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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상담

[지식iN] 신, 영혼, 죄, 그리고 삶에 대해서 답변 ㅡ 중학생

[질문] , 영혼, , 그리고 삶에 대해서 답변 ㅡ 중학생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1&docId=363716350&page=1#answer2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으신 것 같네요. 그보다는 삶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 나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깨달아 아시는 분 즉 부처님의 설명을 들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삶에 대해 스스로 명확해지면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에 휩쓸려 고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삶에 대한 이런 명확함을 바른 견해[정견(正見)]라고 하는데, 여러 측면의 바른 견해 가운데 가장 원초적 바른 견해는 「①저세상은 있다, ②화생(化生)하는 중생은 있다, ③업(業)에는 과(果)와 보(報)가 따른다.」라고 제시됩니다. 마침 저의 책 「불교입문(佛敎入門)(Ⅰ) 소유하고자 하는 자를 위한 가르침」에서 이 내용을 서술하였는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제2부 행위[업(業)]의 개괄 Ⅳ. 가장 원초적인 바른 견해 ㅡ (DN 23-빠야시 경)


불교신자에게는 이런 토대 위에서의 삶이 바른 신행(信行)입니다. 토대를 벗어나 잘못 설해진 법 위에서 살아가면 그것은 바르지 못한 신행(信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괴로울 것인지 행복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근본 사유가 되는 것입니다[고(苦)와 고멸(苦滅)].


그러면 이런 토대 위에서의 삶 즉 바른 신행(信行)은 어떻게 시작됩니까?


나와 세상을 보는 시각 즉 견해의 구축입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그리고 내 삶의 터전인 세상에 대한 바른 앎을 바른 견해[정견(正見)]라고 하는데, 향상으로 이끌리는 삶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경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바른 견해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원초적 형태의 바른 견해를 설명하는 경으로는 (DN 23-빠야시 경)을 말할 수 있는데, 「①저세상은 있다, ②화생(化生)하는 중생은 있다, ③업(業)에는 과(果)와 보(報)가 따른다.」라는 세 가지입니다. ㅡ 「itipi atthi paro loko, atthi sattā opapātikā, 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 이렇게도 저세상은 있다. 화생하는 중생은 있다. 선악(善惡)으로 지어진 업(業)들의 과(果)와 보(報)는 있다.」


1. 저세상은 있다(atthi paro loko) → 윤회(輪迴)


나는 몸과 마음이 함께하여 구성됩니다. 그런데 몸은 100년 안팎을 삽니다. 그러면 몸의 무너짐 즉 죽으면 마음은 어떻게 됩니까? 몸과 함께 버려지고 마는 것입니까, 아니면 새로운 몸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까?


몸으로의 삶은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사건들의 전개 즉 이 세상 있음은 의심할 바 없이 직접 압니다. 그러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쨌든 생겨나는 것[무상(無常)-무아(無我)]이고 몸과 함께 유지되는 것일 텐데, 몸이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지 직접 보아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삶에서 마음은 몸보다 훨씬 더 중심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삶에 대해 바르게 알고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죽음 이후에 마음은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온전한 답을 줄 수 있는 스승이 필요합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했기 때문에 삶에 대해 바르게 아는 스승인 부처님은 이 질문에 답을 줍니다. ㅡ ‘저세상은 있다.’라고.


마음은 몸이 무너진 뒤, 몸 따라 버려지지 않고 새로운 몸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새로운 몸과 함께 새로운 내가 되어 살아가는 세상 즉 저세상은 있다고 단언적인 답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세 가지 경우의 답이 있습니다. 


첫째, 마음은 몸에 종속된 것이어서, 몸이 무너지면 마음도 몸과 함께 버려진다는 답인데, 단견(斷見) 또는 단멸론(斷滅論)입니다. 


둘째, 마음은 독립된 것이어서, 몸이 무너져도 함께 버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상태를 유지하는 참된 것 즉 아(我-attan/atman)라는 답인데, 상견(常見) 또는 상주론(常住論)입니다.


셋째, 마음은 몸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서 몸이 죽어도 버려지지 않으며, 자기 상태를 유지하는 참된 것도 아니어서 삶의 과정을 누적하며 매 순간 변화하는 것이고, 또한, 몸과 서로 조건 되는 것이어서 새로운 몸을 만나야 한다는 답인데, 연기(緣起)입니다. → 「연기(緣起)된 식(識)」


이 질문에 대한 ‘저세상은 있다.’라는 부처님의 단언적인 답변은 세 번째 경우 즉 연기(緣起)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마음이 몸과 함께 삶의 과정을 누적하고, 매 순간 변화하며 괴로운 삶을 살게 되는지의 설명이 십이연기(十二緣起)인데, 부처님 깨달음의 중심입니다. 


2. 화생(化生)하는 중생은 있다(atthi sattā opapātikā) → 오도윤회(五道輪廻)


저세상이 있다는 것은 몸의 죽음 이후에 마음은, 삶의 과정을 누적하는 변화의 연장선 위에서, 새로운 몸과 함께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다시 태어나는 곳은 어떤 세상입니까? 사람 몸을 가지고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세상도 있는 것입니까?


