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불교의 육근과 육경 육식의 삼사화합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 문득 궁금해서 여쭙니다. 예를 들어 눈 봉사는 눈도 있고, 마음도 있는데 못봅니다. 귀먹어리는 귀도 있고, 마음도 있는데 듣지 못합니다. 이는 근경식중 안식과 이식이 빠져서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해부학적으로는 몸에 시신경과 이신경에 문제, 즉 몸에 해당한다고 할수 있는데 불교에서는 육식을 마음에 포함하고 있어서 좀 혼란스럽습니다.
☞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3&docId=384536945&page=1#answer2
불교의 초기 경전인 빠알리 니까야에서 삼사화합(三事和合) 촉(觸)은 근(根)-경(境)-식(識) 삼사(三事)가 아니라 내입처(內入處)-외입처(外入處)-식(識)의 삼사(三事)입니다. 내입처(內入處)는 식(識)과 근(根)으로 구성되는데, 여기의 식(識)은 지난 삶의 과정에서 누적된 것 즉 식온(識蘊)입니다. 내입처(內入處)는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라고 부르는데, 안(眼)과 색(色)들 내지 의(意)와 법(法)들을 연(緣)하여 지금 인식하는 대상에 대한 아는 마음으로의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이 생깁니다[(SN 12.45-냐띠까 경) 참조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3]. 이렇게 생겨난 식(識)은 지금의 삶을 살고서 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중생 세상에 머물고, 이전 삶의 과정에서 머물러 쌓여 있는 식(識)의 무더기 즉 식온(識蘊)에 더해져서 늘어나는 방식으로 변화합니다.
식(識)은 이렇게 내입처(內入處)를 구성하는 누적된 식(識)과 지금 삶에서 외입처(外入處)를 인식하여 생긴 식(識) 그리고 지금 삶의 결과를 담고서 머문 식(識)의 세 가지로 이해해야 하는데, 어려운 주제입니다. 그만큼 마음[심(心)-의(意)-식(識)]은 어렵고, 마음이 중심이 된 삶은 설명하기 힘듭니다.
근(根)은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근(意根)의 여섯 가지가 있는데, 말하자면, 내입처(內入處)를 구성하는 식(識)이 외입처(外入處) 즉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접점 정도의 기능으로 함께 내입처를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안근(眼根)~신근(身根)이 몸의 기능인데, 현대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시신경-이신경 등도 근(根)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경(經)은 안(眼)과 안식(眼識)과 안근(眼根) 내지 의(意)와 의식(意識)과 의근(意根)을 엄격하게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구분을 놓치면 불교 교리는 바르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하셔야 할 것입니다.
삼사화합(三事和合) 촉(觸)은 삶의 이해에 있어 매우 중요한 교리입니다. 되도록 한역(漢譯) 이전의 원전(原典) 즉 빠알리 니까야에 근거하여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의 홈페이지 http://nikaya.kr이 참고가 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