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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를 믿는다

나는 불교를 믿는다(231226) ― 제3장 가르침[핵심경전 - 4)전법륜경[부처님의 깨달음 ― 중도-팔정도-사성제(삼전십이행…

나는 불교를 믿는다(231226) 3장 가르침[핵심경전 - 4)전법륜경[부처님의 깨달음 중도-팔정도-사성제(삼전십이행)](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ODS9mNkzyPs&t=1s

 

함께하는 다섯 비구를 소개했습니다. 고행 시절 곁에 있다가 떠났지만, 부처님의 최초 설법[전법륜(轉法輪)]에서 깨달음을 재현한 분들입니다. 최초설법에서도 첫 번째 설법인 (SN 56.11-전법륜경)중도-팔정도 사성제-삼전십이행 법안(法眼) 신들의 찬탄으로 전개됩니다. 소유와 고행의 양 끝에 가까이하지 않고 중도를 깨달았는데, 중도의 깨달음은 완성이 아니라 완성을 위한 방법의 깨달음이고, 완성은 사성제의 삼전십이행입니다. 꼰단냐 존자에게 법안이 생기는데, 고멸의 가능성에 관한 눈뜸과 스승에 대한 믿음입니다. 부처님은 꼰단냐 존자에게 이해한 꼰단냐라는 의미로 안냐시꼰단냐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함께하는 다섯 비구를 소개했습니다. 고행 시절 곁에 있다가 떠났지만, 부처님의 최초 설법[전법륜(轉法輪)]에서 깨달음을 재현한 분들입니다. 최초설법에서도 첫 번째 설법인 (SN 56.11-전법륜경)중도(中道)-팔정도(八正道) 사성제(四聖諦)-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 법안(法眼) ()들의 찬탄으로 전개됩니다.

 

소유와 고행의 양 끝에 가까이하지 않고 중도를 깨달았는데, 중도의 깨달음은 완성이 아니라 완성을 위한 방법의 깨달음이고, 완성은 사성제의 삼전십이행입니다. 꼰단냐 존자에게 법안이 생기는데, 고멸(苦滅)의 가능성에 관한 눈뜸과 스승에 대한 믿음입니다.

 

1. 중도(中道) 소유와 고행의 중간 길이 아닙니다. 더 높은 삶을 위해서는 소유를 넘어 존재의 삶에 들어섬으로써 소유에 가까이하지 않아야 하고, 존재에서 벗어나 해탈된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깨달음으로 이끌지 못하는 고행에 가까이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두 끝에 가까이하지 않고서 부처님은 삶의 중심을 꿰는 길인 팔정도와 그 실천으로의 중도(中道)를 깨닫고, 그 길과 그 실천을 통해 깨달음을 완성합니다.

 

2. 경은 이어서 사성제를 설명하는데, 중도는 고멸도성제로 자리합니다. 이것이 중도의 쓰임새입니다.

 

3. 경은 다시 사성제를 세 번 굴리는 형태를 통해 부처님의 깨달음을 설명하는데, 사성제(四聖諦)의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입니다.

 

4. 깨달음에 대한 부처님의 이런 설명을 듣고서 고멸(苦滅)의 가능성에 눈 뜬 꼰단냐 존자는 스승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고 확고해지는데, 법안(法眼)이 생겨난 것입니다.

 

5. ()들은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한 이런 눈뜸이 가지는 의미를 찬탄합니다. 오직 부처님만의 깨달음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재현되는 깨달음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6. 부처님은 꼰단냐 존자에게 이해한 꼰단냐라는 의미로 안냐시꼰단냐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사성제(四聖諦)의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 − (SN 56.11-전법륜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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