(MN 12-사자후의 큰 경)에서 부처님은 중생들이 윤회하는 세상을 다섯 갈래로 설명하는데 지옥(地獄), 축생(畜生), 아귀(餓鬼), 인간(人間), 천상(天上)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다섯 갈래로 구분되기 때문에 죽은 뒤 다시 태어나는 자리도 이 다섯 갈래 가운데 한 곳입니다.


또한, 같은 경은 네 가지 태어남 즉 존재의 영역을 설명하는데 난생(卵生), 태생(胎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입니다. 이때, 생명체가 그 껍질을 깨고 태어나면 난생이고, 생명체가 태의 막을 벗고 태어나면 태생, 생명체가 썩은 물고기, 부패한 시체, 부패한 굳은 우유에서나 물웅덩이나 연못에서 태어나면 습생, 천인(天人)들이나 지옥에 태어난 자들이나 어떤 인간들이나 죽은 뒤에 벌을 받아야 하는 어떤 존재들이 화생이라고 정의됩니다.


그런데 난생(卵生), 태생(胎生), 습생(濕生)은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는 존재의 영역이어서 세상의 다섯 갈래 중 인간과 축생에 해당됩니다. 반면에 화생(化生)은 일반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영역입니다. 세상의 다섯 갈래 가운데 지옥과 아귀와 천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은 잘 압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만 믿으라고 권장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태어남 즉 존재의 영역은 지금 내 삶의 터전이고 죽음 이후에 다시 태어나 살아가야 하는 그 자리이기 때문에 정말 없는 것인지 아니면 보는 능력의 부족 때문에 보지 못하지만, 사실은 있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이 질문에도 답을 줍니다. ㅡ ‘화생(化生)하는 중생은 있다.’라고.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깨달음 즉 완성된 지혜의 눈에는 보이는 존재의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주제는 중요합니다. 비록 인간으로 태어나 살고 있지만 죽음 이후를 담보할 수 없는 현실 위에서 지금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없다고 결정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에게서 완성된 지혜의 눈을 빌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인데, 부처님은 화생(化生)하는 중생의 존재를 이렇게 단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ㅡ ‘내가 죽은 뒤 다시 태어나는 자리는 눈에 보이는 존재 영역인 난생-태생-습생의 인간과 축생 그리고 보이지 않는 존재 영역인 화생의 지옥-아귀-천상의 다섯 갈래가 있다. 나는 이 몸으로의 삶을 마친 뒤에는 다섯 갈래 중 어느 한 자리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3. 업(業)에는 과(果)와 보(報)가 따른다(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 → 태어남의 선택


이렇게 저세상이 있어서 윤회(輪廻)하고, 다시 태어나는 자리는 지옥(地獄)-축생(畜生)-아귀(餓鬼)-인간(人間)-천상(天上)의 다섯 갈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죽은 뒤 어디에 태어나야 할 것입니까?


당연히 지옥-축생-아귀의 세상에는 태어나면 안 됩니다. 되도록 하늘에 태어나야 하고, 부족하더라도 인간으로는 태어나야 합니다. 스스로 괴로운 삶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그래서 이 주제는 어떻게 하면 윤회(輪廻)의 과정에서 하늘에 태어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 것인지로 귀결됩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이 질문에도 답을 줍니다. ㅡ ‘업(業)에는 과(果)와 보(報)가 따른다.’라고.


업(業) 즉 행위는 과(果) 즉 결실과 보(報) 즉 실제적 경험을 초래한다는 사실의 선언입니다. 이런 행위에는 이런 과(果)와 보(報)가 따라오고, 저런 행위에는 저런 과(果)와 보(報)가 따라온다는 법칙의 제시입니다. → 「행위가 가지는 과(果)와 보(報)의 법칙성」 → 「업인과보 삼세윤회(業因果報三世輪迴)」


경은 많은 곳에서 고(苦)의 과(果)-보(報)를 초래하는 업(業)과 락(樂)의 과(果)-보(報)를 초래하는 업(業)을 설명하는데, 살아서의 행복과 죽은 뒤에 더 좋은 삶을 이어지게 하는 방법의 제시입니다.


다시 말하면, 살아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락(樂)의 과(果)-보(報)를 초래하는 업(業)을 지으면 되고, 죽어서 더 좋은 삶을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도 락(樂)의 과(果)-보(報)를 초래하는 업(業)을 지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업(業)이 고(苦)의 과(果)-보(報)를 초래하는 것인지 락(樂)의 과(果)-보(報)를 초래하는 것인지는, 부처님에 의하면,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법칙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①저세상은 있다, ②화생(化生)하는 중생은 있다, ③업(業)에는 과(果)와 보(報)가 따른다.」라는 세 가지는 우리 삶의 현실 위에서 ①윤회(輪迴)와 ②윤회하는 세상의 구성과 ③금생(今生)과 내생(來生)에 걸친 행복의 방법에 대한 시각을 제시해 줍니다. 즉 바른 견해입니다.


(MN 12-사자후의 큰 경)이 설명하는 오도윤회(五道輪廻)는 저세상의 존재 위에서 화생(化生)하는 중생을 포함한 업(業)의 과(果)와 보(報)를 상세히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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