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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를 믿는다

나는 불교를 믿는다(230606) - 제2장 부처님[깨달음 8)벽지불-범천의 요청-슬픔을 떠난 분-연꽃](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

나는 불교를 믿는다(230606) - 2장 부처님[깨달음 8)벽지불-범천의 요청-슬픔을 떠난 분-연꽃](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MwnXvwO8qKE

 

(SN 6.1-범천의 요청 경)에서 사함빠띠 범천은 깨달음을 성취한 뒤 여래와 벽지불의 갈림길에 선 부처님에게 중생 곁으로 다가가 법을 설하시도록 기회를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벽지불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깨달았지만 세상을 위해 법을 설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요청을 받은 부처님은 불안(佛眼)으로 중생을 다섯 가지 관점에서 살피는데 윤회에 대한 관점도 포함됩니다. 또한, 연꽃의 비유도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고, 불사(不死)의 문에 들기 위해서는 아()에 대한 믿음을 버릴 것을 지시하며, vihiṃsasaññī[연민의 상()을 일으키지 않았던 나]중생들의 슬픔을 살피려 하기 이전의 나를 의미합니다.

 

8. 중생 곁으로 : 여래와 벽지불의 갈림길 (SN 6.1-범천의 요청 경) 사함빠띠 범천이 부처님에 의해 법이 설해지도록 기회를 만듦

 

1) 벽지불(辟支佛-paccekabuddha)

 

두 가지 부처[buddha-()]가 있는데 여래(如來)-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과 벽지불(辟支佛)입니다(AN 2.53-64-사람 품). 빠알리어로는 paccekabuddha(빳쩨까붇다) 또는 paccekasambuddha(빳쩨까삼붇다)이고, 벽지불(辟支佛) 또는 연각(緣覺)으로 한역(漢譯) 되었습니다. 아라한과 여래-아라한-정등각의 중간의 지위를 가지고 몇몇 경들에 나타나는데, (MN 116-이시길리 경)에는 500명의 벽지불이 소개되기도 합니다.

 

pacceka: separate; each; various; single

paccekabuddha : one who is enlightened but does not preech to the world

 

별개의/독립된 깨달음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운데, 위빳시 부처님으로부터 석가모니 부처님에 이르는 동일한 깨달음에 의해 형성된 계보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계보에 속하는 일곱 부처님은 여래구덕(如來九德)을 갖추었는데, 특히, 선서(善逝)거나 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 또는 천인사(天人師) 등 세상 존재들을 이끄는 스승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은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만약 세존의 심()이 법을 설함이 아니라 주저함으로 기울어 끝내 법을 설하지 않았다면 스승으로의 역할을 갖추지 못해 여래구덕을 갖춘 온전한 여래-아라한-정등각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함빠띠 범천의 요청을 받아들여 법을 설함으로써 여래-아라한-정등각이 되었고, 반대의 경우라면 이 계보를 잇지 못하는 깨달은 자여서 벽지불이 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계보를 잇지 못한 깨달은 자라는 의미를 벽지불로 나타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검토가 필요합니다.

 

또한, 이런 관점에서 사함빠띠 범천이 요청은 불교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사함빠띠 범천의 요청을 받은 부처님은 불안(佛眼)으로 중생을 살피는데 다섯 가지 관점입니다. ― ①더러움이 적은 자-더러움이 많은 자, 기능이 예리한 자-기능이 둔한 자, 기질이 좋은 자-기질이 나쁜 자, 가르치기 쉬운 자-가르치기 어려운 자, 저세상의 결함에 대해 두려움을 보며 지내는 자-저세상의 결함에 대해 두려움을 보지 않고 지내는 자

 

; 앞의 네 가지 관점만큼이나 윤회에 대한 관점도 중요시되는 점을 알 수 있음

 

3) 연꽃의 비유의 두 가지 관점

 

(SN 6.1-범천의 요청 경)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성장하고 물에 잠겨 그 속에서만 자란다.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성장하고 물에 잠겨 물의 바깥 면에 선다.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성장하여 물 위로 올라와 서서 물에 의해 얼룩지지 않는다.

 

(SN 22.94-꽃 경)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물에서 생겼고 물에서 자란 청련(靑蓮)이나 홍련(紅蓮)이나 백련(白蓮)이 물에서 벗어나서 물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고 서 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태어났고 세상에서 자란 여래는 세상을 이긴 뒤 세상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고 머문다.

 

연꽃에 관련하여 법구경 4. 꽃 품, 게송(58-59)’에서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2_04&wr_id=9

 

4) (-attan/atman)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무아(無我-anattan/anatman)의 진리를 만날 때 불사(不死)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음 ― 「불사(不死)의 문은 열렸다. 귀를 가진 자들은 믿음을 버려라.

 

5) 교재에서는 vihiṃsasaññī연민하지 않는 상()을 가졌던 나라고 번역하였는데, 독송집에서는 연민의 상()을 일으키지 않았던 나라고 수정하였습니다. ‘슬픔을 떠난 사람은 슬픈 사람을 살핀다의 관점에서 슬픔을 살피려 하기 이전의 나를 의미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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