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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iN] 업의 윤회(?) ㅡ 윤회의 주체는 무엇인가?

[질문] 업의 윤회(?) ㅡ 윤회의 주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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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하는 주제입니다. 부처님은 연기(緣起) 곧 십이연기(十二緣起)로써 이 주제를 설명합니다. ()은 행위입니다. 그리고 행위 자체가 윤회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시각과 다릅니다.

 

()은 삶에 대한 이런 측면에서는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오는데, ()의 잠재와 식()의 머묾입니다. 그리고 식()은 이렇게 머문 식()이 이전의 삶의 과정의 누적인 식온(識蘊)에 더해지는 방법으로 늘어납니다. 경은 식()이 머물고 늘어나면 명색(名色)이 참여한다고 하여 행위의 결과로 [()-명색(名色)]의 새로운 존재가 구성되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때, 명색(名色)은 색() 즉 물질에 묶인 것이어서 인간에게는 백 년 안팎의 기간 동안 유지됩니다. 반면에 누적된 식()[식온(識蘊)]이 몸과 함께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식()은 행위를 통해 다시 머물고 늘어나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무명(無明)과 애()[갈애]의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 중생의 영역에서 지속됩니다.

 

윤회(輪迴)는 식()과 명색(名色)의 이런 관계에서 설명됩니다. 명색(名色)은 색() 즉 몸에 묶인 것인데 백 년 안팎을 살고, () 즉 마음은 무명(無明)과 애()의 문제의 해소 즉 팔정도 수행에 의한 깨달음의 시점까지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은 생존 기간의 불균형이라는 특성 위에서 함께하여 나를 구성하기 때문에 몸의 생존 기간 이후에 새로운 몸을 만나야 하는 마음의 입장윤회(輪迴)라고 설명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업()이 윤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 의해 머물고 늘어나는 식()이 윤회하는 것인데, 경은 이것을 연기(緣起)된 식()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다른 방법으로 나타내면 중생의 윤회입니다. 특히, (SN 15-시작이 알려지지 않는 것 상윳따)의 경들 등은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들(avijjānīvaraṇānaṃ sattānaṃ taṇhāsaṃyojanānaṃ sandhāvataṃ saṃsarataṃ)이라고 말하는데, 몸과 마음 즉 식()과 명색(名色)의 서로 조건 되는 관계 때문에 한 순간도 마음은 몸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을 분명히 해줍니다.

 

이렇게 윤회는 무명(無明)과 갈애의 영역에 있는 존재 즉 중생의 삶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중생이 옮겨가고 윤회하는 것이고, 생존 기간의 불균형 때문에 옮겨가서 삶을 이어가는 주체는 식()입니다. 다만, ()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업()에 의해 머물고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연기(緣起)된 식()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 때문에 무아(無我)[연기(緣起)된 식()]와 윤회(輪迴)는 상충됨 없이 중생의 삶을 설명하는 것이고, ()의 윤회를 말하는 힌두교 등과 차별되는 것입니다.

 

한편, 사람들은 (MN 38-갈애 부서짐의 큰 경)[부처님과 사띠 비구의 대화]를 오해하여 식()이 윤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경에서 부처님과 사띠 비구 간의 대화는 두 번의 문답으로 나타납니다. ()이 윤회하는가의 문답에 이어 그 식은 어떤 식()인가의 문답입니다. 사띠 비구는 식()이 윤회하는데, 그 식()이 아()[attan]이라고 대답하여 부처님의 꾸짖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경에서 부처님은 윤회하는 그식()이 연기(緣起)된 식()[paṭiccasamuppannaṃ viññāṇaṃ]이라고 직접 밝혀줍니다. 그래서 식()이 윤회하는데, 그 식()이 아()가 아니라 연기(緣起)된 식()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곁에 앉은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ㅡ “사띠여, 그대에게 「‘그것, 오직 이 식(識)이 옮겨가고 윤회한다.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나는 세존으로부터 설해진 가르침을 안다.」라는 이런 악하고 치우친 견해가 생긴 것이 사실인가?” 


“대덕이시여, ‘그것, 오직 이 식(識)이 옮겨가고 윤회한다.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세존으로부터 설해진 가르침을 이렇게 저는 확실히 압니다.” 


“사띠여, 그 식은 어떤 것인가?” 


“대덕이시여, 말하고 경험되어야 하는 이것이 여기저기서 선하고 악한 업(業)들의 보(報)를 경험합니다.”


“어리석은 자여, 참으로 그대는 누구에게서 나에 의해 설해진 이런 가르침을 알았는가? 어리석은 자여, 나에 의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연기(緣起)된 식(識)이 말해지지 않았는가, ‘조건으로부터 다른 곳에 식(識)의 생김은 없다[연기(緣起) 즉 조건에 의해 생겨나는 방식과 다른 방식에 의해서는 식(識)이 생기지 않는다.].’라고? 그러나 어리석은 자여, 그대는 스스로의 잘못된 이해로 우리를 비방하고 자신을 파괴하고 많은 악덕(惡德)을 쌓는다. 어리석은 자여, 그것 때문에 그대에게 오랜 세월 불이익과 괴로움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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