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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상담

[지식iN] 해탈과 열반은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게 맞나요?

 [질문] 해탈과 열반은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게 맞나요? 그렇다면 부모나 사랑하는 연인이 죽어도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지경이 해탈이나 열반의 상태인가요?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3&docId=371689226&page=1#answer6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갈애[()]로부터 벗어나는 것인 해탈(解脫)과 해탈된 상태로의 열반(涅槃)은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완전한 행복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런 해탈(解脫)-열반(涅槃)은 누진(漏盡) 즉 번뇌의 부서짐을 통해 완성되는데, 이렇게 완성된 사람을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라한에게도, 번뇌와는 다른 영역인 몸이 남아있는 동안 즉 아라한의 성취 이후의 삶에는, 몸을 조건으로 하는 괴로움은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무명(無明)과 갈애를 부순 아라한은 죽은 다음에 몸으로 가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태어나지 않을 때 몸을 조건으로 하는 괴로움까지 해소된 완전한 행복이 실현됩니다. (MN 121-() 대한 작은 경) 참조.

 

그리고 이렇게 태어나지 않게 되면, 질문하신 바와 같은, 윤회하는 삶의 영역에서 형성되는 부모나 사랑하는 연인 같은 관계도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런 문제로 고통을 느낄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것이 완성된 해탈(解脫)-열반(涅槃)의 경지이고, 모든 괴로움이 해소된 완전한 행복의 실현입니다.

 

물론, 아라한의 성취 이후의 삶의 과정에서는 어떠할지도 궁금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무명과 갈애가 없는 아라한에게는 연인이란 개념의 관계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서는 태어난 자는 죽지 않을 수 없다.’라는 분명한 앎에 의해 그 무상(無常)을 받아들이지 그로 인해 괴로워하지는 않게 됩니다.

 

(AN 10.65-행복 경1)

 

한때 사리뿟따 존자가 마가다에서 날라까 마을에 머물렀다. 그때 사만다까니 유행승이 사리뿟따 존자에게 왔다. 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만다까니 유행승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무엇이 락(-즐거움-행복)이고, 무엇이 고(-괴로움)입니까?” “참으로, 도반이여, 태어남은 고()이고, 태어나지 않음은 락()입니다. 도반이여, 태어나면 이런 고()가 예상됩니다. ㅡ 차가움, 뜨거움, 배고픔, 목마름, , 오줌, 불에 닿음, 몽둥이에 닿음, 칼에 닿음이 있고, 친척과 친구가 만나고 함께 모임을 원인으로 성가십니다. 도반이여, 태어나면 이런 고()가 예상됩니다. 도반이여, 태어나지 않으면 이런 락()이 예상됩니다. ㅡ 차가움, 뜨거움, 배고픔, 목마름, , 오줌, 불에 닿음, 몽둥이에 닿음, 칼에 닿음이 없고, 친척과 친구가 만나고 함께 모임을 원인으로 성가시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태어나지 않으면 이런 락()이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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