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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iN] 대승불교에서는 왜 신성의 실재인 내면적 본질을 대자비라고 하였나요?

[질문] 대승불교에서는 왜 신성의 실재인 내면적 본질을 대자비라고 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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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던가요? 저도 출가 전 오랜 시간을 대승불교의 신자로 살았었지만 그렇게 듣지 못한 것 같아서요.

 

기본적으로 불교는 무아(無我)를 바탕에 두기 때문에 신성의 실재인 내면적 본질이란 개념은 배제된다고 해야 합니다. 대승불교의 신자로 살았던 그 시절에도 저는 한 번도 들어본 기억이 없어서 이렇게 여쭤봅니다.

 

또한, 대자비(大慈悲)자비희사(慈悲喜捨) 사무량심(四無量心)의 앞의 두 가지입니다. 사무량심은 불교 교리의 입장에서는 깨달음의 방법은 아닙니다. 부처님이 아직 깨닫지 못했던 전생에 제자들을 범천의 세상 즉 높은 하늘로 이끌던 수행방법입니다. (DN 19-마하고윈다 경) 등 부처님의 전생을 설명하는 4부 니까야의 경들은 사무량심을 가르치던 전생 이야기의 말미에 지금은 열반으로 직접 이끄는 팔정도(八正道)를 설한다.’라고 하는데, 이것이 깨달음의 길이고 실천입니다. 물론, 사무량심, 특히, 자비는 팔정도에 포함되는 과정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요구하는 답변을 드리지 못해 미안한 마음입니다마는 질문의 타당성 측면에서 다시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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