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연기설은 필연적인가요 아님 우연적인가요? ― 연기설은 모든 현상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 생기는 거잖아요. 하나의 원인이 사라진다면 그 존재는 생겨나지 않죠? 그럼 연기설은 모든 현상을 우연적으로 보는 건가요 아님 필연적으로 보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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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緣起) 즉 십이연기(十二緣起)는 괴로움이 생겨나는 조건 관계를 열두 과정으로 설명한 삶에 대한 해석인데, 「무명(無明) → 행(行) → 식(識) → 명색(名色) → 육입(六入) → 촉(觸) → 수(受) → 애(愛) → 취(取) → 유(有) → 생(生) → 노사(老死)」로 구성됩니다.
이때, 유(有)는 존재인데,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중생으로의 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유(有) 즉 중생인 나는 무명(無明)~취(取)의 과정을 누적하며 변화하는 것[유(有)의 조건 관계]이고, 그 변화의 과정에서 생(生)-노사(老死)의 괴로움을 겪는다[고(苦)의 조건 관계]는 삶에 대한 해석입니다. 특히, 경은 열두 번째 지분을 노사(老死)-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일체의 고온(苦蘊)[괴로움 무더기]으로 서술하는데, 윤회(輪迴)하는 근본 고(苦) 위에서 삶의 과정에 수반되는 온갖 괴로움을 포괄하는 것입니다.
이런 연기(緣起)는 필연이나 우연의 관점을 가지지 않습니다. 다만, 생겨나 있는 것인 유(有)에 대한 생겨남의 과정과 생겨난 상태에 수반되는 현상을 100%의 조건 관계로 설명할 뿐입니다.
이런 조건 관계이기 때문에, 말씀하신 대로, 하나의 조건이 사라지면 중생으로의 나라는 존재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즉 중생이라는 괴로움의 영역을 벗어나게 되는 것인데, 해탈(解脫)이라는 용어의 의미입니다. 이렇게 해탈하면 열반(涅槃)이 실현되는데, 이것이 불교가 지향하는 깨달음이고, 100% 행복의 상태입니다.
※ 무명(無明)이라는 조건이 있으면 유(有)가 있게 되고, 생(生)-노사(老死)의 현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명(無明)이 제거되면 유(有) 즉 중생으로의 존재 상태가 해소되기 때문에 생(生)-노사(老死)의 현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연기(緣起) 즉 십이연기(十二緣起)는 필연(必然)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무명(無明)을 제거하여 연기(緣起)의 조건 관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팔정도(八正道)이고, 「사념처(四念處) → 사마타-위빳사나」의 구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