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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를 믿는다

나는 불교를 믿는다(230221) - 연기된 식의 윤회 & 나는 누구인가(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 나는 불교를 믿는다(230221) - 괴로울 것인가, 행복할 것인가 & 나는 누구인가(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UStRENEahrk

  

부처님은 비구들이여,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오직 고와 고멸을 꿰뚫어 알게 한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괴로울 것인지 행복할 것인지의 삶의 방향성을 지시하는 불교의 최상위 개념입니다. 이런 고와 고멸의 불교는 고-고집-고멸-고멸도로 확장되어 사성제의 진리를 선언하는데,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알고, 닦아야 하는 것을 닦고, 버려야 하는 것을 버린 존재로의 부처님을 정의해줍니다. 한편, 고의 당사자인 나의 삶에 대해 부처님은 연기된 식의 윤회라고 해석하는데, 무아와 윤회가 서로 어긋나는 교리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세 단계로 정의되는데, 유신(有身-몸 있음) [삶의 과정] 오취온(五取蘊) [활성화] ()-명색(名色)입니다.

 

Ⅰ. 최상위 개념 ― 괴로울 것인가, 행복할 것인가?


부처님은 「pubbe cāhaṃ bhikkhave, etarahi ca dukkhañceva paññāpemi, dukkhassa ca nirodhaṃ 비구들이여,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오직 고(苦)와 고멸(苦滅)을 꿰뚫어 알게 한다.」라고 말합니다(MN 22-뱀의 비유 경)/(SN SN 22.86/SN 44.2-아누라다 경).


중생으로의 삶이 ①고(苦-dukkha-괴로움)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온전히 보아서 그 ③고(苦)의 멸(滅) 즉 락(樂-sukha-행복-즐거움)을 실현하게 하는 것이 오직 부처님의 관심입니다. 불교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이 관심이 ②왜 괴로운지, ④어떻게 괴롭지 않을 수 있는지로 확장되면, ②괴로움의 원인인 애(愛-갈애) 또는 괴로움이 생겨나고 자라나는 과정으로의 연기(緣起) 곧 십이연기(十二緣起)와 ④원인을 해소하고 과정을 끊어 고멸(苦滅)을 실현하는 길과 실천으로의 팔정도(八正道)가 제시됩니다.


이렇게 고(苦)와 고멸(苦滅)의 불교(佛敎)는 고(苦)-고집(苦集)-고멸(苦滅)-고멸도 (苦滅道)로 확장되어 사성제(四聖諦)의 진리(眞理)를 선언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시 말합니다. ― 「abhiññeyyaṃ abhiññātaṃ, bhāvetabbañca bhāvitaṃ. pahātabbaṃ pahīnaṃ me, tasmā buddhosmi brāhmaṇa. 나는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알았고, 닦아야 하는 것을 닦았고, 버려야 하는 것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바라문이여, 나는 불(佛-buddha-부처)입니다.(MN 91-브라흐마유 경)/(MN 92/KN 5.33-셀라 경)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고(苦)]을 실답게 알고, 닦아야 하는 것[고멸도(苦滅道)-팔정도(八正道)]을 닦아서, 버려야 하는 것[고집(苦集)-애(愛)]을 버림으로써 고멸(苦滅)을 실현하였기 때문에 부처[buddha-불(佛)]라고 불린다는 것인데, 깨달은 자 즉 불(佛-buddha-부처)의 정의입니다.


이때,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은 오취온(五取蘊)이라고 설명되는데(AN 4.254-실다운 지혜 경), 연기(緣起)를 구성하는 열 번째 지분인 유(有-bhava-존재)입니다. 그렇다면 닦고 버리는 과정을 통해서 실현되는 고멸(苦滅)은 존재의 소멸입니다. 나란 존재에 대해 바르게 알아서 중생으로의 그 존재를 소멸하는 것 즉 해탈(解脫)이 바로 깨달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존재의 구명(究明) 즉 ‘나는 누구인가?’는 불교의 명제(命題)가 아닙니다. 고멸(苦滅)의 실현을 위해 고(苦)의 당사자에 대해 알아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연기(緣起) 즉 괴로움이 생겨나고 자라나는 과정의 설명에서 구명되는 중간의 개념일 뿐입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과정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습니다. 태어나서 늙고 죽는 그리고 죽은 뒤 다시 태어나 이 과정을 반복[윤회(輪廻)]하는 ‘나’의 정체를 밝히는데, 번뇌[루(漏)] 때문에 삶의 과정을 누적하며 변화하는[연기(緣起)] 참되지 않은 존재[무아(無我)]입니다(*). 이렇게 무아(無我)이고 연기(緣起)하는 존재로서 윤회(輪廻)하는 나에게 경험되는 모든 불만족이 고(苦)입니다. 그리고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에 따른 번뇌의 부서짐[누진(漏盡)]에 의해 더 이상 삶의 과정을 누적하지 않게 되어 죽고 태어남의 과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解脫)이고, 불사(不死)의 실현이며, 윤회(輪廻)의 장막을 걷어내고 열반(涅槃)을 실현하는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불교신자(佛敎信者)는 ‘나는 누구인가?’라고 찾아 나서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렇게 찾아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스승이신 부처님이 찾아서 가르쳐준 그대로 배워 안 뒤에 나의 삶에 수반되는 문제 즉 고(苦)의 소멸을 위해 나설 때 그것이 바른 믿음이고 행복을 찾아 나서는 바른 출발입니다. ⇒ 「Ⅱ. 나는 누구인가?」


