입니다. 여기서 식(識)을 생기게 하는 객관인 대상의 왜곡을 상(相-nimitta)이라고 한다는 이해의 연장선에서 심상(心相-cittassa nimitta)이란 개념이 나타나는데, 심(心)을 생기게 하는 객관 즉 수(受)의 왜곡입니다. 기능의 단속에서는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라고 하여 상(相-nimitta)을 붙잡지 말고 뒤따르는 것(anubyañjana)을 붙잡지 말 것을 지시하는데, 뒤따르는 것은 내입처와 외입처에서 생긴 식의 삼사화합(三事和合)에 의해 생기는 수(受)입니다(*). 그래서 anubyañjana를 뒤따르는 수(受)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런 이해에 의하면, 수(受)가 곧 심상(心相-cittassa nimitta)입니다. 그리고 이런 심상(心相-cittassa nimitta)의 인식 과정에 공동주관으로 상(想)이 참여하여 심(心)을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 (SN 12.45-냐띠까 경) 참조 ― 「안(眼)[=내입처(內入處)]과 색(色)들[외입처(外入處)]을 연(緣)하여 안식(眼識)이 생긴다. 셋의 만남이 촉(觸)이다. 촉(觸)을 조건으로 수(受)가 생긴다.」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3

 

• 심상(心相-cittassa nimitta) ― (SN 47.8-요리사 경), (AN 6.68-무리 지어 삶 경)


이런 설명에 의하면, 욕탐(欲貪)을 공동주관으로 하는 개념인 상(相-nimitta)에 비해 상(想-saññā)을 공동주관으로 하는 개념인 심상(心相-cittassa nimitta)이 더 깊고 미세한 왜곡에 관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심행(心行) = 상(想)-수(受)


심상(心相-cittassa nimitta)인 수(受)는 상(想)의 참여에 의해 무명(無明)-탐(貪)-진(嗔)을 만들어 심(心)을 구성하는 대상이 되는데, 이것이 심행(心行) 즉 심(心)의 형성작용입니다. 이때, 심상(心相-cittassa nimitta)인 수(受)는 상(相-nimitta)을 뒤따르는 것이어서 심행(心行)은 그대로 상(相-nimitta)에서 연장됩니다. 그래서 상(相-nimitta)은 상(想-saññā)을 일어나게 해서 탐(貪)-진(嗔)을 생기게 하는 자량이 됩니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생기는 심(心)은 행위의 원인이고 뿌리이기 때문에 상(相-nimitta)은 그대로 행위로 연장됩니다.


(SN 14.7-상(想)의 다양함 경)은 계(界)의 다양함을 연(緣)하여 상(想)의 다양함이 생긴다고 하여 이런 이해의 근거를 제공하는데, 계(界)의 다양함은 색계(色界)~법계(法界)여서 육외입처를 지시합니다. 또한, 상(想)의 다양함은 사유 → 관심 → 열기 → 추구의 다양함으로 연장되는데, 계(界)의 상태 즉 상(相-nimitta)이 상(想)을 거쳐서 행위까지 그 영향력을 작용시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삶은 이런 방법으로 순환하며 지속하는데, 정상(淨相-subhanimitta)의 용례는 


• (AN 2.119-130-버리기 어려운 바람 품) ― 정상(淨相)과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 → 탐(貪), 저항의 상(相)과 비여리작의 → 진(嗔)


• (AN 3.69-외도 경) ― 정상(淨相)의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 → 탐(貪), 부정상(不淨想)의 여리작의(如理作意) → 탐(貪)이 생기지 않음


• (SN 46.2-몸 경)/(SN 46.51-자량 경)/(AN 1.11-20-장애의 버림 품) ― 정상(淨相)의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 → 소유의 관심, 저항의 상(相)의 비여리작의 → 진에


• (AN 5.30-나기따 경) ― 부정상(不淨相)을 실천하는 자에게 정상(淨相)에 대한 혐오가 확립됨


• (AN 10.72-가시 경) ― 부정(不淨)의 상(相)의 실천을 닦는 자에게 정상(淨相)의 실천은 가시


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 그림 「삶의 메커니즘 ― 상(相-nimitta)의 이해」 참조


4. 사념처 = 삼매의 상(相)


한편, (MN 44-교리문답의 작은 경)은 「사념처(四念處)가 삼매의 상(相)들 cattāro satipaṭṭhānā samādhinimittā」이라고 말합니다. 상(相)의 왜곡의 해소를 위해 삼매를 닦는 과정으로 신(身)-수(受)-심(心)-법(法)의 염처(念處)를 제시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왜곡의 해소로 이끄는 과정에 적용되는 상(相)의 관점에서 욕탐(欲貪)의 제어를 위한 수행을 지시하는 것입니다. 


