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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iN] 색계 천상세계에 대한 모든 것

[질문] 색계 천상세계에 대한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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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明)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 세상은 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삼계(三界)로 구성됩니다. 중생으로의 존재[유(有)]인 ‘나[유신(有身)]’는 오온(五蘊)에 대한 집착 상태[오취온(五取蘊)]라고 정의되는데, 몸[안의 색(色)]과 마음[식(識)]에 의해 물질 세상[밖의 색(色)]을 만나는 삶입니다. 형성작용인 행위[행(行)]를 시작점으로 하는 세 개의 순환 구조 위에서 락(樂)-고(苦)-불고불락(不苦不樂)의 느낌을 경험[수(受)]하게 되는데, 행위의 재현을 위한 경향으로 잠재하는 상(想)에 의해 질적 차별이 생깁니다.


이때, 색계(色界)는 상(想)의 질(質)이 몸[안의 색(色)]과 마음[식(識)]으로 구성된 존재 상태에 대해 ‘’라고 집착하는 수준에 해당하는 삶의 수준 즉 세상입니다. 여기에 물질 세상[밖의 색(色)]에 대해 ‘나의 것’이라는 집착의 경향[욕상(慾想)]이 더해지면 욕계(慾界)이고, 몸[안의 색(色)]에 대한 집착의 경향[색상(色想)]을 넘어서서 마음[식(識)]에 대해서만 ‘나의 아(我)’라고 집착하는 상태가 되면 무색계(無色界)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욕상(慾想)을 넘어선 때로부터 색상(色想)이 남아있는 때까지를 색계(色界)의 범주로 이해하면 적절할 것입니다. ㅡ 「비구들이여, 이런 아홉 가지 차례로 소멸함[구차제멸(九次第滅)]이 있다. 무엇이 아홉인가? 초선을 증득한 자에게 욕상(慾想)이 소멸된 상태가 있다. 제2선을 증득한 자에게 위딱까와 위짜라가 소멸된 상태가 있다. 제3선을 증득한 자에게 희열이 소멸된 상태가 있다. 제4선을 증득한 자에게 들숨-날숨이 소멸된 상태가 있다. 공무변처를 증득한 자에게 색상(色想)이 소멸된 상태가 있다. 식무변처를 증득한 자에게 공무변처의 상(想)이 소멸된 상태가 있다. 무소유처를 증득한 자에게 식무변처의 상(想)이 소멸된 상태가 있다. 비상비비상처를 증득한 자에게 무소유처의 상(想)이 소멸된 상태가 있다. 상수멸을 증득한 자에게 상(想)과 수(受)가 소멸된 상태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아홉 가지 차례로 소멸함이 있다.」


이런 이해에서 색계는 욕(慾)의 소멸이 아니라 욕상(慾想)의 소멸이고, 무색계는 색(色)의 소멸이 아니라 색상(色想)의 소멸이라는 점은 주의해야 합니다. 욕(慾)은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 즉 물질 세상에 대한 소유의 사유[나의 것]인데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의 소멸이 아니라 거기에 대한 소유의 사유가 경향까지 소멸한 것이고, 무색(無色)은 몸인 색(色)의 소멸이 아니라 몸에 대한 집착의 경향으로의 색상(色想)을 넘어선 경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욕상(慾想)을 넘어선 색계(色界)도 물질 세상 위에 존재하고, 색상(色想)을 넘어선 무색계(無色界)도 몸인 색(色)과 식(識)이 함께하고 있는 세상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 존재들의 몸은 욕계(慾界) 존재들의 몸과 다릅니다. 경은 색계(色界) 존재의 몸을 의성신(意成身-manomaya kāya), 무색계(無色界) 존재의 상태를 상성(想成-saññāmaya)이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인간이 의성신(意成身)을 성취하여 색계(色界)의 신들과 직접 만나기 위해서는 제사선(第四禪)에서 의성신(意成身)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수행을 필요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상성(想成)의 상태를 성취하여 무색계의 신들과 직접 만나기 위해서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토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의성신(意成身)과 상성(想成)의 경지에 대한 이런 이해는 양면해탈자(兩面解脫者)와 혜해탈자(慧解脫者)의 차이를 이해하는 중요한 관점이 됩니다.


색계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대해서는 불교의 세계관을 찾아보면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편, 색계와 무색계에 태어나는 일은 불교적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은 불교와 다른 방법으로 색계-무색계에 태어나는 방법은 설명하지 않지만[삼매에서 바른 삼매-정정(正定)과 삿된 삼매의 차이일 것], 두 경우의 차이점은 설명합니다. 특히, (AN 4.123-다름 경1)-(AN 4.124-다름 경2)-(AN 4.125-자애 경1)-(AN 4.126-자애 경2)와 (AN 3.117-동요 없음 경)은 범부(凡夫)와 부처님의 제자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거기서 범부(凡夫)는 수명의 크기만큼 머문 뒤에, 그 신들의 수명의 크기가 모두 지나면 지옥으로도 가고 축생의 모태로도 가고 아귀계로도 간다. 그러나 세존의 제자는 거기서 수명의 크기만큼 머문 뒤에, 그 신들의 수명의 크기가 모두 지나면 그 존재에서 오직 완전히 꺼진다[반열반(般涅槃) 한다].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와 비교할 때, 갈 곳과 태어남에 대해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런 차이가 있고 이런 특별함이 있고 이런 다름이 있다.」 등입니다.


이 경들은 색계-무색계 신들의 수명의 크기를 알려주기도 하는데, 범신천(梵身天) 1겁(劫), 광음천(光音天) 2겁, 변정천(遍淨天) 4겁, 광과천(廣果天) 500겁, 공무변처(空無邊處) 2만 겁, 식무변처(識無邊處) 4만 겁, 무소유처(無所有處) 6만 겁입니다. 


이 경들에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거기에서의 죽음 이후입니다. 색계-무색계 하늘에 태어났다 해도 무아(無我)에 접근하지 못하는 외도들은 그 하늘의 삶[유(有)]에서 벗어나 해탈로 이끌리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서의 죽음 이후에 낮은 삶으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무아(無我)의 이치에 눈을 뜬 부처님의 제자들은 거기서도 공부[바른 삼매-정정(正定)]를 이어가 깨달음을 성취하고, 사람 몸으로 깨달은 아라한이 죽으면 다시 태어나지 않듯이, 죽음 이후에 완전히 꺼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깨닫기 위해서는 인간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 경들에 의하면 그것은 오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어쨌든 열심히 살아서, 미처 깨닫지 못하면, 죽은 뒤에는 하늘에 태어나야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범주 안에 있는 한 거기서도 깨달음은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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