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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iN] 무소유가 삶의 질이 더 높죠? 살아보니 그런 것 같네요

[질문] 무소유가 삶의 질이 더 높죠? 살아보니 그런 것 같네요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1303&docId=370446006&page=1#answer3

 

 

무소유(無所有)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데, 질문자께서는 어떤 무소유를 살아보셨는지 모르겠네요.

 

먼저, 소유(所有)하지 않음[가지지 않음]이란 측면입니다. 소유 즉 무언가를 가지는 것은 편리하고, 그로 인한 기쁨과 행복을 줍니다[매력(魅力)]. 그러나 무상(無常)이란 이치에 의해 소유한 것이 유지되지 못하는 특성에 따라 괴로움이 생겨나는 현상으로의 위험이 뒤따릅니다[위험(危險)]. 그래서 그 소유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소유한 것들에 대한 욕탐(欲貪)을 제어하는 것입니다[해방(解放)].

 

무소유(無所有)라고 말하지만 소유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면 인간의 삶을 높은 질적 수준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불편하고, 불편에 뒤따르는 괴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방(解放)은 소유하지 말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그것에 대한 욕탐(欲貪)을 제어하라고 요구하는데, 물질적인 세상에서의 삶은 물질의 뒷받침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무소유의 다른 측면은 있는[()] [()] 없음[()]입니다. 삶은 질적인 측면에서 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로 구분되는데, 욕계(慾界)는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소유를 지향하는 삶이고, 색계(色界)는 소유에 대한 지향은 극복하였지만 물질-[()]에 대한 지향은 남아 있는 삶이며, 무색계(無色界)는 물질-[()]에 대한 지향마저도 넘어선 삶입니다.

 

이때, 무색계(無色界)는 공무변처(空無邊處)-식무변처(識無邊處)-무소유처(無所有處)-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로 다시 구분되는데, 존재를 구성하는 여섯 가지 요소[육계(六界) = ()-()-()-()-()-()]와 연결됩니다. 물질 즉 색()은 지()-()-()-() 사대(四大)와 공간 즉 공()에 의해 규정되는 사대조색(四大造色)으로 구성됩니다. 이때, ()-()-()-() 사대(四大)로 규정되는 색계(色界)를 넘어선 무색계(無色界)의 초입(初入)에 해당하는 공무변처(空無邊處)와 공()으로 규정되는 공무변처를 넘어선 식무변처(識無邊處) 그리고 존재를 구성하는 여섯 가지 요소[육계(六界) = ()-()-()-()-()-()]의 영역을 모두 넘어선 상태로의 무소유처(無所有處)입니다. 무소유(無所有)는 이렇게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소유의 지향-경향을 넘어서고, 존재를 구성하는 여섯 가지 요소 모두에 대한 지향 또는 경향[()]이 없는 즉 있는[()] [()] 없음[()]의 질적 수준을 가지는 삶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조차도 있다고 할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할 것도 아닌 더 높은 수준으로의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로 무색계(無色界)는 구성됩니다. 또한, 이런 비상비비상처도 넘어서서 일체(一切)의 경향에서 벗어날 때 삶은 완성되는데, 해탈(解脫)된 삶입니다.

 

이렇게 무소유(無所有)는 두 가지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소유하지 않는 것을 무소유라고 이해한다면 이런 무소유가 이끄는 삶의 질은 높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물질 세상에서 물질의 부족에 따르는 불편이 더 크다고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의 질의 더 높은 영역으로의 무소유(無所有)는 소유한 것들[()] 또는 나를 구성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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