그렇습니다! 「그대, 괴로울 것인가, 행복할 것인가?」의 문제는 이렇게 불교(佛敎)의 최상위 개념입니다. 이 개념 위에서 부처님은 말합니다. ― 「괴롭니? 행복하자!, 아프니? 아프지 마!」


당신의 제자들에 대한 스승의 사랑 그리고 모든 생명에 대한 부처님의 보편적 사랑은 바로 이런 불교의 최상위 개념에서 선언되는 것입니다. ― 「pubbe cāhaṃ bhikkhave, etarahi ca dukkhañceva paññāpemi, dukkhassa ca nirodhaṃ 비구들이여,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오직 고(苦)와 고멸(苦滅)을 꿰뚫어 알게 한다(MN 22-뱀의 비유 경)/(SN SN 22.86/SN 44.2-아누라다 경)


(*1) 윤회(輪廻)에 대한 불교(佛敎)의 해석 ― 「연기(緣起)된 식(識)[paṭiccasamuppannaṃ viññāṇaṃ]의 윤회(輪廻)」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愛)에 묶인 중생 즉 불완전한 조건 관계로 생겨난 불완전한 존재에게 삶의 과정을 누적하며 변화하는 식(識)[연기(緣起)된 식(識)]이 몸과의 생존 기간의 불균형 때문에 죽고 태어남을 반복하는 현상 → 번뇌의 부서짐[누진(漏盡)]에 의해 무명(無明)을 벗겨내고 애(愛)에서 풀려나 해탈(解脫)할 때까지 지속됨. 


이렇게 불완전한 존재 상태를 중심에 두고, 생겨나는 조건 관계와 뒤따라 수반되는 불만족한 삶을 설명하는 것이 연기(緣起) 즉 십이연기입니다. 근본경전연구회는 「존재[유(有)]를 중심에 둔 십이연기(十二緣起)」와 「삶의 메커니즘 – 십이연기 (十二緣起) 」의 그림으로 나타내었는데, ‘제3장 제2절 [1] 2. 1) 연기(緣起)의 정의 ― (SN 12.1-연기 경)’에 소개하였습니다. → (181~182쪽)


마음이 몸과 함께한 상태로서의 삶을 보는 시각은 세 가지가 있는데, ①몸이 무너져 죽으면 마음도 소멸하고 만다는 단견(斷見)-단멸론(斷滅論)-유물론(唯物論)과 ②상(常)한 성질을 가지는 아(我)인 마음이 몸을 바꿔가며 윤회한다는 상견(常見)-상주론(常住論) 그리고 ③부처님에 의해 설명되는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입니다. 이때,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는 삶의 과정을 누적하며 변화하는 마음의 윤회여서 변화 즉 무아(無我)라는 근본과 중생들의 삶의 현상인 윤회(輪廻)를 같은 맥락에서 잘 설명해줍니다.


mahātaṇhāsaṅkhayasuttaṃ (MN 38-애(愛)의 부서짐의 큰 경)은 사띠 비구의 악하고 치우친 견해를 지적하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삶에 대한 바른 견해를 드러내는 경입니다. 사띠 비구는 ‘그것, 오직 이 식(tadevidaṃ viññāṇaṃ)’이 옮겨가고 윤회한다고 주장하는데, 아(我)의 윤회입니다. 부처님은 두 단계의 문답을 통해 옮겨가고 윤회하는 그것이 ‘연기된 식(paṭiccasamuppannaṃ viññāṇaṃ)’이라고 말하며, 아(我)의 윤회를 주장하는 사띠 비구를 꾸짖습니다. 이렇게 이 경은 윤회의 당사자가 연기(緣起)된 식(識)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줍니다. 연기(緣起) 즉 삶의 과정을 누적하며 변화하는 식(識)이라는 설명을 통해 무아(無我)라는 근본 위에서 진행되는 중생의 삶의 과정으로의 윤회(輪廻)를 꿰뚫어 선언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무아(無我)와 윤회(輪廻)가 상반되는 개념이어서 불교 안에 윤회가 설 자리가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연기된 식의 윤회라는 부처님 가르침은 근본으로의 무아(無我)와 현상으로의 윤회(輪廻)를 같은 맥락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합니다. ― 「무아(無我)와 윤회(輪廻)는 서로 어긋나는 교리가 아님」


