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불성 = 성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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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적는 사이에 마감되어 올리지 못한 글입니다.]
부처님은 선(善-kusala)을 구하여 출가하였습니다(DN 16-대반열반경). 그리고 부처가 되었다는 것은 바로 그 선(善)을 실현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선(善-kusala)과 불선(不善-akusala)을 구분하는 근본에는 망(望)[탐(貪)]-진(嗔)-치(癡)(*)가 있는데, 망(望)[탐(貪)]-진(嗔)-치(癡)는 불선(不善-akusala)이고, 무망(無望)[무탐(無貪)]-무진(無嗔)-무치(無癡)는 선(善-kusala)입니다.(AN 3.66-께사무띠 경)[깔라마 경] 등.
(*)중국에서는 lobha와 rāga의 두 단어를 모두 탐(貪)이라고 번역하였는데, 근본경전연구회에서는 lobha는 망(望)으로, rāga는 탐(貪)으로 구분하여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의 경들에서는 lobha 즉 망(望)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진(嗔)은 dosa, 치(癡)는 moha의 번역어로 양쪽 모두에서 동일하게 짝을 이루어 쓰입니다.
이때, 치(癡)는 무명(無明-avijjā)과 번뇌[루(漏-āsava)]를 하나의 개념으로 나타내는 말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무명(無明)과 번뇌[루(漏)]는 탐(貪)-진(嗔)에 선행(先行)하여 삶의 문제의 근본에 있는 것인데, 서로 조건 됩니다(MN 9-정견(正見) 경). 즉 각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반드시 함께 존재하기[무명이 있으면 번뇌의 상태이고, 번뇌가 있으면 무명의 상태] 때문에 하나의 개념으로 말해지는데, 치(癡)인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완성은 ‘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겨남[치(癡) → 무치(無癡)]’이라고 설명되는데, 누진(漏盡) 또는 소멸(消滅)의 의미입니다.
이렇게 깨달음은 번뇌[루(漏)]의 부서짐에 의해 성취되는데, 번뇌는 욕루(慾漏)[소유의 번뇌]-유루(有漏)[존재의 번뇌]-무명루(無明漏)[무명의 번뇌]로 구성됩니다. 이때, 무명(無明)의 번뇌는 무명(無明) 즉 고(苦)-고집(苦集)-고멸(苦滅)-고멸도(苦滅道)의 사성제(四聖諦)를 모르는 번뇌인데, 달리 말하면, 삼법인(三法印)에 대한 무지(無知) 즉 존재를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라고 알고 보지 못하는 경향입니다.
이런 이해 위에서 질문자의 질문은 답해져야 합니다. 질문자는 ‘불성은 특징이 없어서 선이라 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보다는 불성(佛性)이란 개념 자체에 대해 짚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불성이 무아(無我)인 어떤 개념이라면 진여 불성에 대한 구체적 의미를 밝혀서 그것이 부처님께서 구하고자 하신 그것에 부합하는지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선(善-kusala)이라 말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선(善)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불성(佛性)이 진여(眞如)와 동치 되어 말해지는 어떤 것이고 무아(無我)가 아닌 아(我)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무명루(無明漏) 즉 존재를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라고 실답게 알고 보지 못하고, 상(常)-락(樂)-아(我)인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향으로의 힌두적 접근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불성은 특징이 없어서 선이라 할 수 없다.’가 아니라 ‘불성은 존재에 대한 오해여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선(善)-불선(不善)으로 구분할 수 없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진여불성으로의 성선설’이라는 접근은 불교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이해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