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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iN] 내가 살고 있는 이유 ㅡ 「내가 죽으면 이 세상에서 존재가 아예 사라지는 것일까?」

[질문] 내가 살고 있는 이유 ㅡ 내가 죽으면 이 세상에서 존재가 아예 사라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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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이 세상에서 존재가 아예 사라지는 것일까?”의 질문에 답을 찾으면 그 두려움은 해소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죽은 뒤에 나는 어떻게 될까?”에 대한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몸과 마음이 함께하여 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인 몸이 무너지면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마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가 이 질문의 요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주제에는 세 가지 관점이 있는데, 몸이 죽으면 마음도 소멸하고 없다는 주장[단견(斷見)-단멸론(斷滅論)], 몸이 죽어도 실체인 마음[()-attan/atman]은 소멸하지 않고 새로운 몸을 만나 다음 생을 산다는 주장[상견(常見)-상주론(常住論)], 몸이 죽어도 삶의 과정을 누적하며 변화하는 마음은 변화의 연장선 위에서 새로운 몸을 만나 다음 생을 산다는 주장[연기(緣起)]입니다.

 

이때, 단견(斷見)-단멸론(斷滅論)은 현대 과학을 중심으로 하는 유물론(唯物論)에 해당하고, 상견(常見)-상주론(常住論)힌두교의 교리이며, 연기(緣起)[연기(緣起)된 식()의 윤회(輪迴)]불교의 교리입니다.

 

내 의식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셨는데, 삶에 대한 완전한 해석을 제시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죽는다고 해도 의식 즉 마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새로운 몸을 만나 나란 존재에 대한동질성의 유지 위에서 달라진 존재 상태로 다음 생을 살게 됩니다[연기(緣起)된 식()의 윤회(輪迴)].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한 단계 높은 걱정에 대해서 주목해야 합니다. 마음이 몸과 함께하는 삶을 중생이라고 부르는데, 중생에게는 몸이 가지는 물질적 한계 때문에 죽어야만 하는 최종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마음이 몸에 제약되지 않는 상태를 실현하는 것을깨달음이라고 하고, 이런 상태에서는 죽은 뒤에 몸을 만나지 않게 되어 중생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고, 그때 비로소 죽음의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불사(不死)]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불사(不死)의 실현, 이것이 불교라는 종교의 완성입니다. 그러니 죽으면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몸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죽음의 문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해탈(解脫)]?’라는 한 단계 높은 걱정에 대해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질문자님의 추가 질문] 저 기독굔데요.. 죄송한데 불교는 거짓이에요! 제가 종교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불교는 사이비 같은것이기에 빨리 빠져나오길 기원합니다. 우주는 넓디 넓은데 그런거를 관련한 불교서적은 없고 또 불교는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거잖아요. 그냥 죽음이 두려워서 뭔가 기댈 기둥 때문에 만들어진 종교가 불교에요 빨리 빠져나오시기를 기원합니다!! 파이팅

 

 

[추가 답변]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단편적이지 않아서요. 우주도, 사람 생각도 불교에서 설명하는 것은 질문자님의 앎과 다를 수 있답니다. 믿음을 가진 분이시라니 잘 아실 거예요. 삶이 얼마나 진지와 숙련을 필요로 하는지요. 저는 이런 정리를 해보았답니다.

 

여래들의 출현이나 출현하지 않음을 원인으로 움직이지 않는 원리이고, 법으로 확립된 사실이고, 법으로 제한된 것이라고 선언된 가르침이 있습니다. 여래의 출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원리/이치가 있는데, 여래의 출현 이전에도 존재하였지만 알려지지 않았고, 여래의 출현을 통해 비로소 그 존재가 알려졌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교주(敎主)와 교주 이전의 것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교의 교주가 예수라면, 예수 이전의 것은 유일신이고 창조주인 여호와이고, 이슬람교의 교주가 무함마드라면, 무함마드 이전의 것은 유일신이고 창조주인 알라입니다. 마찬가지로 불교의 교주가 부처라면, 부처 이전의 것이 있는데, 원리이고, 법으로 확립된 사실이고, 법으로 제한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이슬람에서 정의하는 알라의 속성은 독존성(獨存性), 무한성(無限性), 창조성(創造性), 자비성(慈悲性)인데, 기독교에서 정의하는 여호와의 속성과도 부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알라 또는 여호와의 이런 속성은 인격화(人格化)된 신()에게 부여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부처 이전의 것은 인격화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구성과 전개의 원리/이치이고, 이런 원리/이치가 작용하는 세상에서 중생들이 살아가는 것일 뿐, 부처는 원리/이치의 인격화를 시도하지 않습니다.

 

무함마드와 예수가 계시(啓示)에 의해 알라 또는 여호와에 부합한 삶을 이끌었다면[알라 또는 여호와 ㅡ (계시) 무함마드 또는 예수], 부처는 원리/이치를 깨달아 사실에 부합한 삶을 이끈다고 할 것입니다[부처 ㅡ (깨달음) 원리/이치].

 

예수와 무함마드에게서의 사실 ㅡ 유일신인 창조주

부처에게서의 사실 ㅡ 원리/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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