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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iN] 불교의 사랑인 자비의 철학적 기반은?

[질문] 불교의 사랑인 자비의 철학적 기반은?

1. 자타불이의 평등심, 2. 무소유, 3. 공감, 4. 연민, 4개 중에 뭔가요?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0410&docId=375097090&page=1#answer2

 

 

자비(慈悲)는 자비희사(慈悲喜捨) 사무량심(四無量心)의 일부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때, ()그대가 행복하기를!’, ()그대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는 그대의 기쁨을 더불어 기뻐해 주는 마음이고[다른 사람의 좋은 일을 나도 기뻐함], ()평정한마음입니다[남의 행위 등 밖의 상황에 영향받아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음]. 특히, ()는 분노를 분노하지 않음으로, ()는 폭력을 비폭력으로 바꾸는 방법이어서 십악업(十惡業)에 속하는 진에(瞋恚)를 부진에(不瞋恚)로 바꾸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사()는 저항을 무저항으로 바꾸는 방법이어서 사무량심은 비폭력-무저항주의로 드러난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자비희사 사무량심은 브라만교의 교리이기도 한데, (MN 55-지와까 경)은 브라만교와 차별된 불교의 사무량심을 설명합니다. 경에서, 지와까는 브라만교의 창조주인 범천(梵天-브라흐마)에 대해 ()-()-()-()와 함께 머무는 자라고 설명하면서 부처님도 그와 같이 보인다고 말합니다. 부처님은 탐진치(貪嗔癡)에 의해서 분노-폭력-불쾌-저항이 있기 때문에, 탐진치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 여래(如來)는 자()-()-()-()와 함께 머문다고 인정합니다.

 

특히, 사무량심(四無量心)은 사무량심해탈(四無量心解脫)로 확장되는데, (AN 6.13-해방되어야 함 경)에 의하면, 사심해탈(捨心解脫)에 의해서 탐()이 소진됩니다. 사무량심(四無量心)이 진()의 영역에서 진에(瞋恚)[분노와 폭력]에 대한 대응 방법이라면 사무량심해탈(四無量心解脫)로 확장된 뒤에 탐()에 대한 대응 방법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범천(梵天)은 자비희사(慈悲喜捨)를 덕성으로 하고, 부처님은 그보다 더 근원의 자리에서 탐진치(貪嗔癡)가 부서진 무탐(無貪)-무진(無嗔)-무치(無癡)[무위(無爲)]를 덕성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해 위에서 질문에 답하자면, 평등심은 사무량심(捨無量心)을 말하는 것인데, 자타불이(自他不二)의 평등심은 불교보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를 주창하는 브라만교의 사무량심(四無量心)에 속한다고 해야 합니다. 반면에 불교에서 사무량심(捨無量心)은 무저항에 이어 사무량심해탈(捨無量心解脫)로서 탐()의 소진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불교에서 자비의 철학적 기반은 탐진치(貪嗔癡)의 소멸 즉 무탐(無貪)-무진(無嗔)-무치(無癡)의 해탈된 삶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때, 심해탈(心解脫)은 몇 가지가 제시되는데, 여기서는 무소유심해탈(無所有心解脫)과 공심해탈(空心解脫)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무소유심해탈은 무색계(無色界)에 속하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머무는 것이고, 공심해탈은 탐()-()-()가 공()함 즉 없는 상태[무소유(無所有) - 있는 바 없음]를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자비(慈悲)에 대한 불교의 철학적 기반은 자타불이의 평등심보다는 오히려 무소유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확한 의미로는 탐진치(貪嗔癡) 없음 즉 공()의 완성이므로 자비(慈悲)에 대한 불교의 철학적 기반은 무소유(無所有)의 끝에 다다른 탐진치(貪嗔癡)의 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Comments

대원행 2022.04.29 21:48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6_09&wr_id=40 참조 (불교의 사랑인 자비의 철학적 기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