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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iN] 초기불교 소승불교에서는 윤회나 아뢰야식을 인정하지 않나요?

[질문] 초기불교 소승불교에서는 윤회나 아뢰야식을 인정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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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기불교에서 윤회는 삶을 보는 기본적인 시각입니다.

 

상윳따 니까야의 제15(SN 15-시작이 알려지지 않는 것(anamatagga) 상윳따)의 경들을 위시해서 많은 경들이 윤회(輪迴)는 시작이 알려지지 않는 것이다.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들에게 처음 시작점은 알려지지 않는다.라고 중생을 정의합니다. 무명과 갈애를 완전히 부수지 못하는 한 윤회하는 중생인 것입니다. 또한, 십업(十業)을 설하는 많은 경들도 저세상은 없다.’라는 견해는 사견(邪見)이고, ‘저세상은 있다.’라는 견해가 정견(正見)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니 초기불교가 윤회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그보다는 윤회하는 불완전한 삶에 수반되는 고()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 불교(佛敎)이고, 그 완성이 깨달아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 초기불교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2. 아뢰야식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말할 수 있습니다.

 

(MN 38-갈애 부서짐의 큰 경)은 안()과 색() ~ ()와 법()의 조건에 의한 식()의 발생을 말하면서 이 여섯 가지 조건 관계에 의해 연기(緣起)된 식()’들과 다른 곳[다른 방식]에서 식()은 생겨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연기된 것으로의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육식(六識) 외에 다른 식()은 없다는 것이 초기불교가 말하는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아뢰야식에 쓰인 아뢰야는 ālaya(알라야)의 음역(音譯)인데, (SN 6.1-범천의 요청 경) 등에 의하면, 중생을 대표하는 개념으로의 집착의 경향입니다. 그래서 오온(五蘊)의 구성 가운데서는 ()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상()으로 설명하는 ālaya에 유식(唯識)은 식()의 자격을 부여하여 중생의 대표 개념으로 삼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기불교와 유식의 차이이고, 부처님의 경험과 유식 초기 스승들의 경험의 차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교는 부처님의 경험을 기준으로 설해진 가르침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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