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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iN] 불교에서 삶은 고통이라고 하는 이유

[질문] 불교에서 삶은 고통이라고 하는 이유가 '---' 자체가 삶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인가요?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3&docId=375525339&page=1#answer6

 

어려운 질문이라 어려운 교리적 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불교에서 고(苦)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 교리를 통해 설명되는데, 삼법인(三法印)과 사성제(四聖諦) 그리고 매력(魅力)-위험(危險)-해방(解放)입니다.


1. 삼법인(三法印)은 제행무상(諸行無常)-제행개고(諸行皆苦)-제법무아(諸法無我)입니다. 존재하는 것을 법(法)이라고 하는데, 번뇌의 영향을 받는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하는 행(行)과 번뇌의 영향에서 벗어난 상태 즉 행(行)에 속하지 않는 것인 열반(涅槃)으로 구성됩니다. 이때, 모든 법은 무아(無我)의 특성을 가지는 가운데, 행(行)들은 무상(無常)과 고(苦)의 특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반(涅槃)은 무아(無我)인 가운데 무상(無常)의 가라앉음을 통해 얻어지는 락(樂)의 특성을 가집니다. 특히, 행(行)에 속하지 않는 것은 열반 한 가지라는 점은 주목해야 합니다.


한편, (SN 22.94-꽃 경)에서 부처님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오온(五蘊)이 세상의 법인데,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오온(五蘊)은 없고,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변하는 오온(五蘊)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상(常)하면 안정과 영원 그리고 변하지 않을 것인데 그런 것은 세상에 없고,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고(苦)이고 변하는 것으로 세상은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대비에 의하면, 고(苦)는 안정과 영원의 반대 개념[안정되지 않고 영원하지 못함]이고, 그 이유는 상(常)하지 않음 즉 무상(無常)입니다. 이때, 무상(無常)은 조건들의 결합에 의해서 생겨나고, 조건들의 해체를 통해서 없어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2. 이런 이해 위에서, 불교가 삶을 고통이라고 하는 이유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한 가지 진리를 말하는데, 고(苦)-고집(苦集)-고멸(苦滅)-고멸도(苦滅道)의 사성제(四聖諦)입니다. 여기서 고(苦)는 삼법인(三法印)의 고(苦)여서 중생의 삶이고, 고멸(苦滅)은 고(苦)가 모두 소멸하여 락(樂)이 실현됨 즉 열반입니다. 고(苦)가 생겨나고 자라나는 조건 관계가 고집(苦集)이고, 고멸(苦滅)의 실현을 위한 조건 관계가 고멸도(苦滅道)인데, 고집(苦集)의 해소를 통한 고멸(苦滅)의 방법[길]과 실천[길을 걸음]입니다.


이때, 고(苦)는 오취온고(五取蘊苦)라고 정의되는데, 오취온(五取蘊)[지난 삶의 과정의 누적에 불과한 오온(五蘊)을 ‘나’라고 집착한 상태]이라는 중생으로의 삶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의미입니다. 상세히 설명하면, 생노병사(生老病死)[태어남-늙음-병듦-죽음]의 근본 괴로움[윤회(輪迴)]과 원증회고(怨憎會苦)[재미없는 것들과 함께 엮이는 괴로움]-애별리고(愛別離苦)[즐거운 것들과 갈라지는 괴로움]-구부득고(求不得苦)[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 또는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 등 삶의 과정에 수반되는 다양한 괴로움으로 제시됩니다.


한편, 고(苦)는 세 가지 성질[고성(苦性)]을 가지는 것으로 설명되는데, 고고성(苦苦性)-행고성(行苦性)-괴고성(壞苦性)입니다. 고고성(苦苦性)은 살면서 경험하는 구체적인 괴로움이고, 행고성(行苦性)은 행(行)들의 특성인 무상(無常)에 따르는 괴로움[안정되지 않고 영원하지 못함]이며, 괴고성(壞苦性)은 그래서 변하는 현상[자기를 유지하지 못함]입니다.


그렇다면 오취온고(五取蘊苦)는 오취온(五取蘊) 즉 내가 무상(無常)하고 변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행고성(行苦性)과 괴고성(壞苦性)을 지시하고[생노병사(生老病死)], 나머지 삶의 과정에 수반되는 다양한 괴로움은 고고성(苦苦性)을 지시한다고 하겠습니다.


3. 그런데 매력(assāda)-위험(ādīnava)-해방(nissaraṇa)이라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과정을 설명하는 교리가 있습니다. 매력(魅力)은 어떤 대상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생기는 것이고, 그것이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변하는 것이라는 점이 위험(危險)이며, 그것에 대한 욕탐(欲貪)을 제어하고 버림으로써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방(解放)입니다. 


살면서 만나는 많은 것들은 우리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데, 이것이 그것의 매력(魅力)입니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과 기쁨은 얻는 과정 또는 얻은 것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괴로움을 수반하고, 끝내 유지되지 못하는 위험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살면서 만나는 많은 것들에 대한 욕탐(欲貪)을 제어하고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에서 매력을 보게 되면, 직접 그것을 얻고자 하기 전에 그에 수반되는 위험을 관찰해야 합니다. 위험이 최소화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매력보다 위험이 현저히 작아질 수 있을 때 그것을 얻고자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MN 13-괴로움 무더기 큰 경)(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2_03&wr_id=1)은 소유의 삶과 몸 그리고 느낌의 세 가지 측면에서 매력-위험-해방을 설명하는데, 삶이 어떻게 고고성(苦苦性)-행고성(行苦性)-괴고성(壞苦性)과 연결되는지도 설명됩니다. 


4. 이런 세 가지 교리를 고려하면, 불교가 삶을 고통이라고 하는 이유는 오취온(五取蘊)[지난 삶의 과정의 누적에 불과한 오온(五蘊)을 ‘나’라고 집착한 상태]인 내가 안정되어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행고성(行苦性)]이고, 그래서 변해야 하기 때문[괴고성(壞苦性)]이며, 그 삶의 과정에 많은 구체적 괴로움이 수반되기 때문[고고성(苦苦性)]이라고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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