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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iN] 열반적정 보다 더 높은 게 있으면 알려주세요.

[질문] 열반적정 보다 더 높은 게 있으면 알려주세요.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3&docId=364127419&page=1#answer3

 

 

열반(涅槃)에 대한 이해의 한 측면일 것인데, 열반보다 더 높은 것은 없습니다. 열반은 번뇌에 조건지어진 상태 즉 행()들의 특성인 무상(無常)-()-무아(無我)무상(無常)의 가라앉음에 의해 락()-무아(無我)로 전환된 상태입니다[적멸위락(寂滅爲樂)].

 

부처님 가르침에 의하면, 이런 열반이 의지하는 상태 즉 더 높은 것은 없습니다. 열반은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SN 48.42-운나바 바라문 경)에서 부처님은 오근(五根) () 사띠 해탈(解脫) 열반(涅槃)의 의지 관계에 이어 열반은 무엇을 의지하는지묻는 운나바 바라문에게 이렇게 답합니다. 바라문이여, 질문을 넘어섰습니다. 질문의 끝을 잡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열반에 닿는 범행(梵行)은 열반을 구원으로 하고 열반을 완성으로 살아지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삶에 수반되는 고()와 고멸(苦滅)을 주제로 합니다. 그래서 ()의 완전한 소멸(消滅) 즉 완전한 행복인 열반(涅槃)의 실현은 완성이고 목적점입니다. 모든 고()의 바탕에 자리한 죽음의 문제를 넘어섬 즉 불사(不死)이고, 윤회(輪迴)에서의 벗어남입니다. 그래서 열반을 실현하는 것이 삶의 향상의 끝인 것입니다. 이렇게 목점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자칫, 목적점 이후에 어떤 가상의 것을 설정하여 존재하지 않는 곳, 갈 수 없는 곳을 지향하는 헛된 노력을 할 수있기 때문입니다.

 

(SN 23.1-마라 경)도 같은 주제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대덕이시여, 바르게 보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라다여, 바르게 보는 것은 염오(厭惡)를 위한 것이다.” “그러면 대덕이시여, 염오는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라다여, 염오는 이탐(離貪)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 대덕이시여, 이탐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라다여, 이탐은 해탈(解脫)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 대덕이시여, 해탈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라다여, 해탈은 열반(涅槃)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 대덕이시여, 열반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라다여, 질문을 넘어서 버렸다. 질문의 끝을 잡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라다여, 열반에 닿는 범행(梵行)은 열반을 구원으로 하고 열반을 완성으로 살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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