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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를 믿는다

나는 불교를 믿는다(240604) ― 제4장 제자들[재가제자3) 가르침의 토대 - 업-결실-노력 & 삼종외도 - 행위 복음](…

나는 불교를 믿는다(240604) 4장 제자들[재가제자3) 가르침의 토대 - -결실-노력 & 삼종외도 - 행위 복음](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cMBFnhqB97I

 

부처님을 대표하는 두 가지 개념은 업과 결실 있음입니다. 태생에 의해 결정된 삶이 아니라 행위 즉 업으로써 만들어 가는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개념은 가르침의 토대로 확장됩니다. (AN 3.138-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 경)에 의하면,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은 공통되게 업을 말하고, 결실 있음을 말하고, 노력을 말하는데, 두 가지 개념 위에서 노력을 통해 행복한 삶을 실현하는 것이 불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칼리는 이 세 가지를 부정하는 교설 즉 결실 없음을 설하는데, 전생의 행위가 원인, 신의 창조가 원인,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음이라는 삶에 대한 세 가지 잘못된 해석은 결실 없음의 아류입니다

 

가르침의 토대에 대해서는 많은 동영상에서 강의하였는데,

 

초기불교 백일법문(수행경전) - (별책-4)kesakambalasuttaṃ (AN 3.138-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 경)[가르침의 토대](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30906)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3&wr_id=398

 

나는 불교를 믿는다(221108) - 수업 준비 과정 6)[죽음-무상 가르침의 토대와 원초적 바른 견해](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6&wr_id=45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부처님을 대표하는 두 가지 개념

 

부처님은 ()을 말하는 자(kammavāī이고, 결실 있음을 말하는 자(kiriyavāī라고 불립니다. 태생에 의해 결정된 삶이 아니라 행위 즉 업()으로써 만들어 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2) 가르침의 토대

 

(AN 3.138-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 경)에 의하면,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은 공통되게 ()을 말하고, 결실 있음을 말하고, 노력을 말합니다. ()에는 결실이 있으니 좋은 결실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농사를 짓는 행위에는 풍작이든 흉작이든 결실이 있고, 풍작을 거두기 위해서는 적절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인데, 부처님을 대표하는 두 가지 개념 위에서 노력을 통해 행복한 삶을 실현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불교(佛敎)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칼리라는 사람은 이 세 가지를 부정하는 교설을 세워서 많은 사람을 괴로움으로 이끕니다. 이런 교설을 결실 없음(akiriya)이라고 하는데, 전생의 행위가 원인, ()의 창조가 원인,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음[무인무연(無因無緣)]이라는 삶에 대한 잘못된 해석 세 가지 즉 삼종외도(三種外道)는 막칼리의 결실 없음(akiriya)의 아류입니다.

 

한편, 이번 강의에서는 불교의 대척점이 되는 결실 없음(akiriya)의 아류인 삼종외도(三種外道)에 대해 더 설명하였는데, 창조주의 창조가 원인이라고 말하는 교설에 해당하는 기독교에서 행위 복음을 부정하고 은혜 복음을 주장하는 측면과 관련하여 불교야말로 진정한 복음(福音-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가르침)이고, ()에 기반한 행위 복음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불교의 요점 시리즈 - 아침독송(240517)] (AN 3.138-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 경)[별책의 보충2)불교=행위 복음, 기독교=은혜 복음] 참조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8_02no&wr_id=130

 

이외에 태생 즉 결정된 삶을 말하는 가르침으로는 사성 계급을 주장하는 힌두교가 대표적이라 할 텐데, 전생의 행위를 원인으로 한 태어남이고, 원인도 조건도 없다[무인무연(無因無緣)]는 가르침은 우연론이 아니라 윤회를 통한 청정(정해진 만큼 즉 840만 대겁 동안 윤회를 해야 끝남)의 주장이라는 것도 설명하였습니다. (DN 2.5-사문과경, 막칼리 고살라의 말)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1_02&wr_id=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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