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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iN] 참으로 憍陳如가 깨달았다?

[질문] 참으로 憍陳如가 깨달았다? ㅡ 깨달음이 生法滅法 이라고 되어 있는데 초보자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 부탁합니다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3&docId=365968735&page=1#answer2

 

 

여기서 깨달았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aññāsi인데, ājānāti: knows; understands.의 과거형입니다. 그래서 깨달았다보다는 알았다, 이해했다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럴 때 해당 부분은 이렇게 번역됩니다. 이 설명이 설해지고 있을 때 꼰단냐 존자에게 때 없고 오염 없는 법안(法眼)이 생겼다. 어떤 것이든 자라남의 법은 모두 소멸의 법이다.”라고. ~ 그때 세존은 이런 감흥을 읊었다. 참으로 꼰단냐는 알았다. 참으로 꼰단냐는 알았다.”라고. 그래서 이 꼰단냐 존자에게 안냐시 꼰단냐라는 이름이 생겼다.

 

특히, Aññā Koṇḍañña(阿若憍陳如)PTS본의 번역이고, 6차 결집본은 ‘aññāsikoṇḍañño 안냐시꼰단냐로 나타나는 차이도 주목해야 합니다.

 

이런 이해 위에서 질문하신 생법멸법(生法滅法)자라남의 법소멸의 법인데, 자라남(samudaya)괴로움의 발생을 말하기 때문에 자라남의 법은 괴로움을 생겨나게 하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 자라남의 법은 모두 소멸의 법이다.’라는 앎은 괴로움을 생겨나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소멸시킬 수 있다.’라는 앎인데, 고멸(苦滅)의 가능성에 대한 눈뜲이고, 무상(無常)이라는 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교리적 이해의 측면에서 말하면, 법안(法眼)이 생김 법안(法眼)을 얻음[여실지견(如實知見)] 깨달음[누진(漏盡)]의 과정으로 삶은 향상합니다. 그래서 알다-이해하다깨닫다라는 용어는 구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추가질문] 겨우 알은 것 가지고 왜? 그렇게 부처님이 좋아했을까요? 님의 해석은 좀 이상하지 안나요?

 

[추가 답변] 부처님이 얼마나 좋아했다고 나오나요? 그보다는 아는 일을 거치지 않고는 깨달음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아는 일은 아는 대로 실천하는 것과 함께 깨달음을 위한 가장 큰 조건이지요. 배워 아는 과정 없이는 깨닫는 일이 참으로 어려워서 스승 없이 깨달은 그분을 유일하게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불교 교리의 축은 연기(緣起) 곧 십이연기(十二緣起)로 괴로움[()]의 정체를 밝히고, 중도(中道) 곧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으로 괴로움을 소멸[고멸(苦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꼰단냐 존자가 처음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게 되었을 때 부처님으로서는 제자들을 위한 고멸(苦滅)의 가능성을 확인하였다고 해야 합니다. 당연히 스승에게는 큰 기쁨이겠지요.

 

좋은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해하시면 적절할 것입니다.

 

 

[댓글] 자기 생각으로만 가득하군요!!!!


「오 나의 벗이여! 참으로 Koṇḍañña(憍陳如)가 깨달았다[aññāsi, 阿若, 開悟)]. 참으로 Koṇḍañña가 깨달았다.」


라고 감흥을 읊었다


[댓글 답변] 위에서 말했듯이, 여기서 ‘깨달았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aññāsi인데, ājānāti: knows; understands.의 과거형입니다. 그래서 ‘깨달았다’보다는 ‘알았다, 이해했다’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반면에, ‘깨닫다’의 빠알리어는 abhisambujjhati: gains the highest wisdom라는 단어가 쓰입니다. 부처님은 몇 개의 경에서 「taṃ tathāgato abhisambujjhati abhisameti 여래는 이것을 깨닫고 실현하였다.」라고 말합니다. 불교에서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이렇게 구분됩니다.

Comments

장상무 2020.08.28 05:27
붓다의 육성으로된 명쾌한 설명을 수년동안
눈팅으로만 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
댓글로 라마 전하게 되어 기쁩니다.

질문자가 스님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도
무한한 인내심으로 끝까지 니까야 만으로
풀이하시는 모습은 진정한 구도자 이십니다

니까야에 의해 한국불교가 재 해석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2020.08.28 07:31
오랫동안 함께헤 주셨군요, 법우님. 고맙습니다.  그날을 만드는 영광스런 일에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