• 상(相-nimitta) → 식(識)이 생김 → 삼매 = dhammavitakka = 법의 삼매(SN 42.13) → 신념처(身念處)/수념처(受念處) ― 신(身)에 대한 눈 뜸과 수(受)에 대한 눈 뜸


• 심상(心相-cittassa nimitta) → 심(心)이 생김 → 심의 삼매(SN 42.13) → 심념처(心念處)/법념처(法念處) - 심(心)에 대한 눈 뜸과 법(法)에 대한 눈 뜸



Ⅳ. 다른 의미로 쓰이는 nimitta의 예


● 신호 ― nimittakammaṃ nāma nimittaṃ karoti.

  

1) Vinaya Piṭaka, pārājikapāḷi, 1. pārājikakaṇḍaṃ, 2. dutiyapārājikaṃ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빅쿠위방가 555쪽.


nimittakammaṃ nāma nimittaṃ karoti. akkhiṃ vā nikhaṇissāmi bhamukaṃ vā ukkhipissāmi sīsaṃ vā ukkhipissāmi, tena nimittena taṃ bhaṇḍaṃ avaharāti, āpatti dukkaṭassa. tena nimittena taṃ bhaṇḍaṃ avaharati, āpatti ubhinnaṃ pārājikassa. taṃ nimittaṃ pure vā pacchā vā taṃ bhaṇḍaṃ avaharati, mūlaṭṭhassa anāpatti. avahārakassa āpatti pārājikassa.


‘신호하기’라는 것은 ‘눈을 감거나 눈썹을 치켜세우거나 머리를 들거나 하면 그 신호로 물건을 훔쳐라.’라고 신호를 하는 것인데, 악작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 신호로 물건을 훔치면 양자가 모두 승단추방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 신호의 전이나 후에 그 물건을 훔친다면 주동자는 무죄이지만 훔친 자는 승단추방죄를 범하는 것이다.


2) Vinaya Piṭaka, pārājikapāḷi, 1. pārājikakaṇḍaṃ, 3. tatiyapārājikaṃ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빅쿠위방가 610쪽.


nimittakammaṃ nāma nimittaṃ karoti — “akkhiṃ vā nikhaṇissāmi bhamukaṃ vā ukkhipissāmi sīsaṃ vā ukkhipissāmi, tena nimittena taṃ jīvitā voropehī”ti, āpatti dukkaṭassa. tena nimittena taṃ jīvitā voropeti, āpatti ubhinnaṃ pārājikassa. taṃ nimittaṃ pure vā pacchā vā taṃ jīvitā voropeti, mūlaṭṭhassa anāpatti, vadhakassa āpatti pārājikassa.


‘신호하기’라는 것은 ‘눈을 감거나 눈썹을 치켜세우거나 머리를 들거나 하면 그 신호로 생명을 빼앗아라.’라고 신호를 하는 것인데, 악작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 신호로 생명을 빼앗으면 양자가 모두 승단추방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 신호의 전이나 후에 그 생명을 빼앗으면 주동자는 무죄이지만 집행자는 승단추방죄를 범하는 것이다.


Comments

대원행 2022.12.31 15:47
http://www.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5_01&wr_id=84 참조 (수행경전 특강 - 상(相-nimitta)[왜곡의 해소를 이끄는 相 & 心相과 心行 & 사념처=삼매의 相]
아빈뇨 2023.01.01 13:42
감사합니다.
대원행 02.24 22:04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3_08&wr_id=2 참조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128. 오염원 경[삼매를 흔들리게 하는 心의 오염원 - 상(相-1차 인식)과 상(想-2차 인식) - 삼매에서 생기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