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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iN] 불교의 윤회사상 ㅡ 윤회에서 벗어나면 무로 돌아가는 건가요?

[질문] 불교의 윤회사상 ㅡ 불교의 윤회는 전생의 업에 따라 생사의 세계가 반복된다는 걸로 배웠는데 그럼 윤회에서 벗어나면 무로 돌아가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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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존재하는 것[()]은 모두 무아(無我)라고 정의됩니다. 무아(無我)()가 아니다또는 ()인 것은 없다를 의미합니다.

 

()는 산스끄리뜨어 아뜨만(atman) 또는 빠알리어 앗딴(attan)의 한역(漢譯)인데, 아트만-브라만에 대한 지식을 논한 힌두 문헌인 우파니샤드에 의하면, 상주적 유()[상견(常見)]여서 만물의 궁극적 근원이고 영원한 실체입니다. 유일[ekaṃ]-최초[purānaṃ]-상주[ajaṃ amṛtaṃ=불생불멸(不生不滅)]인 유()[sat]라고 설명되는데, (-sat)는 몸이 없는 것(anatmya)이고, 자아 속에 있는 만물, 만물 속에 있는 자아로서 가장 큰 것보다 크고 가장 작은 것보다 작으며, 심장 속에 머문다고 합니다. 또한, 아뜨만-브라흐만의 3대 특징으로 ()[sat] - 형이상학적 본질 생겨나지 않음[aja],()[cit] - 인식론적 본질, ()[ānanda] - 윤리학적 본질을 들고 있습니다. <김정근 박사님의 학위 논문[2010년 동국대학교]에서 발췌>

 

그래서 무아(無我)는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이런 ‘아(我)가 아니다’ 또는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아(我)인 것은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아(無我)인 존재하는 것들은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번뇌의 영향을 받는 것[유위(有爲) : 탐(貪)-진(嗔)-치(癡)]인 행(行)들과 번뇌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무위(無爲) : 무탐(無貪)-무진(無嗔)-무치(無癡)]인 열반(涅槃)입니다.


행(行)들은 무아(無我)의 특성 위에서 다시 무상(無常)과 고(苦)의 특성을 가지는데, 조건들이 결합해서 결과를 만들고, 조건들이 해소되면 결과로서의 존재 상태를 잃는 무상(無常)과 무상(無常)의 성질에 따르는 불만족인 고(苦)입니다. 이런 고(苦)의 가장 근원에는 죽음[사(死)]과 태어남[생(生)]이 있습니다. 나는 조건[몸과 마음]이 함께하여 구성됩니다. 몸은 백 년 안팎을 살고, 마음은 번뇌의 영향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삶의 과정을 누적하여 변화하는 가운데[연기(緣起)], 죽지 못하고 오래 살아가야 합니다. 몸과 마음의 이런 생존 기간의 불균형에 따르는 존재 상태의 변화가 죽음[사(死)]이고, 몸과 마음의 서로 조건 됨의 특성에 의해 마음이 새로운 몸을 만나는 것이 태어남[생(生)]입니다. 그리고 태어난 자는 물질인 몸의 특성상 죽지 않을 수 없는데, 번뇌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는 다시 몸으로 가고[생(生)], 번뇌의 영향에서 벗어난 자는 몸으로 가지 않습니다[해탈(解脫)-열반(涅槃)의 실현-윤회(輪迴)에서 벗어남]. 이때, 열반(涅槃)은 무상(無常)의 가라앉음에 따르는 고(苦)의 멸(滅) 즉 락(樂)이지만, 역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아(無我)입니다.


어렵지만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이렇게 삶에 대한 이해 위에서 설명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윤회에서 벗어난 뒤에는 어떻게 될까요?


경은 윤회에서 벗어난 분인 부처님의 사후를 질문하는데, 이 주제와 같은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부처님의 죽음 이후에 대해서 경들은 「①‘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②‘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③‘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④‘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도 결정되지 않는다.」라고 답합니다.


번뇌의 영향 위에 있는 중생들은 무명(無明)과 갈애[애(愛)] 때문에 인식의 한계를 가지는데, 이런 네 가지 경우로 설명되는 한계입니다. 그에 비해, 번뇌가 완전히 부서져서 윤회에서 벗어난 상태는 이 네 가지 경우 아닌 다른 어떤 상태라는 설명인데, 무명(無明)과 애(愛)의 영향으로 중생에게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윤회에서 벗어난 상태를 ‘이렇다’라고 인간들의 언어로 표현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이 네 가지 경우가 아닌 상태이고, 무명(無明)과 애(愛)의 영향에서 벗어난 아라한에게 직접 경험되는 상태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질문하신 ‘윤회에서 벗어나면 무로 돌아가는 건가요?’의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요’라고 답해야 합니다. 무(無)도 유(有)도 아니고 내지 네 가지 경우 모두 아닌 상태가 윤회에서 벗어난 열반이고,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 상태는 일체의 괴로움이 소멸한 완전한 행복의 상태라는 것이 부처님의 설명입니다. 


이 상태의 확인이 필요하시다면, 방법은 있습니다. 부처님에게서 열반을 실현하는 방법을 배워서 직접 실현하면, 그때 몸으로 가지 않은 그 상태가 직접 경험되는 방법입니다. 팔정도(八正道)이고, 수행(修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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