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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iN] 불교 생사관 ㅡ 불교에서 생사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는것이 맞나요??

[질문] 불교 생사관 ㅡ 불교에서 생사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는것이 맞나요??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0407&docId=362110193&page=1#answer2

 

 

(SN 12.19-우현(愚賢) )은 이 질문에 답을 줍니다. 비구들이여,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인 어리석은 자에게 이 몸이 일어난다. 그 어리석은 자에게 무명은 버려지지 않고 갈애는 부서지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어리석은 자는 괴로움의 부서짐을 위해 바르게 범행을 닦지 않는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몸이 무너진 뒤 몸을 받게 된다[몸으로 가게 된다]. 몸을 받아 있은 그는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인 현명한 자에게 이 몸이 일어난다. 그 현명한 자에게 무명은 버려지고 갈애는 부서진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현명한 자는 괴로움의 부서짐을 위해 바르게 범행을 닦는다. 그래서 현명한 자는 몸이 무너진 뒤 몸을 받지 않게 된다[몸으로 가지 않게 된다]. 몸을 받지 않은 그는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에서 벗어나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범행의 실천, 어리석은 자에 비해 현명한 자에게 이것이 차이이고, 이것이 특별함이고, 이것이 다름이다.

 

몸이 무너진 뒤 몸으로 가는 것은 태어남이고, 태어나면 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명이 버려지지 않고 갈애가 부서지지 않은 어리석은 자의 죽음 이후를 설명하는 것인데, 생사(生死)의 반복 즉 윤회(輪迴)입니다. 그러나 무명이 버려지고 갈애가 부서지면 몸으로 가지 않는데, 이것이 깨달음이고, 해탈이며, 불사(不死)의 실현입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생사(生死)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야 합니다. 무명과 갈애라는 문제 요소들 때문에 생겨나는 부자연스러운 현상이어서 괴로움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명과 갈애의 문제를 해소함으로써 생사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움이어서 괴로움을 수반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불교에서 생사(生死)의 반복 즉 윤회는 벗어나야 하는 부자연스러움입니다. 그래서 생사에서의 벗어남 즉 불사(不死)의 실현을 위해 불교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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