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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iN] 누진통을 얻었는데도 계속 도를 닦으면 어떻게 됩니까?

[질문] 누진통을 얻었는데도 계속 도를 닦으면 어떻게 됩니까?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3&docId=360966717&page=1#answer5

 

 

누진(漏盡)은 번뇌가 다했다는 의미입니다. 오직 불교에만 있는 깨달음의 경지인데, 육신통(六神通)으로 분류할 때는 누진통(漏盡通), 삼명(三明)으로 분류할 때는 누진명(漏盡明)으로 표현합니다. 경은 몇 가지 형태로 누진 즉 번뇌 다한 상태를 서술하는데,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리고 지혜로써 보아 번뇌가 다한다.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해야 할 바를 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최고의 선()을 성취했고 존재의 족쇄를 완전히 부수었으며 바른 무위의 앎으로 해탈한 아라한

 

등입니다. 이 네 가지 서술은 구차제정(九次第定)의 끝인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물 때 번뇌가 완전히 부서지고, 그래서 심해탈(心解脫)-혜해탈(慧解脫)을 성취하면, 다시 태어나지 않음 즉 윤회에서 벗어났음을 스스로 분명히 알게 되는데, 이런 사람이 아라한(阿羅漢)이라는 의미로 연결됩니다.

 

도를 닦는다.’라는 말이 중국에서 좀 더 확장된 의미로 쓰이는 것 같기는 합니다마는 불교에서 도를 닦음즉 수행(修行)은 번뇌를 부수고 해탈하여 아라한이 되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열반(涅槃)의 실현이고 윤회에서 벗어남입니다. 열반 이후의 어떤 상태를 설정하여 말할 수도 있겠지만, (SN 48.42-운나바 바라문 경)에 의하면, 열반은 완성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열반에게는 무엇이 의지처입니까?” “바라문이여, 질문을 넘어섰습니다. 질문의 끝을 잡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열반에 닿는 범행(梵行)은 열반을 구원으로 하고 열반을 완성으로 살아지는 것입니다.”

 

또한, 닦고 많이 행할 때 번뇌들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다섯 가지 기능[오근(五根) : 믿음-정진-사띠-삼매-지혜]은 수행의 도구라고 해야 하는데, (SN 48.49-삔돌라바라드와자 경)에 의하면, ()과 노사(老死)의 부서짐 즉 윤회에서 벗어남이 이 기능들의 끝입니다. 즉 번뇌가 다하여 열반이 실현되면 윤회에서 벗어나게 되고, 이것이 기능의 끝이어서 더 닦아야 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MN 70-끼따기리 경)은 양면해탈자(兩面解脫者)와 혜해탈자(慧解脫者)의 아라한[무학(無學)]에 대해 이런 비구에게 불방일로써 해야 하는 것이 없다.’라고 말하고, 몸으로 실현한 자, 견해를 성취한 자, 믿음으로 해탈한 자, 법을 따르는 자, 믿음을 따르는 자의 유학(有學)들에게는 이런 비구에게 불방일로써 해야 하는 것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질문은 불교에서 적절한 질문이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누진통(漏盡通)을 얻으면 그대로 완성이어서 도를 닦음즉 수행(修行)은 끝나는 것입니다. 특히, (MN 117-커다란 마흔의 경)은 십선업(十善業)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을 만들고 몸과 생명에 대한 애착을 익게 하는 십선업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십선업으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이때, 두 번째의 십선업이 이렇게 완성된 아라한의 삶을 설명하는 것이고, 이런 삶의 끝에 몸이 무너져 죽으면 다시 태어나지 않음으로써 불사(不死)가 성취되어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누진통(漏盡通)도를 닦음[수행]’의 끝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참고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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