또한, 세상에서는 바로 이 경을 근거로 부처님은 식(識)이 윤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주장하는데, 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입니다. 경은 분명히 윤회하는 식이 아(我)가 아니라 연기(緣起)된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에 대한 바른 이해는 중요합니다. 자칫, 불교가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모두 극복하였지만, 윤회의 당사자를 직접 설명하지는 않는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불교 학자가 윤회의 당사자를 설명하지 못하거나, 경에 근거하지 않은 제각각의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은 분명히 단견(斷見)도 상견(常見)도 아닌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답은 배제하고서 답을 찾으려 하는 엉뚱함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고 말해야 할 것인데, 공부의 중심을 경에 두지 않는 풍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 이것이 윤회에 대한 불교의 확정적인 입장입니다!



Ⅱ.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스승이신 부처님이 찾아서 가르쳐준 대답은 무엇입니까? 부처님은 실체[아(我)-attan/atman]라는 시각의 밖에서 실존하는 나를 설명합니다. 무아(無我)이지만 구체적으로 세상을 만나며 살아가고 있는 나의 존재성에 대한 설명입니다. 마음이 몸과 함께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인데, 첫째, 몸이 있는 상태를 말하는 유신(有身-sakkāya)이고, 둘째, 마음[식(識)]이 몸[색(色)]과 함께한 삶의 과정에서 생겨나고 누적되어 나를 구성하는 것들인 수(受)-상(想)-행(行)이 더해진 오온(五蘊)[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에 대한 집착 상태 즉 오취온(五取蘊)이고, 셋째, 지난 삶의 과정이 누적된 것인 오취온(五取蘊)이 작의(作意)와 촉(觸)으로 활성화되어 지금 세상을 만나는 상태를 나타내는 ‘서로 조건 되는 식(識)과 명색(名色)’입니다.


• 나 : 「유신(有身) → [삶의 과정] 오취온(五取蘊) → [활성화] 식(識)-명색(名色)」

 

나는 누구인가 ㅡ 나의 개념의 확장.jpg

 

이때, 몸은 주목해야 합니다. 몸과 함께하는 상태가 중생인 나를 정의하는 근본입니다. 이 몸[색(色)]은 마음[식(識)]과의 생존 기간의 불균형 때문에 때때로 ‘몸이 무너지는 현상’을 초래하는데, 죽음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성취한 아라한조차도 몸이 무너지는 현상을 피할 수 없어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SN 12.19-우현(愚賢) 경)은 특별한 답을 줍니다.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愛)에 묶여서 몸이 일어나는데, 삶의 과정에서 무명이 버려지지 않고 애가 부서지지 않으면 몸이 무너진 뒤 몸으로 가고, 무명이 버려지고 애가 부서지면 몸이 무너진 뒤 몸으로 가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몸이 무너진 뒤 몸으로 가는 상태가 ‘무명에 덮이고 애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이고(SN 15.1-풀과 나무토막 경), 몸으로 가지 않는 상태가 번뇌들로부터 심(心)이 해탈하여 깨달은 아라한이어서 더 이상 몸으로 가지 않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음을 통한 불사(不死)의 실현 즉 윤회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중생의 삶은 몸으로 가는 현상의 반복을 통해 윤회라는 이름으로 지속됩니다. 나는 바로 이런 존재입니다.

Comments

대원행 2023.05.02 10:49
http://www.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3&wr_id=220 참조 (초기불교 독송 및 개론 - (1-2)gāravasuttaṃ (SN 6.2-존중 경)[부처님이 의지하는 것 & 오온과 오법온]
대원행 2023.06.12 15:54
http://www.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3&wr_id=265 참조 (초기불교 백일법문(독송 및 개론) - (4-1)khajjanīyasuttaṃ (SN 22.79-삼켜버림 경)[부처님의 용어 정의 - 오온1)
대원행 2023.10.18 21:30
http://www.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6_02&wr_id=68 참조 (부산불교의사회(231016) 나는 누구인가 - [유신-오취온-식과 명색]
대원행 04.09 21:45
http://www.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07&wr_id=138 참조 (일요 법회(240407) ― [삶 - 부모 책임과 내 책임 & 앙굿따라 니까야와 함께 늙어 가기(나이 들기)]
대원행 04.15 22:21
http://www.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09&wr_id=85 참조 (해피스님과의 대화(서울 240413) ― 세상[중생의 삶의 영역 & 물질세상과 존재성으로의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